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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Oct 06. 2021

[북리뷰] 윤대녕,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중앙일보사 1995. 문학동네 2005 복간. "전자책이 된 옛날 소설"

1. 옛날 소설이 그리워졌다.

윤대녕의 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는 1995년에 출간됐다. 그러니까 26년이나 된 소설이란 이야기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영화는 1960년작 <태양은 가득히>였고,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93년이었으니, 지금에 와서 돌아보는 이 소설 역시 옛날 소설이란 호칭이 과하지는 않을 테다.

 

늦은 오후, 작정하고 책을 읽기 위해 할리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리처럼 노인네 입맛의 아재들은 얼죽아파들을 절대 이해 못한다. 당뇨가 온다 해도 달달하게 마셔야 하므로, 아이스 카페 모카 그란데 사이즈로 하나 시켜놓고 멜론의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데이브레이크와 스윗소로우의 곡을 저장된 것을 플레이했다. 한참을 듣다 보니, 스윗소로우와 바버렛츠가 리메이크한 <좋을텐데>가 흘러들어왔다.

성시경이 2002년 발표한 "Melodie d'Amour" 앨범의 수록곡이 참 깔끔하게 리메이크됐다 생각했을 때쯤, 불현듯 윤대녕의 소설이 떠올랐다.

 

스무 살에  만나 매료되었던 그 소설이 사무치도록 그리워진 건 뜻밖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쯤엔 윤대녕의 소설에 환멸을 느꼈었걸 떠올리면, 참 대단한 변덕이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이 옛날 소설을 대체 어디서 구해서 다시 읽겠단 말인가?

 

2. 옛날 소설을 찾아 읽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전자책도 대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올해 초였다. 구립 문화원에서 발간한 책자를 전자책으로 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로는 종종 이용하곤 있는데, 아무래도 장서가 부족했다. 결국 서울도서관과 서울교육청 공공도서관으로 도서대여의 대상을 확장해야만 했다.

 

바로 읽어 보고 싶었다. 당연히 전자책을 검색해봤다. 그런데...

있었다. 그 옛날 소설이 전자책으로 검색이 됐다. 바로 대출을 하고 읽기 시작했다. 애초에 읽기 위해 들고 갔던 책은 하릴없이 테이블 위에 방치될 뿐이었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는 2005년 문학동네에서 복간됐고, 2011년 전자책이 발간됐다. 한참 전자책 보급 사업이 정부지원으로 이루어지고, 너도 나도 전자도서관을 구축하던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덕일 테다. 10년쯤 지나자, 앉은자리에서 원하던 책을 바로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일반화된 것이다.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 책(The Book)>의 저자 애머런스 보서크(Amaranth Borsuk)는 “우리는 덜 읽는 게 아니라 다르게 읽는 것”이라며 전자책의 시대가 독서의 위기가 아님을 천명하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책(codex)의 물성에 기초한 독서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3. 옛날 소설은 역시 옛날 소설이었다.

 

대학 입학 전이라 아직 상경을 하지 못했던 강원도 산골 소년(…이라기엔 이미 아저씨 소리를 듣던 노안의 스무 살 청년)에게 윤대녕의 문체는 눈이 돌아가게 세련되어 보였다. 서울이란 도시의 공간을 묘사하면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고유명사를 써내고 있는 그의 문체는 파격이었다.

이를테면 할리스 대신에 카페로, 멜론 대신 음악스트리밍서비스로, 성시경 대신 “이젠 40대가 된 2000년대 발라드 가수”쯤으로 묘사하는 것이 당대 소설의 관행이었다.

종로2가 YMCA 근처의 카페라던가,  국민은행 주차장에서 콩코드 승용차를 꺼내 광교와 남산터널을 지나고, 한남대교를 건너 역삼동으로 간다는 윤대녕의  서술이 지금처럼 눈에 선하게 그려질 수는 없었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산골 소년….은 좋았다.

 

하지만 인물의 설정이라던가, 인물 간의 대화에서는 끔찍할 수준으로 핍진성이 떨어졌다. <은어낚시통신>과 함께 스무 살 청년을 사로잡았던 마법과 같았던 세련됨이 몇 년 사이 급속도로 도금이 벗겨지듯 빛을 잃었던 이유가 기억났다.

일상적 회화라고는 1도 이루어지지 않는 이 판타지 서사를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20대 후반에는 겉멋이라 혹평했던 서사를 이제는 젊은이의 치기쯤으로 웃으며 넘길 수 있길 바랬지만…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쉽지 않았다.

도대체 이 서사는 무슨 헛소리를 하고 싶었던 것인가 자신에게 다시 물어봐도, 헛웃음이 쓴웃음이 될 뿐이었다. 권미에 붙어있던 주례사비평도 서론만으로 흥미를 잃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탐정서사의 틀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꽤나 흡인력 있게 독자를 독서로 이끈다. 뒤틀린 인물들과 핍진성 1도 없는 서사지만, 이상하게 익숙할지도 모르겠다. 일본만화, <올드보이>를 봤다면 말이다. <올드보이>가 만화잡지에 연재를 시작한 것이 1996년이었고, 한국어로 번역되어 만화방에 배포된 것이 1998년이었다. 분명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가 출간일도 앞서 있었고, 읽기도 먼저 읽었을 터인데도, 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건 보다 핍진하게 서사를 꾸려나갔기 때문일 테다. 만화보다 영화가 호평을 받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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