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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Feb 01. 2023

[북리뷰] 신현훈_『버티고 있습니다』

책과이음. 2022. "이름처럼 버티고 있는 책방 이야기가 아리다"

1.

 파주의 동네책방, ‘미스터 버티고’의 책방지기인 신현준의 에세이집을 읽었다.

 “대책 없이 부족하지만 어처구니없이 치열한 책방 미스터 버티고 생존 분투기”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책방 운영’이라는 주제에 집중해서 응집력 높은 글모음이 됐다. 문학성을 확보한 뛰어난 문체라고까지 말할 수준은 못되지만, 준수한 필력으로 지루하지 않게 쫓아갈 수 있는 재미난 문장들을 선보인다. 아무래도 프롤로그에서 선언했듯이, ‘솔직하게’ 쓴다는 글쓰기 전략이 유지된 덕이리라.     

 무엇보다 솔직하게 쓸 거다. 애들한테 거짓말하면 안 되니까. 실습실의 해골 뼈다귀 모형이 된다는 심정으로(168센티미터에 51킬로그램이다) 어깨 뽕 안 넣고, 액면 그대로, 탈탈 털어서, 다만 지질한 넋두리는 되지 않게 주의하면서, 그렇게 솔직하게 쓰려고 한다.
- 6쪽    

 아무리 솔직하게 쓴다고 해도, ‘고백이라는 제도’는 있는 그대로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고백이 왜곡된 또 하나의 권력 의지”라는 가라타니 고진의 지적을 참고해 본다면, 조금 더 명확해질 테다.

 그리하여 조금은 거칠고, 살짝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도, 다소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충고도 맞닥뜨리게 된다.     

 읽어봐야 별거 없다. 다만 동네책방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읽어도 좋다. 일고 생각 접으라는 뜻이다. 또 하나, 지금 동네책방을 하는 사람도 괜찮다. 읽으면 내가 더 낫네, 하고 충분히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거다.
- 7쪽 

 꽤나 마음을 아리게 하는 말이다.

 ‘소설가 은희경 선생이 1년간 낭독회를 열었던 서점’이라는 명성, ‘쇼핑몰 안으로 들어간 독특한 동네책방’이라는 명성도 어느새 그 힘을 잃고, ‘미스터버티고’는 다시 골목 안으로 돌아왔다. 바라보고 있자면, 명치끝이 답답해진다.          



2.


 숀 비텔의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진상 고객’들이 실재한다는 것, 그 빈도가 그리 적지 않다는 것은 지난 한 해 여러 책방지기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확인 과정에서 내가 그런 ‘진상 손님’ 중에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서점업이란 것은 결국 소매업이며, 소매업은 어쩔 수 없이 서비스업으로 귀속된다. 고객과 대면해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그에 부가되는 용역을 제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인간들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게 참 쉽지 않다. 내 입(이 아니라 글을 타이핑하는 중이니 손이라 해야 할 듯하다.)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지만, 세상에 별의별 인간들이 다 있고, 상상하지도 못했던 진상짓들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이루어진다. 이런 건 매뉴얼을 만들어 놔도 어떻게 응대가 되지 않는다. 

 “은혜는 못 갚아도 원수는 꼭 갚는 게” 비단 드라마 <추노> 속의 캐릭터 천지호만의 습성은 아니라서, 악감정이 생긴 내방객의 복수는 꽤나 처절해진다. 그렇다 보니 종국에는 법정다툼까지 이루어지곤 하는데, 그 싸움 끝에는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만이 남게 되더란 말이다. 허탈하기 그지없다.     

 책방 이전 때 전체 고객한테 안내 문자를 보냈는데, 그 여자의 고객 정보가 그대로 남아 있었나 보다. 여자가 그따위로 손님 응대하고 돈 벌어 이사해서 좋겠다며, 왜 나한테까지 이런 문자를 보내냐며 불쾌하다고 하고는 답장 보내지 말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기분 나빠서 나도 답장을 보내 싸울까 했지만 참았다. 지금이라면 그때처럼 응대하지 않았을 테니까.    
- 69쪽 

 서로 저 정도로 끝난 건 천만다행이다.     



3.

  첫째, 스스로 유명해질 것,
둘째, 책만 팔지 말 것,
셋째, 커뮤니티를 형성할 것,
넷째, 할인하지 말 것,
다섯째, 임대료 적은 곳에서 시작할 것.     

 

 <책방 주인의 자질에 대하여>에서, 저자가 일전에 기고한 글의 일부를 다시 옮겨온 것이라고 했다. 곱씹어 볼 부분이 꽤 많다.     


 우선 첫째, 스스로 유명해질 것.

 동네책방이란 건 책방지기 1인의 강성strength에 의지해서 운영되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그 1인이 어떻게 기능하느냐에 따라서 책방의 콘셉트가 결정되기도 한다. 아나운서 김소영의 책방, ‘당인리책발전소’나 가수 요조의 책방, ‘책방 무사’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을 해도 일단은 ‘셀럽 책방’이라는 범주화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은 언제나 시인 유희경의 서점과 동치 된다. ‘유명한 책방지기’는 분명 서점 운영에 도움이 된다. 물론 배우 박정민의 ‘책과 밤낮’의 폐업은 다소 의외이긴 한데, 그 속사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속단할 순 없다.

 물론 책방 운영을 통해 스스로 유명해진 사람들도 제법 있다. ‘땡쓰북스’, ‘북소사이어티’, ‘스토리지앤필름’, ‘유어마인드’의 책방지기들이 다양한 출판문화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기도 했다. 이른바 ‘1세대 독립서점’(독립서점이란 기원이 은폐되어 자명한 것으로 통용되지만, 막상 따져 보면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은 결국 ‘동네책방’이라는 새로운 호명으로 대체하기 위한 움직임에 직면해 있다.)이라 불리는 곳의 여러 책방지기들도 생존이 담보하는 ‘연륜’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쯤에서 등장하게 되는 마케팅 용어가 ‘브랜딩’이다. ‘서점업’에 대한 통찰에 기반한 각 서점의 특색 있는 콘셉트는 각자 나름의 ‘브랜드’를 만들어냈고, 그 브랜드가 시장에서 재판매될 수 있도록 PR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노력이 쌓여서 지금의 탄탄한 브랜드 지위를 획득하는 ‘외부 브랜딩’에 성공했다. 그 와중에 자신들만의 ‘색깔’을 지켜나가면서 ‘변화’를 모색하는 ‘내부 브랜딩’에서도 좋은 결과를 낸 것이다.

 ‘스스로 유명해질 것’이란 표현 자체는 거칠고 두루뭉술하지만, ‘책방을 성공적으로 브랜딩 할 것’이라고 읽어본다면, 반드시 따라야 할 충고가 될 테다. 

         

 둘째, 책만 팔지 말 것 역시 마찬가지다. 책만 팔지 말라는 것은 ‘서점이란 공간 서비스’를 팔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일본의 혼야(本屋, 책방지기라 번역할 수 있다.)들이 펴낸 여러 책들, 이를 테면 이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기타다 히로미쓰의 『앞으로의 책방』이나 맥주 파는 책방으로 유명해진 ‘B&B’의 우치누마 신타로의 『앞으로의 책방 독본』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내놓은 그 개념들을 말이다.

 단순히 음료/주류를 판매한다던가, 다양한 굿즈를 들여놓는다는 단선적인 사고는 피해야 한다. 음료를 판매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만 한다. 

 ‘북바이북’을 운영하는 김진양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카페에서 북카페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보틀북스’의 과정도 ‘애매한 인간’ 채도운의 책을 통해 넌지시 들여다볼 만하다. 우리 동네에는 ‘자상한 시간’이라는 책방이 있다. 아내는 서점 운영을 담당하고, 남편은 카페 운영을 담당한다. 남편이 내리는 ‘융커피’는 제법 맛있는데, 아내가 외부에 나가 있을 때, 빈집 지키기는 카페지기인 남편 몫이 된다. 간단하게 책값 계산을 치러주는 ‘알바’의 역할을 대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것은 ‘혼자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서이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셋째, 커뮤니티를 형성할 것이란 충고로 넘어갈 수가 있을 테다. 동네책방에 투영하는 고객들의 욕망은 참 다양하다. 단순히 책이란 상품이 갖추어져 있어서, 그 물건을 현장에서 바로 구매해 나오는 곳만을 의미하지 않게 됐다. 그리하여 독서모임과 같은 형태의 커뮤니티를 소구 하는데, 여기에는 꽤나 다양한 욕망이 녹아들어 간다.     

 지금까지 책방을 운영하면서 독서모임을 꽤 많이 봤는데, 생각보다 나도 참여하고 싶을 만큼 제대로 운영되는 모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강제력이 없으니 멤버는 수시로 바뀌고, 참석자가 없어서 주관자 혼자 앉아 있다 그냥 돌아가는 경우도 봤고, 다행히 참석자가 많으면 모임 주관자가 너무 많이 개입해서 마치 선생님한테 수업 듣는 것처럼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고,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말을 독점해서 한다거나, 책보다 잿밥(이성)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책을 읽고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자기가 얼마나 많이 아는지 자랑하는 시간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 109쪽   

  이렇게 다양한 욕망은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우리 책방에서 유치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수다 프로그램을, 잿밥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가벼운 홈파티 프로그램을, 결석이 잦은 독서모임에 강제성을 높이기 위해 참가비환급프로그램 등을 적용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넷째, 할인하지 말 것은 뭐라 덧붙일 수 있는 말이 없다.

 소매로 하는 서점업의 마진율은 30%를 넘지 않는다. 원재료비가 기본적으로 7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간접경비들을 합치면 이익률은 한 자릿수도 곤두박질친다. 1년 매출이 3억이라고 해도 여느 회사원 월급만큼도 벌기 힘들다. 그런데 혼자 책 팔아서 연간 매출 3억을 올리는 건 연간 진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일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계속해도 쉽지 않다.       

일단멈춤을 시작한 뒤로 주 6일, 하루 평균 9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 그렇게 벌어들인 매출에서 월세와 각종 세금, 도서 구입비, 워크숍 강사비, 위탁 수수료 등을 제하고 나면 60~80만 원 남짓의 순이익이 손에 남았다. 2016년 최저임금 6,030원.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일하는 근로자의 임금 1,260,270원보다 못한 액수다. 
- 153쪽. 송은정.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 효형출판. 2018.     


 그렇다 보니 다섯째, 임대료 적은 곳에서 시작할 것이라는 충고가 덧붙여진다. 심지어는 먼저 시작한 책방지기들 중에서는 ‘반드시 자가에서 시작할 것’을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충고를 하기도 한다. 은행에 이자를 내기는 마찬가지여서 월세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계약만료에 따른 퇴거나 원상복구 등의 매몰비용은 어찌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한숨 섞인 농담을 건네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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