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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필가 박찬선 Jul 07. 2017

느낌이 있는 하루

쉼표가 있는 삶

쉼표가 있는 삶     


지난 봄 어느 공휴일이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고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했다. 오전에 집에서 여유를 부리다 점심을 먹고 아내와 함께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허니듀’라는 카페에 갔다. 영화 속 한 장면에 나올 것 같은 고즈넉한 카페였다. 카페 앞에는 철새들이 무리를 지어 노니는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주변 사방으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평안함을 더했다. 호수는 잔잔했고, 주변의 산과 파란 하늘과 하늘 위에 떠 있는 하얀 구름까지 다 품고 있었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시나몬 향이 그윽이 풍기는 카푸치노 한 잔을 천천히 마셨다. 조금 경쾌한 음악이 바깥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지만 창문을 통해 부서질 듯 쏟아지는 햇살은 봄의 향연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호수 위 이곳저곳을 유영하는 철새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봄은 따뜻한 남풍을 타고 보석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품고 내 마음 깊은 곳에 내려왔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에는 느낌이 없다. 쉼이 없고 안식이 없다. 두려움과 염려로 항상 피곤하다. 충혈된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느끼기 위해서는 잠시 멈춰야 한다. 멈출 때 주변이 보인다. 아파하는 아이가 보이고 외로워하는 이들이 보인다.     


‘셸 실버스타인’이 쓴 동화 중에 「잃어버린 조각」이라는 동화가 있다. 이 동화의 이야기는 이렇다.     

귀퉁이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 온전치 못한 동그라미가 있었다. 동그라미는 너무 슬퍼서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내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 동그라미는 이곳저곳 여행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나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고 있지요, 잃어버린 내 조각은 어디 있나요♪”     


때로는 눈에 묻히고 때로는 비를 맞고 햇볕에 그을리며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 그런데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빨리빨리 구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천천히 힘겹게 구르다가 잠시 멈춰 서서 벌레와 대화도 나누고 길가에 핀 꽃 냄새도 맡았다. 어떤 때는 딱정벌레와 함께 구르기도 하고, 나비가 머리 위에 내려앉기도 했다.     

동그라미는 오랜 여행 끝에 드디어 몸에 꼭 맞는 조각을 만났다. 이제 완벽한 동그라미가 되어 이전 보다 몇 배나 더 빠르게 구를 수 있었다. 그런데 떼굴떼굴 정신없이 구르다 보니 벌레와 이야기하기 위해 멈출 수가 없었다. 꽃 냄새도 맡을 수가 없었고 휙 휙 지나가는 동그라미 위에 나비가 내려앉을 수도 없었다.     

노래를 부르려고 애를 써 보지만 너무 빨리 구르다 보니 숨이 차서 부를 수가 없었다.   

   

“내 잃어버린 휙~ 조각을 휙~ 찾았지요, 휙~”     


한동안 가다가 동그라미는 길을 멈추고, 찾았던 조각을 살짝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몸으로 천천히 굴러가며 노래했다.     


“내 잃어버린 조각을 찾고 있지요…….”     


나비 한 마리가 동그라미 위로 내려앉았다.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동그라미는 삐뚤빼뚤 굴러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그라미는 주변의 꽃들과 벌레들과 이야기하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멈춤은 음악에서 쉼표와 같은 것이다. 음악은 음표들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모든 음악에는 반드시 쉼표가 있다. 쉼표가 없다면 우리의 짧은 호흡으로는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된다. 쉼표가 없는 음악이 존재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쉼표 없는 행복은 존재 할 수 없다.     

우리의 삶에 박자는 중요하지 않다. 4분이 2박자든지 4분의 4박자든지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쉼표는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의 쉼표가 내일 더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꽃 냄새도 맡고 노래도 불러가며 함께 걷는 삶이 행복이 있는 삶이다.     


쉼표가 없는 음악이 존재 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쉼표 없는 행복은 존재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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