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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Sep 16. 2023

진주의 염소치즈


‘칡’이라는 넝쿨 식물이 있다. 한문으로는 갈(葛)이다. 칡뿌리는 갈근(葛根)이다. 갈근탕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 칡(뿌리)즙을 주재료로 하는 한약 이름이다. 콩과 식물이고 다년생이다. 이 칡뿌리에는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는 이소플라본을 많이 함유하고 있고 숙취 해소에도 좋다고 한다.          

이 칡은 밝은 햇볕만 볼 수 있는 곳이면 토질에 상관없이 잘 자라는 특성에 워낙 생명력이 강해 금방 성장하면서 주위 다른 나무나 식물의 줄기를 지지로 해서 자라면서 넓은 잎으로 햇빛을 독점하고 다른 나무의 양분을 모조리 빨아먹는 탓에 칡넝쿨이 우거진 곳은 금방 황폐화되고 다른 나무들이 고사하게 된다. 그나마 사철나무의 경우 겨울에 어느 정도 양분을 흡수하여 명맥을 이어갈 수 있지만 활엽수나 작은 나무들은 얼마 못 가서 고사하게 된다. 칡은 줄기가 단단하여 겨울 추위도 견딜 수 있어 해가 갈수록 점점 더 굵어지기 때문에 ‘나무’로 분류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몇몇 사찰은 이 칡나무 넝쿨이 자라 굵어진 재목으로 기둥을 썼다는 곳이 있다. 그만큼 굵은 칡 줄기가 예전에는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 칡은 많은 햇볕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무들이 우거진 숲 속에서는 자랄 수가 없는데 주로 개간을 하거나 공사를 해서 나무가 사라지고 햇볕이 좋은 곳을 골라 자리를 잡게 되면 스스로 뿌리혹박테리아로 질소를 고정해 양분으로 삼아 성장할 수 있으므로 토질과 상관없이 무성하게 자랄 수 있어 얼마 안 가서 근처의 숲까지 점령하게 된다. 그래서 ‘농부가 게으른 곳은 칡이 점령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 칡은 너무 빨리 자라 제거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줄기가 수십 미터씩 뻗어나가기 때문에 줄기 제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줄기를 제거해도 튼튼한 뿌리를 바탕으로 또다시 번지기 때문에 속수무책일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칡은 우리나라에서 유해 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우리 경상국립대학교 뒷산이 가호산인데, 가호산 정상을 지나 관장골과 망경산 쪽으로 가다가 보면 경사면이 온통 칡덩굴로 덮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원래는 과수원 자리였거나 야산이었을 곳이 모두 칡으로 덮여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년 그 면적도 넓어지고 있다. 아마도 땅주인이 어느 순간에 영농을 포기한 것을 기회로 칡이 자라나 널리 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근처는 묘지고 뭐고 전부 칡이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칡에도 천적이 있다. 바로 왕성한 식욕의 염소다. 염소는 땅속의 칡뿌리를 캐 먹지 못하지만 잎과 부드러운 줄기는 모두 먹어 치워 칡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고사하게 한다. 그래서 이 칡이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든다.      

가호산 칡이 우거진 곳에 산양이나 염소를 기르자. 그리고 산양이나 염소 젖으로 만든 치즈도 만들자. 진주에서 만든 염소치즈, 산양치즈를 만든다면 멋지지 않은가? 그리고 그 결과가 우리 산을 더 푸르게, 푸르게 하는 것이라면 좋지 않을까. 지금은 지천에 칡이 넘쳐나고 있어 산주의 동의만 받는다면 몇 개월씩 옮겨가면서 염소를 키우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자체에서 축협 등과 함께 키울 사람을 모집에서 교육을 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참에 진치령 터널과 지자체 홈페이지를 이용해서 판매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진주의 또 다른 특산물이 산양치즈나 염소치즈가 된다면 재미있겠다.     

칡과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칡은 왼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간다고 한다. 등나무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덩굴을 감으며 올라가는데 이 둘이 얽히면 아주 풀기 어렵기 때문에 이것을 한문으로 ‘갈등(葛藤)’이라고 한다. 칡과 등나무는 남자와 여자로 풀이하기도 한다. 이러한 갈등을 서로 다른 성향으로 얽혀 풀어내기가 어렵다는 뜻이 있다. 부산 범어사 입구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등나무군락지가 있는데 예전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갈등을 해결할 해법을 묻고는 했었다. 나 나름으로는 부처님이 말씀하신 ‘지혜의 칼’을 이용해서 단숨에 잘라내는 것이라고 에둘러 이야기하곤 했지만, 이 시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갈등 해결이 말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여러분의 갈등은 무엇이며, 현명한 해결방법은 무엇인가? 오늘의 난세는 이 세상을 구할 현자의 지혜를 고대하고 있다. 일요일 아침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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