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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Jul 18. 2023

너희가 침수를 알아?

작년 물난리 후 빌라 내 반지하 가구를 부분적으로 없애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밥을 먹다 그 뉴스를 보고 숟가락을 놓아버렸다.

그리고 벌써 일 년.

올해도 장마철 적지 않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내가 살던 곳 호수는 B102호가 아닌 102호였다.

지상이 시작되는 일층이 202호인 식이어서 지하 느낌을 없앤 호수부터 마음에 들었다.

그 동네에 원룸과 상가건물을 여럿 가지고 문화 관련 사업가인 건물주는 놀랄 만큼 젊고 젠틀했다. 


전에 살던 대학생이 방을 빼면서 석 달 쓴 장롱인데 쓰겠냐 했다.

포장이사는 고사하고 내가 하나하나 싼 짐을 친구가 용달을 빌려와서 이사할 형편이니 한참 된 행거 대신 양문 달리고 서랍 있는 장롱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티브이 수신료가 빠진 전기요금 고지서가 나왔다.

전기 사용량이 기본 수준 이하면 티브이도 없을 거라고 추정해서 부과되지 않는단다. 그땐 그랬다.

티브이는 고사하고 냉동실 없는 미니 냉장고 안에는 달걀 두 알과 김치, 생수가 전부였다.

기본적인 가구와 가전만 갖추고 직장에서 식사에 샤워까지 하고 와서 잠만 자는 공간이었지만  힘으로 장만한  자체로 좋았다.


면이 창문이라 볕도 간간히 드는 반지하였다.




요즘 같은 집중호우로 인한 장마철이었다.

이른 시 출근길에 물이 불어나서 대중교통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허벅지까지 옷을 걷고 인도를 지나야 했다.

흠뻑 비를 맞고 한참 걸려 도착한 내가 가장 빨리 출근한 사람이었을 정도로 온 나라가 물벼락을 맞고 더 집중포탄이 날아든 지역이었다.


느지막이 빗속을 뚫고 퇴근한 나의 집.

올려다 뵈는 창으로 쏟아붓빗줄기 소리 사람들 인기척에 놀라는 건 이내 익숙해졌다.

기분이 무너진 건 장롱을 열면서부터였다.

눅눅한 냄새가 확 나면서 걸려있는 옷들과 서랍장에 뉘인 옷들은 습기에 모조리 망가져있었다.

형언 못할 곰팡이 냄새와 사방에서 몰아치는 듯한 습기 먹은 벽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눅진눅진한 느낌들.


집중호우 사흘째엔 새로 지은 건물도 반지하라는 입지상 어찔 수 없이 쏟아붓는 폭우에 물기가 베어 들기 시작했다.

전기가 나가고 두꺼비집을 더듬더듬 찾아 불을 켰을 때였다.

온몸을 한 바퀴 훅 지나는 소름 끼치는 감전의 기운.

공포였다.




그러고도 다음 해 여름을 한번 더 치렀다.

전세기간 사 개월을 남기고 여유 있는 집주인은 보증금을 바로 내주고 현관 비밀번호만 문자메시지에 남기라며 흔쾌히 계약해지를 처리해 주었다.

예술인인데 부자이고 부자인데 마음도 좋은 흔치 않은 집주인이었다.


내 수중에서는 그 당시 그곳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장마철 뉴스를 볼 때마다 그곳이 생각난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참 열심히 살았던 시절.

여전히 서울땅 여기저기에는 장마철 반지하에서 가족들이 오손도손 각자 사정에 맞춰 살고 있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올 장마철이 마무리되길 엄마는 누구보다 바란다.


커버포함 출처 픽사베이


니들이 반지하를,..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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