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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Apr 03. 2023

그만할까 그만하자, 잔소리.

아이유의 '잔소리'는 노래니까, 아이유니까, 이쁘다.

엄마의 일상 속 잔소리는 너도나도 절레절레.

그러든 말든 집안의 먼지수만큼 자잘하게, 모래사장 모래알만큼 끝도 없이 터진다.

파리채로도 안 잡히고 봉인시켜도 튀어나오는 잔소리는 알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시비 붙기 일쑤.

한집 건너 한집에서 둥둥 떠다니는 소리소리, 엄마 잔소리.




엄마 잔소리 성공사례도 얻어걸리긴 한다.


을 : 얼른 일어나야지.

갑 : 알았으니까 잔소리 그만해.

을 : 한마디 한 건데?

갑 : 알았다니까.

을 : 무얼 알았어? 알았는데  일어나?

갑 : 으휴. 잔소리 때문에 잠을 잔다니까.


"당신 말대로 얇게 입을걸, 겨울 지나니 바로 여름이야."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

드라마 속 아내처럼 ("어머, 얼마나 더웠을까? 겉옷 이리 줘요. 고생했어요.") 말이 안 나온다.

"그러게 아침에 일기예보 보고 내가..."

"씻을게." 

퇴장.

머쓱 엄마는 콧물이라면 두 손으로 킁 풀어 휴지통에 집어넣고 시치미 떼고 싶다.


하교하는 아이가 날 덥다고 손부채하며 쓱 꺼내는 브라운 컬러 바나나.

갑 : 가방 안에서 삼일 됐어.

을 : 그러게 엄마가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갑 : 이하생략!

머쓱 엄마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쏙 방으로 들어간다.

시작도 안 했는데.




귀하게 자라서 잔소리 한번 안 듣고 자란 모양이라고 놀림받는 남편은 살다 보니 잔소리에 도가 트였다.

아내 잔소리는 호환마마보다 기겁하면서

정작 딸 앞에선 폭발력이 이보다 셀 수 없다.

잔소리의 과녁은 바로 지금의 잘못이나 실수여야 한다.

아빠는 아니다.

해묵은 아빠 섭섭함에서 시작, 요즘 학생들의 버릇없는 세태와 아빠 라테 시절 회고와 최근 딸아이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구구절절한 잔소리 사연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모른다.


엄마로서 엄마 잔소리는 마땅 타당하지만

내로남불, 남편 잔소리의 무시무시한 대확산을 듣노라면.

역지사지인데 내 잔소리는 필요악이고 남의 잔소리는 백해무익인걸 어째.


그만하자, 그만하자.




 모르는 사람은 내 잔망한 터프함

"형수님은 잔소리하실 분이 아니니 형님은 참 좋겠어요."

또는 "엄마는 뭐라지 않으시지? 이모는 장난 아냐."

라고 한다.

휴지통 주변 떨어진 손톱, 엉뚱하게 채워진 분리수거통, 돌돌 말린 양말.

손도 대기 싫다. 입만 털게 된다.

엄마가 후딱 치우고 입에 자물쇠 채우는 방식이 분명히 편했고 훨씬 우아해 보였는데 점점 억울해진다.

나 어릴 때 같이 살던 식모언니도 통 안에 든 빨랫감과 쟁반 위에 얹은 식기만 치웠다.

반복의 사소함에 장사 없다.






아이가 사족을 못 쓰던 퍼즐도 내리 세 판째 맞추니 싫증 난 모양이다.

2주가 지나도 일부를 비운 그대로이다.


말해, 말아?




잔소리는 이렇게 유발된다.

눈에 빤히 보여도 지적하지 않으면 스르륵 못 본 체 지나가고 모른 척들이다.

전문가들은 잔소리는 안 하는 게 정답이라는데.


말해, 말아?

어째 시시콜콜한 데에나 목숨 거는 느낌이라 김이 샌다.


'잔소리'란 제목의 열 살 아이가 지은 시.

'잔소리 없는 날' 월 1회를 제정했다.

아무래도 엄마만 손해 날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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