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한 Apr 11. 2023

[언어이야기] 화기애애에 관한 단상

‘화기애애하다’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온화하고 화목한 분위기가 넘쳐흐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한자로 써보라고 하면 의외의 현상이 나타난다. 대부분이 화기애애(和氣愛愛)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은 ‘화기애애’라는 단어의 이미지에서 ‘사랑이 넘쳐날 것 같은 의미’가 담겨 있기도 하지만 ‘애’로 발음되는 한자 중에 긍정적인 뜻을 가진 한자가 사랑 애(愛)뿐이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과학용어 중에 ‘만델라 효과(Mandela effect)’라는 것이 있다. 만델라 효과는 집단적으로 잘못 기억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이 거짓된 기억을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남아공의 만델라가 버젓이 살아 있는데 죽었다는 인식이 심어져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어떤 개인이 근거 없는 사실을 말하는 것은 공화증(空話症-거짓을 실제처럼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병적인 상태) 또는 작화(作話-이야기를 지어낸다는 뜻)라고 하나, 만델라 효과는 개인의 병리적 상태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소통의 단절이나 정보 왜곡 등으로 잘못된 사실이 널리 퍼지게 되어 사회적 착각을 나타내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어느날 저녁 노을 속에 나타난 용두(용머리), 뭔가 할말이 남은 듯, 혹시 화기애애하게 살라는 말?



‘스키마 이론’ 또는 ‘프레임 이론’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동일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제각각 기억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다. 사람들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각각 자기식대로 사건을 해석하고, 없는 내용을 스스로 보완하는 등 기억적 가공을 통해서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기억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반면에 만델라 효과는 집단 전체의 착각을 의미한다.


여기서 ‘프레임이란 사람이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UC버클리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정립한 개념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말할 때 그것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기인했으며, 어떻게 동작할 것이며, 그것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등 대상에게 다양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고, 명제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그 해석을 사실인 것으로 믿고 살아간다. 즉, 프레임은 개인의 인식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일 뿐이므로 객관적 사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이론은 언어학자가 만든 개념이지만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된다. 정치인들이나 정치 이야기가 나올 때 등장하기도 하며 정책 연구 과정에서 대중들이 정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영향을 주기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프레임은 인간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수정을 목적으로 하는 분야에서도 쓰이고 최면과 세뇌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러한 프레임은 확증편향이라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견해 또는 주장에 도움이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취하고,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말한다. 다른 말로 자기중심적 왜곡(myside bias)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 역시 사실 여부와는 크게 관계가 없다. 대중의 마음속에 있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보편적 심리현상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 한 프레임 이론보다 더 고착화된 상태를 말한다.


진주 월아산의 안개낀 풍경


불교의 유식(唯識)에서도 유사한 점을 지적한다. 서광스님이 쓴 ‘치유하는 유식읽기’ 책에서는 그러한 내용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한다. 우리가 겪는 고통이란 생로병사와 같은 명백한 고통과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오는 고통 외에도 ‘모든 것이 변화’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 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가 원하고 좋아하는 것은 붙잡고 싶어 하고, 항상 그대로 유지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 어떤 것도 고정되어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 그것을 무상(無常, impermanence)에 대한 고통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유식이란 Consciousness only, '오직 알 뿐이다'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렇게 알고, 네가 그렇게 알고 각각 다르게 안다는 뜻이다. 안다고 하는 것이 자기(ego), 경험에 비추어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랑, 자유, 민주, 평화 등의 단어를 수없이 쓰고 있지만 각자 다르게 이해뿐이다. 그래서 의견이 일치하다가도 금방 틀어져서 오해하고 싸우고 분노한다. 왜냐하면 오직 내가 그렇게 알 뿐인 것이지, 상대방은 다르게 알고 있을 수밖에 없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렇게 같은 것도 서로 다르게 알고 다르게 경험한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눈이 다르게 보고, 귀가 다르게 듣고, 몸이 다르게 접촉하고, 맛보고, 냄새 맡는 것도 그런 식으로 다르게 경험한다. 그리고는 그러한 경험에 집착하여 다르게 주장하고, 평가를 하다가 결국엔 서로 상충되어 싸우게 된다. 우리는 똑같은 것을 보고 다르게 경험하고 다르게 안다는 것, 너는 그렇게 알고 나는 저렇게 알고, 십만 팔천 리 다르게 이해하고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순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다르게 알고, 전생에도 그렇게 다르게 알았었고, 많은 생을 그렇게 알아왔고 습관화되어서 고착화되어 있다는 사실마저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뭔가를 경험하는 순간에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흐름을 봐야 한다. 그것은 보지 않고 ‘저 인간 왜 저래’라고 판단하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을 놓치고 소통을 놓치고 이해를 놓치고 연대감을 놓치게 된다. 그 결과 연기적 삶, 머무름이 안 되는 것이다.


진주 남강의 물안개, 마음을 고즈넉하게 한다. 이는 화기를 충천하게 하려는 하늘의 뜻일까?


유식, 이 말 자체가 많은 것을 함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정말 내가 아는 것, 내가 경험하는 것, 판단이 전부 다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르게 이해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명료하게 이해해야 한다. 유식의 진정한 의미인, 내가 그렇게 알 뿐이지 너도 그렇게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깊이 통찰하게 되면 그때 진정한 소통이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한다.


인식의 대상은 외부에도 있고 내부에도 있다. 외부에만 머물고 있는지를 늘 확인해야 한다.(진주 하얀울공원)


화기애애의 한자 정답은 화기애애(和氣靄靄)다. 여기에서 애(靄)는 아지랑이라는 뜻이다. 서로 뜻이 맞고 호응하려는 기운(和氣)이 아지랑이처럼 가득 차 있다는 의미이다. 화기애애라는 말을 설명하려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올해는 모든 분들의 가정과 일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소통이 잘되어서 성취와 보람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월아산 장군대봉에서의 풍광, 서광(瑞光)인가? 서기(瑞氣)인가?





작가의 이전글 [세상만평] 고양이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