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본 픽션은 나츠메 소세키의 <열흘 밤의 꿈>에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이런 꿈을 꾸었다.
두 남녀가 몸을 섞고 있는 장면이 언뜻 비쳤다. 남자는 나였고, 여자는 얼마 전 이 건물 옥탑에 이사 온 학생으로 매일 아침 생수를 사러 왔다. 어떻게 된 경위냐 하면, 꿈에서 나는 슈퍼 주인이 아니라 노래방 사장이었고, 여학생은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이 아니라 노래방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일하기로 되어 있었다. 어째서 그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학생의 근무시간은 그랬다. 사람들이 전부 돌아가고 가게 문을 닫기 직전, 청소 같은 걸 시키려는 모양이었나 보다.
첫날 여학생은 정확하게 새벽 3시에 일하러 왔다. 두껍고 까만 테두리의 오래된 벽시계가 정각 3시임을 입증했다. 학생은 개수대에서 걸레를 빨아다가 문틀을 닦기 시작했다. 나무 문틀에는 손님들이 마시다 흘린 콜라 얼룩이 많아서 닦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 학생이 쭈그려 앉아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을 때 내가 등장했다. 4시쯤이었다.
“수고가 많으시죠. 이 시간에.”
내가 말했다. 정중하고 고상하게. 그렇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점잖은 배우 흉내를 냈다.
“아니에요. 사람이 없어서 일하기가 좋아요.”
여학생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한 웃음이었다. 순간 그애를 겁탈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만져보고 싶었다. 다만 생각일 뿐이었다. 학생의 태도가 안정적이었으므로 범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아무리 사장이라고는 하나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난 남성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호감이나 애정이 배제된 두 남녀가 밀폐된 공간에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여성이 느끼게 될 위축감과 공포가 그애에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감지해냈다. 걸레를 움켜쥔 학생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그애는 태연을 가장함으로써 두려움을 숨기고 상대가 나쁜 맘을 먹지 못하도록 무언으로 독려했던 것이다. 제법인 걸. 빨리 만지고 싶었다. 하지만 첫날이었다. 그애를 안심시켜서 나에 대한 경계를 풀게 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계속 수고해줘요. 저는 이만.” 하고 나는 쿨하게 사라졌다.
여학생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는 계속해서 문틀을 닦고 맥주 캔을 줍고 마이크 선을 정리했다. 휴우, 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완전히 방심한 채로 일에 열중했다.
성공이야, 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새벽 3시, 어김없이 학생은 출근했다. 나는 5시쯤 나타났다. 그애는 여전했다. 열심히 청소만 하고 있었다. 감시하는 사람도 없는데 성실한 친구야, 참 마음에 들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고용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애의 행동을 보고 다시 범죄자로 돌아섰다. 어제처럼 걸레질을 하고 있었는데 자세가 남달랐다. 어쩐지 요염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데도 그냥 줍는 것이 아니라 뭐랄까, 물결모양을 그리듯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여서 뭐랄까, 흐물거린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좀 요상했는데 순간 아랫도리가 뻣뻣해짐을 느꼈다.
때마침 여학생과 눈이 마주쳤다. 그애는 웃었다. 비웃은 것 같았다. 얼굴이 벌게지고 말았다. 그애는 돌아서며 질끈 묶은 머리카락을 풀어 흩뜨렸다. 긴 머리카락이 찰랑찰랑했다.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 후 그애는 다시 머리카락을 정돈해 동그랗게 말아 올렸다. 새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이건 뭐지, 의도적이야, 내가 놀아나는 것 같잖아. 이윽고 그애는 바지를 돌돌 걷어 올렸다. 무릎 위로 드러난 허벅지가 물컹하고 말랑거릴 듯했다. 그러더니 마치 준비해놓은 듯, 커다란 대야 속에 첨벙첨벙 발을 담그고 이불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이불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여학생이 나를 시험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분명해졌다. 고얀 년, 내가 못할 줄 알고? 어떻게든 널 해버릴 테다!
“같이 좀 밟아주실래요?” 학생이 말했다.
“네?” 당황했다.
“좀 도와주세요.”
“아니, 전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황급히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이로써 그애는 나에 대한 경계를 전부 풀었다. 나를 떠올리며, 내 생각이 짧았어, 그저 좋은 사장님일 뿐이야, 라고 신뢰하는 듯 흐뭇하게 웃기까지 했다.
다음날도 그애의 출근시간은 정확했다. 학생의 옷차림은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이던 전날들과 달랐다. 제법 꾸몄다. 새벽 3시부터 청소하는 일을 시작하는 여자애가 어울리지 않게 시폰 원피스를 입었다. 얼굴엔 분칠도 한 것 같았다. 그애가 일을 시작하고자 잔꽃무늬 소매를 걷어붙였을 때 나는 다짜고짜 여학생에게로 돌진해서 룸으로 밀어 넣었다.
“날 유혹했지?”
그애의 양 팔목을 강하게 붙들어 소파 위로 쓰러뜨렸다. 약간의 저항만 있을 뿐 여학생은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일하는데 이런 옷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씩씩거리며 원피스 자락을 쥐어뜯었다. 그애가 몸을 뒤틀며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 오냐, 그래. 이제야 저지를 맛이 나는구나.
“그러다 찢어지겠어요.” 갑자기 정색하고는 여학생이 말했다. “찢어진 옷을 입고 길거릴 배회하면 누구라도 단번에 강간당했다고 생각해요.”
“뭐라고?”
“방금 말한 그대로.”
젠장, 어느새 옷을 벗기는 손길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애는 쉽게 체념한 듯 미동도 없었다.
“어서 끝내요.”
“뭐라고?”
“빨리 하라고요.”
“니가 지금 그런 말 할 입장이야?”
“어차피 당할 운명이잖아요.”
나는 조금 황당했지만 바지를 내렸다. 그랬더니 여학생이 슬며시 다리를 벌려주는 것이다. 맥이 빠졌다.
화가 나서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저항을 좀 하라고, 저항을!”
“어차피 당할 텐데 뭐 하러 저항해요?”
“니가 그러니까 못 하겠어…….”
“겨우 모면했네. 이제 일해도 되죠?” 하며 그애가 일어나려고 했다.
나는 다시 그애를 붙들어 눕혔다.
“뭐 하는 짓이야. 해버릴 거라고! 내가 우습냐. 죽일 수도 있어!”
“우습다니요. 무서워 죽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침착한 자세로 되돌아갔다.
“해버릴 거야. 각오해!” 말은 했지만 발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여학생 위에서 몇 분을 쩔쩔매고 있었다.
“뭐 하는 거예요?” 그애가 짜증 난다는 투로 말했다.
창피했다.
“할 수는 있어요?” 이번에는 걱정스럽다는 투다.
죽고 싶어졌다.
“불쌍한 사람이네.” 동정하고 있다.
고개를 떨구었다.
“난 죽거나 당할 운명이죠?” 학생이 말했다. “차라리 내가 해버릴게요.”
여학생은 능숙한 척 내 몸 위로 올라타더니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나는 금방 정상적인 남성으로 변모했다.
그렇게 된 것이다.
여학생은 내 정수리를 개처럼 쓰다듬고는 몸을 추슬렀다. 좆도 없는 게, 그러더니 휑 나가버렸다.
그애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도 나는 얼마간 알몸으로 떨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4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근무시간 이탈, 넌 해고야…….
꿈에서 깨어 복통이 심하다는 핑계를 대고 와이프에게 슈퍼를 맡겼다. 가게 문을 닫고 들어온 와이프가 “당신 많이 아파? 윗집 학생이 당신한테 못 좀 박아달라는데.”라고 말했을 때 나는 정말로 죽을 듯이 배가 아파졌다. 일주일간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