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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Jul 30. 2023

제목을 배반한 책_화려한 편집을 벗겨낸 부실한 내용

엄창호. 『우리를 배반한 근대』. 여문책. 2023.

1. 깜냥의 중요성


 어쩌자고 이런 주제를 덥석 물고, 이런 엉터리 책을 쓰게 됐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생각뿐이다. 근대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사학적 토대 위에 철학과 문예의 이론사를 중첩시키지 않으면 논의를 이어나가기 어렵다. 인문학을 모두 아우를 정도로 현철한 사람도 인류사에 흔치 않거니와, 그 깊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적어도 학계에서 30년 이상은 통섭적 연구를 거듭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다.  여기에 경제와 사회사까지 덮어보려고 한다면 대부분 꼴값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 책이 그렇다.


 스스로 깜냥을 잘 가늠하고, 그에 맞춰서 연구의 깊이를 가져가며, 그 결과로 책을 써내면, 제법 읽을 만한 책들이 나온다. 이제 갓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면서도 자신의 연구 분야에 천착해 써낸 책이 흠잡기 어려운 책이 되는 것처럼, 누가 봐도 그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연구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책을 쓰면, 쉽게 말해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책이 그러하듯이, 재밌기까지 한 책이 나온다.


 하지만 어설프게 접근하면 이런 책이 나오게 된다. 근대적 기획(modern project)이나 근대적 제도(modern institution)의 일부에서 발생하는 시뮬라시옹을 제대로 포착해내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도식화하려다 보면, 이런 식의 논리적 정합성을 갖추지 못하는 프로파간다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와 같은 엉터리들을 계속 보고 있자면, 내가 왜 이 책을 손에 쥐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기까지 하다.



2. 모던-포스트 모던-컨템퍼러리


 modern에 대한 역어로 '근대'를, contemporary에 대한 역어로 '현대'를 사용하는 건 일반적인 듯하다. 현재 널리 통용되고 있는 '선사-고대-중세-근대-현대'의 역사 구분이 그러하듯이, 대략적으로 1945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은 '모던 시대'로, 그리고 혼란의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부터를 '포스트 모던 시대'로 보는 듯하다. 이 '포스트 모던 시대'는 1990년대까지 이어졌는데, 그 당시에는 '컨템퍼러리'한 시대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당시에 식민사관 중에 하나였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반박으로 한국사의 근대 기점에 대한 논의들이 꽤나 활발히 논의되었다. 유럽의 제도사 관점에서 형성된 '모던 시대'가 동양과 맞닿을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19세기 중반에 폭발적으로 경험하게 된 '모던', 그러니까 근대적 기획(modern project)이나 근대적 제도(modern institution)의 경험이 꽤나 역사적 맥락에서 단절적으로 경험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이식(移植)의 경험'은 '근대의 기점' 담론으로 발전하게 되고, '식민지 근대화론'의 토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이에 90년대까지 '근대'라는 역어의 문제성을 몹시 강하게 지적하면서, '근대'의 설정에 대한 꽤나 여러 가지 논의가 진행되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다. '포스트 모던 시대'도 이제는 '컨템퍼러리'의 범주 안에 넣기 어려워졌다. 따라서 세계사적 관점에서는 모던 시대를 '초기 모던(early modern)'과 '후기 모던(late modern)'으로 분리하고, '컨템퍼러리 시대'를 더욱 크게 확대해 나아가는 듯하다.


 '포스트 모던 시대'는 인문학적으로는 '포스트 구조주의 시대'로 불렸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전복적 사고가 유행하던 시대였다.


 근대적 기획에서 탄생한 계몽(enlightment)이라는 제도(institution)는 그 기원이 은폐되고 스스로 자명한 무엇이 되어 어느샌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시뮬라크르로 작동하고 있었다. 이 유령에 대한 포스트 구조주의적 비평이 '포스트 모던 시대'에 쏟아져 나왔고, 그 숱한 결과들을 이 책에서 인용한 여러 책들에서 확인할 수가 있다.  권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참고문헌 중에서는 읽어 볼만한 책들이 제법 많다. 다만 그 챕터에서 인용하기엔 부적절할 정도로 터무니없이 동원된 책들이 적지 않다는 점도 이 책의 단점이다. 이 책에 작가 자신이 쓴 두 문장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책을 충실히 소개하기보다 자신이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체계에 책 내용을 꿰어 맞춘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보기에 이들은 부분적으로 책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한 공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책을 오독誤讀함으로써 독자 또는 시청자를 오도誤導하고 있었다. - 260쪽



3. 편집 디자인은...

 편집 디자인은 참 마음에 든다.  작가 본인이 그린 캐리커처가 심심할 수 있는 디자인에 꽤나 활력을 불어넣었다. 70g  클라우드지로 보이는 종이는 두툼한 볼륨감을 줘서, 독서효능감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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