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서 찾아봤다(이런 잡다한 아이템은 구글보다 네이버 블로그가 도움된다). 적게는 6개월에서 많게는 3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숫자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숭미 사상에 길들여진 우리가 신뢰해 마지않는 천조국 미국의 어느 연구기관의 발표라고 하니 일단 기관의 신뢰성은 대충 믿을만하다고 치고 넘어가자.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바람피우다가 걸린 남편 박해준(이태오 분)이 김희애(지선우 분)에게 날린 대사다. <밀회> 보다 긴장감이나 완성도의 밀도가 떨어져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갔지만, 가상 인상적인 부분이다. 아들로 등장하는 아역 배우의 성숙도로 대충 추산해도 박해준과 김희애는 3년은 훨씬 넘게 결혼 생활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앞의 숫자로 돌아가 보자. 적게는 6개월, 많게는 3년은 우리 몸에서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주는 호르몬(이름은 생략한다)이 분비되는 기간을 말한다. 그렇다면 3년이 넘은 연인이나 부부는 사랑 없는 의무감 또는 부채의식으로 살고 있기라도 한다는 것일까? 앞서 바람피운 사실을 커밍아웃해버린 박해준은 무려 3년의 5배는 족히 넘는 시간을 견뎠으니, 선방을 했다고 칭찬을 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단지, 이름도 어려운 호르몬 분비 기간이 끝나면서 사랑의 감정이 식어버리는 것이고, 우리가 그런 존재라면 우린 너무 슬플 것 같다. 그 기간은 커녕 문턱에도 가보지도 못하고, 허망하게 삶을 마감해 버린 로미오나 줄리엣 같은 인물들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가난한 집 딸인 제니를 떠나보내고 쓸쓸한 스탠드에서 그녀를 추억하던 올리버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에릭 시걸 형님의 말장난이었을까.
사랑이란, 자고로 곁에 없으면 그립고 걱정하고 안전하길 바라는 것이며, 옆에 있으면 스킨십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지는 것이 아니던가. 때론 오해로 말실수로 물질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마치 죽일 듯이 다투고도 돌아서서 상대의 빈자리를 확인하고선 방금 전의 거친 마음이 눈 녹듯 녹아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다.
수 없이 임계점을 넘나드는 그 과정을 거치며,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서로에게 있어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남자 친구가 박서준, 현빈, 에릭보다 잘생기지 않아도, 여자 친구가 손예진, 전지연, 아이유 보다 못생겨도, 이젠 이런 연예인 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되어 서로를 완전하게 해 준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만년으로 하고 싶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 듯이, 각자 마음의 결이 다르고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 <중경삼림>의 금성무 대사처럼, 어떤 사람은 10년을 또 어떤 사람은 50년을 거뜬하게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비커에 든 호르몬의 분비량을 재 듯, 똑같은 잣대로 사랑의 유효기간을 말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누구나 이성을 만날 때 처음엔 둘 사이의 동질감에 환호한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보증금 같은 것일 뿐. 시간이 흐르며 이젠 예전엔 기꺼이 이해되었던 그 차이점들 때문에 다투기도 한다. 어떤 커플은 서로의 다른 점에 호기심을 갖고 시작해서 하나 둘 공통점을 발견해 가는 기쁨에 살기도 한다.
다만, 여기엔 두 사람 또는 최소한 한 사람의 노력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사랑이 아니더라도 저절로 주어지는 이해와 관용은 없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배우자)을 새롭게 보려 노력하고, 처음 만났을 때의 경이로움과 기쁨을 간직하려 애쓸 때만 가능하다. 이런 노력조차 하지 않고 사랑의 유효기간이 저절로 갱신되기를 바란다면 인생의 직무유기다.
<부부의 세계>를 보며, 내 사랑의 낯 뜨겁지 않은 유효기간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한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