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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스칸썬 Jan 17. 2023

뻥!      뚫어드립니다.


당부말씀 : 비위 약하시거나 식사 중이시면

읽기를 멈춰주세요!



딸애의 변은 굵다.

한약을 석 달째 먹는데도 그렇다.

수분 없이 딱딱한 팔뚝만 한 그놈. 

처음에나 기겁하지 내 아이 건데 뭘.

배출되는 게 고마워서 그놈 찾아온 날짜를 엄마는 기록까지 하며 반갑게 맞이한다.




가족들이 외출한 사이 화장실 청소를 시작했다.

샤워실과 바닥. 수전에 이어 변기 청소 차례.

변기뚜껑을 솔로 변기 안팎을 박박 문지른다.

기물을 내리는데. 어어? 넘친다, 넘쳐!

오호통재라.

막혔다.




어릴 때 변이 나오지 않아 사색이 된 조막만 한 아이를 바닥에 엎어놓고 수동으로 그놈을 끄집어낸 사람은 남편이다.

딸애의 변비를 익히 아는 남편은 변기 뚫는 선수.

뚫어펑도 종류별로 써봤다.

딱딱하고 굵은 익숙한 그놈이 변기 밑에서 가야 할 곳을 망각하고 한사코 가겠다 찰싹 붙어 일이 터지는 경우.

종종 있다.

괜찮다. 해결사가 있으니.


하지만

내가 청소 중이지 않은가.

계획이 있단 말이다.

반짝반짝 청소 끝!

하자마자 짱 박은 다크 초콜릿, 웨하스 두 봉과 한라봉. 고카페인 음료를 한눈에 들어오게 쭉 줄 세우고 티브이 앞에 늘어지는 거다.

그거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데.

얼마만인데!

그거 바라고 시작한 청소인데!




놔둬도 그만이다.

돌아온 남편이 몇 번 씨름하면 우르르 상쾌한 소리와 함께 고인 물이 쑥 빠지고 개운한 새 물이 찰랑일 것이다.

그런데!

내손으로 끝내고 싶다.

"또?" 하는 남편의 살짝궁 한 짜증과 무안할 아이 낯빛을 해결하고 싶다.

도전!




두 번. 세 번.

팔힘이 없고 손아귀 기력이 부치긴 해도.

화장실 변기해결사를 엄마도 해내고 싶다. 한 번쯤 뚫어뻥 문화 박사가 돼보고 싶다.

어떡하든 꾹꾹 꾹 뚫어펑으로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은 탁 걸려서 좌르륵하며 통쾌하게 물이 빠지겠지. 시원스러운 소리가 곧 나겠지.

믿었다.


그러나 물이 넘치기 직전까지 다시 차오르고 역해 온다.

땀이 삐질삐질. 마스크 쭉쭉 벌려 눈 빼고 몽땅 덮다시피 해도 찝찝하다.

집어치우고 싶다.

 내동댕이치고 눕고 싶다.




좋아한 드라마 <연애시대>의 똥머리가 폼나던 손예진 배우의 인상 깊은 씬.

이까짓 잼통 뚜껑 하나를 못 연다고.

제발 열려라 열려라 하다 집어던지던 통곡 씬.

이런 거 하나 내 맘대로 안돼!

그 마음이었다.



네이버 블로그 <텃밭 연구소>

출처 : 네이버 <텃밭 연구소> 블로그.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텃밭 연구소님!"



눈물 날 뻔.

힘으로 마침내 성공.

출처 : 픽사베이


도어록 소리에 이어 가족들이 들어온다.

"엄마, 급해!"

이내 화장실 문벌컥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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