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던컨 웰던_전쟁과 돈의 역사

주석 없는 책의 폭주에 대항한 내 나름의 읽기 전략

by 안철

던컨 웰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 윤종은 옮김, 서울: 월북, 2026.

Duncan Weldon, Blood and Treasure: The Economics of Conflict from the Vikings to Ukraine, Abacus, 2025.



언제부턴가 주석 없는 책들을 경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표절에 대한 의심입니다. 남의 글을 그대로 베끼면서, 마치 자기가 정리한 것처럼 양심 없이 써먹는 작태가 못마땅했던 겁니다. 둘째는 그 출처의 모호함이나 자의적 인용의 오류를 원전을 통해 재확인해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체로 “이거 어디서 본 듯한 내용인데?”라는 의문이 다른 누군가의 저서를 통해 드러나거나, “이게 맞아?”라는 의문을 참고문헌을 통해 확인했을 때 느낀 분노를 통해 축적한 경험적 태도인 거죠.

이 책 역시 주석이나 참고문헌 목록이 없습니다. 권말 350쪽에서 시작하는 ‘더 읽어보기’란 8쪽 분량의 참고문헌 소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의 인용들이 맥락에 맞게 제대로 가져온 것인지 확인하기엔 부적절합니다.


그렇다 보니 주석 없는 책에 대해서는 좋은 리뷰를 쓰기 어렵습니다.


어디 인용하기도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 내용마저도 끊임없이 의심해야 하니,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행동인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니 대체로 그 책에 대한 비판이나 내용적 재론을 중심에 두고 리뷰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리뷰 행위 자체가 고역이 되곤 합니다. 남이 열심히 쓰고 만든 책에 지청구를 늘어놓는 일이 즐거울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주석이 없어서 혹평을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이 책은 권두에서 선언했던 이 책의 주제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12쪽
이 책은 바이킹 시대부터 최근에 일어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를 아우르며 갈등과 전쟁의 경제학을 탐구한다.

저자는 “경제학에서는 특히 전쟁과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 개념, 유인 incentives과 제도 institutions”를 제시한다고 설명하면서, 이 책은 ‘전쟁의 경제학’을 탐구한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쟁도 경제학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살펴본 내용마저도 경제학적으로 합당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와 보물 blood and treasure’이라는 표현에 합당한 예를 몇 가지 찾아낼 수 있었고, 그래서 시작한 작업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일반적인 서사로 꿰어내는 데는 처참하게 실패했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Blood and Treasure: The Economics of Conflict from the Vikings to Ukraine』입니다. 영어 표현, ‘blood and treasure’는 저자가 서두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영국 사회에서는 17세기 중반부터 “전쟁의 대가”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쓰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인적 피해는 blood로, 물적 피해를 treasure로 압축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 책의 기획 자체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된 정치학과 경제학의 오랜 역사를 생각해 봐도 꽤나 타당하다고 봤으니까요. 일찍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서는 전쟁을 정치적 수단의 하나로 봤습니다. 전쟁을 통해서라도 획득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면, 재생산이 가능한 물적 토대를 안정적으로 갖추는 것으로 결국 경제적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피와 재물’을 획득하기 위해 다시 ‘피와 재물’을 쏟아붓는 자기모순적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첫 발부터 삐끗하고 맙니다.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오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결과를 원인으로 전도시키는 잘못을 반복합니다. 이런 책들, 그러니까 일본의 신쇼처럼 주석이 없이 하나의 재미난 주제로 써 내려간 대중서들이 흔히 보이는 패착입니다. 과해서 미치지 못함과 같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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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에서 다룬 바이킹에서부터 난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딱 하나 타당한 이론적 도입은 “이 모든 이야기는 미국의 경제학자 맨슈어 올슨 Mancur Olson이 제시한 이론에도 꼭 들어맞는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올슨이 1993년에 쓴 논문, 「Dictatorship, Democracy, and Development」에서 제시한 정주 도적 stationary bandit 이론은 몹시 흥미로웠습니다. 261쪽이나 권말에서는 ‘맨커 올슨’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한데요, 최소한 인명 표기 정도는 통일했으면 좋았을 텐데, 참 아쉽습니다.

30쪽
가능하다면 어떤 도적에게 약탈당하지 않는 편이 좋겠지만, 만약 둘 중 하를 택해야 한다면 유량 도적보다는 정착 도적이 훨씬 나은 선택지다. 정착 도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정착 도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가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정착 도적에게는 새 영토가 번영하기를 바랄 유인이 있기에, 그들은 법과 질서 등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공재를 제고하기 시작한다. 밀렵꾼이 때로는 뛰어난 사냥터지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여기에 반론을 제기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도적 같은 국가와 국가 같은 도적은 병리적 정상과 정상적 병리의 차이만큼 큽니다. 되레 논문의 원래 목적대로 독재와의 연관성에 더 합리적인 이론이 될 듯합니다.

그렇다 보니, 바이킹에 대해서는 되레 로널드 코스 Ronald Coase와 올리버 윌리엄슨 Oliver Williamson에 의해 도입된 ‘거래비용 transaction cost 이론’을 적용해 보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거래비용 이론은 ‘기업이 시장에서 거래할 때 발생하는 정보 탐색, 협상, 계약 준수 등의 거래 비용이 내부 생산 비용보다 높을 때, 기업이 내부화를 선택한다’고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말린 대구와 같은 장기보존식이나 바이킹 롱십의 개선이 ‘거래 비용’을 감소시켰고, 이에 따라 바이킹식 약탈 경제는 경제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겁니다.


몽골 제국과 팍스 몽골리카에 대해선 경제학보다는 경영학이나 행정학을 고민해 보는 게 맞지 않나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걸 중구난방으로 건드립니다. 마피아의 보호비 착취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모델은 앞서 바이킹과 겹칠 뿐이니 굳이 건드릴 필요가 없었으니, 세계화에만 집중했더라면 더 좋았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도 저도 아닌 챕터가 됐습니다.

저는 되레 몽골 제국이 유지되기 위해 그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적응한 제도들이 더 의미 있어 보였는데요, 그렇다면 딱히 ‘경제학’의 영역에 머무는 문제가 아니니, 저자가 다룰 수는 없었겠지요.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다음 챕터에서 그 아쉬움이 증폭됩니다.


세 번째 챕터에서는 군사력 유지의 경제학을 다룹니다. 몽골제국에서 바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이지만, 그냥 딴소리를 합니다.

군사력의 유지와 관련된 가장 흥미로운 경제학 이론은 게임 이론에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죄수의 딜레마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안보 딜레마 Security dilemma가 그 주인공입니다. 경쟁하는 두 국가는 서로 군비를 축소하는 것이 파레토 최적이지만, 군비를 확장하는 것이 내시 균형이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반란을 억제하기 위해 군비를 확장하지 않는 것과 외적에 대항하기 위해 강력한 군비를 구축하는 것 사이의 딜레마 역시 파레토 최적과 내시 균형의 불일치를 보입니다.

61쪽
장궁을 채택하면 전장에서 우위를 점해 대외 안보를 강화할 수 있었으며, 이웃 나라들이 아직 쇠뇌를 쓰는 상황에서는 그 효과가 더욱 컸다. 하지만 장궁병을 육성해 내외 안보를 강화하는 일은 장차 대내 안보를 뒤흔들 가능성이 있었다. 왕에게 반기를 들 위험이 있는 귀족들이 국가의 장려하에 훈련을 받은 데다 전장을 지배하는 무기를 직접 마련할 수 있는 다수의 병사를 거느리게 되기 때문이다.

쇠뇌 crossbow vs 장궁 longbow의 군비 체계 경쟁은 아쟁쿠르 전투(1415)와 크레시 전투(1346)에 의해 입증되었으나, 비용 효율성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다 보니 섣불리 판단하긴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장궁의 시대는 1450년 무렵에 이르러 서서히 막을 내렸다”지만, 이후에 등장하는 화기와 성형요새의 시대는 다시 한번 군비 경쟁의 안보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왠지 이렇게 트집을 잡다 보니 새로운 인사이트가 생기게 됐습니다. 당혹스럽습니다.


전쟁은 반드시 재정 위기를 가져옵니다.

전쟁이란 행위는 엄청난 인적자원 blood과 물적자원 treasure를 때려 박아 소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막대한 전비戰費를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역사 이래 모든 전비戰備의 숙제였습니다. 이 오랜 숙제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4장, 8장, 11장, 12장, 13장을 동원해 풀이합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는 “국가는 합리적으로 생각한다”고 전제합니다만, 펠리페 2세 치하의 스페인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저자는 4장을 통해, 국가재정이 더욱 풍부해지는 상황에서 왜 스페인은 국가부도를 피할 수 없었는가를 설명합니다. “16세기에는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는데, 이는 “1540년대부터 페루와 멕시코에서 값싸게 채굴한 은이 쏟아져 들어오자 유럽의 통화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통화량 증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에 대한 감각이 1도 없던 시절, 군비를 탕진하던 펠리페 2세는 “귀족, 상인, 성직자 등 현금이 많은 사람들에게 세금을 면제받을 권리나 지역에서 독점적으로 사업할 권리를 판매”하고 맙니다. 나라 경제가 두 번 망하게 되는 결정적인 패착이죠.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대한민국의 ‘민영화’가 떠오르기도 하죠.


그래서 저자는 8장을 통해, 영국의 다른 면모를 소개합니다. 바로 영란은행 Bank of England입니다.

149쪽
이 같은 혁신을 완성한 마지막 요소는 잉글랜드 정부가 새로운 체제의 성공을 바탕으로 1694년 설립한 잉글랜드은행 Bank of England이었다.

저자는 “영국이 프랑스처럼 훨씬 인구가 많은 국가와 국제 무역의 패권을 놓고 경쟁할 수 있었던 이유”를 “필요할 때 훨씬 많은 돈을 빌리는 능력”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이 영란은행인데, “의회의 동의하에 세금을 걷는 국왕은 징수로써 부채를 갚을 능력과 의지가 있음을 입증했고, 이제 사람들은 잉글랜드은행을 통해 정부에 돈을 빌려주는 것을 믿을 투자로 여기게 되었다”고 부연합니다.

영란은행이 오늘날의 중앙은행의 전형성을 갖추는 것은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입니다. 최초 민간은행으로 시작한 영란은행의 주요 기능은 전쟁비용을 조달하기 위한 채권 발행이었습니다. 그러니 발권 기능과 통화 정책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의 기능을 설명하는 또 다른 챕터가 필요해집니다.


저자는 11장에서 미국의 중앙은행 제도 도입사를 살펴봅니다.

미국의 연방정부는 1789년에 출범했더군요. 1776년 독립 선언을 한 뒤,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서야 연방정부가 성립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었습니다. 하여튼 새로 출발한 연방정부는 전쟁부채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연방은행을 만들고 각 주의 채권을 연방은행이 흡수하고, 마치 영란은행이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하는 방식이 되면, 부채의 위험성을 줄일 뿐만 아니라 그 활용도도 높일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제법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05쪽
뉴욕의 부채를 연방 정부의 부채로 통합하는 것은 뉴욕의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엘리트 계층이 미국의 앞날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인을 제공한다는 이점이 있었다. 자신의 재산이 미국 정부가 갚아야 할 부채에 묶여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미국의 성공을 바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남북전쟁을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어마어마한 군비가 필요해졌고, 이를 위해 채권 발행을 통한 부채 차입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때 태환지폐 convertible note의 일종인 미국 연방 정부의 ‘요구 지폐 demand note’를 5000만 달러어치 발행했습니다. 1863년에 제정된 ‘국립은행법 National Banking Act’은 재무부와 연방 허가를 받은 은행들만이 이 지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정했습니다. 그리하여 저자는 “잉글랜드은행과 파운드스털링은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제2차 백년전쟁을 계기로 탄생”했고, “해밀턴 모먼트가 완성되는 데 4년간의 치열한 내전이라는 촉매가 필요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엇하나 주목해 볼 만한 내용이 없는 12장을 넘어가서 13장에 이르면, ‘총력전 total war’라는 말에 눈길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252쪽
20세기의 두 총력전을 종합해서 살펴보면 몇 가지 경제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과 독일이 맞이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듯, 총력전의 승패는 단순히 누가 더 무기를 많이 생산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두 번째로 그보다 더 중요한 교훈은 결국 경제력이 총력전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운이나 우연, 돌발적인 변수가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영학의 조직 관리 이론이 적용되어야 할 주제를 다룬 7장의 해적, 9장의 영국 해군, 10장의 동인도회사, 14장의 루프트바페 역시 저자의 주장보다는 다른 생각을 더 많이 해보게 됩니다. 특히나 해적의 분배구조에서는 반복게임 구조가 주는 신뢰성과 팃포탯 전략을, 14장 루프트바페에서는 파레토원칙과 롱테일법칙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번역에 대해서도 불만을 떠올리게 됩니다. 17~18세기 영국 해군의 사관 commissioned officer 체계는 선장 captain-부관 Lieutenant-사관부호 midmanship의 3단 체계를 이룹니다. 물론 육전대장 marine captain이나 선의 surgeon, 군목 chaplain과 같은 별도의 계급이 있기도 하지만, 해군의 영역은 아닙니다. 따라서 해군 게급인 루테넌트는 '중위'가 아니라 '부관'이 되어야 합니다. 소년인 사관후보들이 몇 해 해상 수련을 거치고 나면 루테넌트로 진급을 하게 되는데, 임관 순서대로 서수로 부르게 됩니다. 적선을 나포하게 되면 대체로 1부관 1st Lieutenant가 커맨더 commander가 되곤 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번역이 너무 성의없이 이루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러면 빈약한 번역이 맥락을 깨뜨리고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게 됩니다.


도대체 주제인 ‘blood and treasure’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5장, 6장, 16장, 17장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17장의 경우 신호이론 정도가 생각날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짜증 가득한 리뷰를 쓰고 나니, 기시미 이치로가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혼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지식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수”라는 말이 무엇이었나 되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기 하기 나름이란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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