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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다짐 Nov 14. 2018

오늘의 트위터

아무튼, 트위터 얘기

<아무튼, 트위터>를 읽고 나의 트잉여 시절을 회상해본다. 나의 트잉여 시절을 회상하려고 <아무튼, 트위터>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트위터 얘기.


모든 게 다 서럽고 고달픈 때가 있었다. 서른, 그때 나의 위로는 자전거와 트위터였다. 매일 자전거를 타고 매일 트위터를 들락거렸다. 발악하는 마음으로 꽤나 열심이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살아 있음이 느껴졌다.

자전거를 탈 땐 많이 울었다. 천변을 따라 냅다 달리다가 별안간 큰 소리로 울음이 터져서 애써 하하하 웃어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닌 것 같다.

트위터를 하면 덤덤해졌다. 언제 접속해도 트위터는 복닥거렸다. 자기들끼리 혹은 혼자서 묵묵히, 웃고 떠들고 싸우고 짜증 내고, 기뻐했다가 슬퍼했다가 자랑했다가 분개했다가 감탄했다가, 우왕좌왕 오락가락 감정의 파편을 거리낌 없이 실시간으로 분출하고 있었다. 나의 트위터 생활이란, 나와 관계없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타임라인을 훑는 정도였지만 그걸 잠자코 보고 있으면 왠지 위안이 됐다.

페달을 힘껏 밟고 굴러야 앞으로 나아가는 자전거는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트위터는 달랐다. 수다스럽고 무분별한 그 세계는 '나도' 살아 있다고 북돋아주는 듯했다. 아무 말 없이 지켜만 보는데도 그랬다. <아무튼, 트위터>에 곁들여진 카피는 "그 애매한 마음들이 남겨놓는 넉넉한 거리가 좋아서"인데, 당시의 내게 이보다 애매하면서 넉넉한 도피처는 없었다.


그러는 동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응어리가 사무치듯 쌓였다. 헛헛해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때, 나도 한 마디씩 지껄여보았다. 140자는커녕 14자에도 못 미치는 짧은 푸념을 뱉어내고 몇 번이나 들여다본다. 당장 죽을 사람처럼 우울감이 덕지덕지, 징징거림은 귀엽기라도 하지, 스스로가 아니꼬워진다. 이내 게시물을 삭제한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죽어 차라리. 그러면 반항심이 빳빳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왜. 비로소 퍼뜩 정신이 차려졌다.

오래 가진 않았다. 별짓을 다 해도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 황폐감이었다. 밤기운이 싸늘해지자 기댈 곳은 트위터뿐이었다.

나는 계정을 아예 새로 만들었다. 팔로워도 팔로잉도 없는 비공개 계정에서 홀로 재잘거렸다. 주로 취중이라서, 주정이나 다름없는 넋두리였다. 온갖 화를 거기다 풀었다. 되는 대로 내지른 말들이 타임라인을 빼곡하게 채웠다. 그러다 전부 부질없어졌다.


트위터를 안 한지 오래됐을 거다. 계정을 없애진 않았으므로 이 글을 쓰며 한 번 접속해봤다. 109개의 게시물, 마지막 게시날짜는 2014년 11월 30일이다. 별 얘기가 다 있네. 대부분 욕이고, 정말 별 얘기가 다 있다.

2014년 7월 30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의 모든 악랄한 감정은 허구라는 틀 안에서만 표출한다. 다짐이다. 8월 14일엔 이렇게 적었다. 아직은 젊고 암에 걸리지도 않았으므로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놓곤 나흘 후에 딴소리다. 의지도 열정도 사랑도 책임도 아무것도 내겐 없다. 살아있는 고양이 두 마리가 나의 전부다. 9월 15일의 트윗은 비장하다.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각자의 무덤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은 야만이다. 나는 절대로 다른 누구의 무덤과 합장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화장하고 나의 재는 나만의 유골함에 홀로 담기기를 희망한다.

이런 트윗도 있다. "나의 가장 큰 불행은 어떤 좋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소박하고 작은 행복을 느끼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대관람차를 타고 비눗방울을 분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행적이 된다.", "대관람차를 탔지만 비눗방울을 깜빡 잊었다."

온통 잡소리다.


<아무튼, 트위터>는 내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새 책을 처음 빌렸다. 내 것인 양 마음대로 귀퉁이를 접고, 반납할 도서는 새로 살 작정이었다. 그만큼 트위터란 데가 흥미진진하고 글을 쓴 작가가 궁금해서 책을 덮고 잠깐 고민했었다. 어플이라도 받아볼까.

며칠이 지났지만 실행하진 않았다. 생각으로만 그친다. 나는 트위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꿈에서도.

그 시절을 지나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게 새삼 믿기지 않는다. 한때 나를 품어준 트위터에게 빚이 있다는 걸 안다. 그치만 파랑새는 훨훨 날아가야지. 이제 내게 트위터의 날개는 필요 없다. 가까이 좋은 사람들과 소박하고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현재의 세계가 지금 내게는 너무 귀하고 소중하다. (인스타그램 하기만도 바쁘다고요.) 이 글을 발행하고 나면 나는 아마 대여한 도서의 귀퉁이를 도로 펴고 있을 거다. (주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대로 잘 펴볼게요.)


<랍스터 트위터 트윅스터>라는 소설을 끝맺지 못한 뒤로 트위터 얘기를 한 번은 꼭 하고 싶었다. 다시 읽어보니 별 거 없네. 실은 많은 얘기를 생략했다. 누구나 힘든 사연이 있고 아픈 청춘을 통과했을 거다. 어떤 얘기들은 혼자 알고 앓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걸 일일이 게워내지 않고도 나는 잘 살 수 있다. 소설이나 끝장을 봤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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