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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Aug 20. 2023

진주 3대 사상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남기면 나중에 많은 원성과 시달림이 있을 듯하다. 왜냐하면 사상이라는 것은 눈으로 검증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것이어서, 고래로 사상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를 죽임은 당하기도 하는데 그 서로서로에는 부모 자식 간도, 형제 간도, 심지어는 부부간에도 그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모르는 사람, 특히나 SNS와 같은 얕은 관계에서는 심할 수도 있는 말들이 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글은 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글로서 심각한 논문이나 주장글이 아니므로 강호제현들의 질책은 감사하지만 과도한 의견은 정중히 사양함을 미리 부언하는 바입니다.     




진주(晉州)는 역사가 오래되기 때문에 진주의 3대 정신을 경솔하게 논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치 30센티 자로 수십 미터나 되는 아름드리나무의 높이는 재는 우(愚)를 범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잊힌 것은 잊힌 대로 또 드러난 것은 드러난 대로 보이는 것이니 비전문가의 서툰 눈으로만 본다면 용감하게 분류가 가능할 것이다. 


첫째로 꼽는 진주정신은 논개의 ‘충(忠)’이다. 사실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고 진주 방문의 1번지로 축석루와 함께 의기사, 의암바위를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논개의 절개 만을 ‘충’으로 꼽기에는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진주에서 2번째로 유명한 기생이며, 절개가 드높기로 유명한 ‘산홍(山紅)’을 같이 기리는 분들이 많다. 산홍은 을사5적의 한 명인 이지용이 경상 관찰사로 진주에 와서 취임축하연을 하는데 참석해서 이지용으로부터 첩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소첩이 비록 천한 기생의 몸 입니다만 어찌 나라를 팔아먹은 대감을 첩을 할 수 있겠느냐’고 해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는 분이다. (이 내용은 을사조약 이후에 자결로 생을 마감한 구한말의 기개 높은 유학자 황현선생의 『매천야록』이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으며, 진주에는 이를 기려, 산홍이라는 냉면집도 있고 그런 메뉴를 개발한 식당이나 가게가 많이 있다.) 아무튼 ‘충’은 진주 정신의 한 축을 이뤄서 산청 남사마을의 ‘유림독립기념관(독립기념관은 천안시 목천읍에 있지만 유림독립기념관은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에 있다)’과 ‘파리장서비(1919년 5월 파리강화회의에 우리 유림대표들이 보낸 독립청원서와 이를 주도했던 거유(巨儒) 면우 곽종석 선생 등의 이름이 새겨 있다, 유림독립박물관장님의 설명으로는 파리장서에 이름을 올린 유림 중에는 일본 경찰의 악독한 고문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변절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로, 사봉면의 ‘우곡정(고려말 대사헌을 지낸 우곡 정온선생의 충정에 얽힌 고사가 전해오는 정자다)’으로, 명석면의 ‘명석(나라에 변고가 있으면 운다는 돌이다)’으로 퍼져 있다. 특히나 임진란 1차 진주성 싸움에서 진주성을 지켜낸 것이나 2차 전투에서 모두의 만류를 물리치고 전원 몰사한 것은 진주 정신의 정수로 회자되고 있다. 그러한 진주성 전투의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진주비빔밥이 아직도 명맥을 이어오는 까닭이기도 하다. 


    

둘째로 꼽는 진주정신은 형평운동으로 드러난 ‘평(平)’이다. 진주 형평운동은 강상호 선생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백정에 대한 따돌림을 보고 계급타파를 명분으로 시작되었지만 독립운동으로도 연결되었던 운동이다. 여기에서 평은 ‘누구나 같다’는 의미에서 벗어나 ‘누구나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실천명제를 담고 있다. 이러한 뜻은 시대와 장소를 벗어나 진주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데 산청군 ‘생비량면’과 ‘나불천’의 이름으로 알려진 비량스님의 무애행, 명석면 용산리의 ‘용호정원’과 ‘용산사’로 대표되는 박헌경의 박애정신, 전국 최초의 남녀공학 초등학교인 중안초등학교를 세운 정부인 김 씨의 혜안, 최근의 김장하 선생의 수많은 선행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어, 일일이 기록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셋째는 진주다도로 대표되는 ‘예(藝)’다. 진주 사람들은 유난히 예(藝)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개천예술제(유등축제는 원래 개천예술제의 부대 행사로 시작되었다)는 우리나 최초의 예술제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개천예술제는 1949년 정부수립 1주년과 자주독립을 축하하기 위해 예총 진주지부 주최로 제1회 영남예술제로 출발하여 6.25 남침전쟁과 코로나의 우여곡절을 거쳐 올해 72회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 제1호 차인회로 인정받고 있는 <진주차인회>는 1969년도 10월에 시작되어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진주에 있는 여러 차인회의 모임인 <진주연합차인회>도 1979년에 창립되어 지금까지 행사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 ‘차의 날’도 1981년에 진주차인연합회의 주도로 선포하였다. 진주의 모든 문화행사에는 항상 차인회 회원들이 나와서 차와 다식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경남도는 서울을 제외한 전국 시도 중요 국가무형문화재가 가장 많은 지자체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중심지 진주는 인구 수당 국악학원이나 전통춤학원이 가장 많은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주관적인 느낌임) 경상국립대학교에는 예술대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속무용학과가 인문대학에 설치되어 있어 많은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이 외에도 진주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까닭에 많은 사상들이 혼재되어 있을 것이다. 쌍계사 칠불암과 화엄석경을 대표로 하는 불교의 구세 사상이 있고, 남명 선생의 경의사상과 같이 우리의 근간을 흔들어 임진란과 같은 어지러운 시대에 나라를 구한 유교정신도 있다. 또 기업가정신수도 <진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경제를 일으킨 1세대 경제인들의 경세제민 정신도 있다. 이처럼 진주는 다양한 사고가 혼합되어 발전해 온 까닭에 수많은 사상들이 있어 진주의 3대 정신이라는 작은 틀로 엮으려는 일은 한낱 하늘을 향해 활을 쏟아 태양을 떨구려는 것과 같은 도로(徒勞)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비전공자에 외지인(10년을 넘게 살아도 출생지를 중심으로 사람을 평가하기 때문에 늘 외지인이다)이 이러한 일을 하는 까닭은 누군가가 진주의 5대 정신, 7대 정신으로 엮어서 이를 알리고 세상에 드러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처음이 어려워도 2번째 3번째는 쉽기 때문이다.


      

아, 오늘도 화살이 한 대 날았구나. 적중일랑 생각 말고 곧게만 날아다오, 누군가 마음에 울림이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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