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음식과 여행으로 알아보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 #직장인_여행덕후
#덕후의_골목도쿄
2019년 [골목 도쿄]라는 일본 음식문화에 관한 책을 냈습니다. 도쿄 여행 가이드북으로 자주 오해받기도 하죠. [골목 도쿄]는 여행 가이드북이 아닙니다. 그렇기엔 관광 정보가 너무 빈약합니다. 그저 도쿄에 있는 수많은 골목 중 몇 곳, 자주 다녀 친숙한 몇 곳에 대한 아주 깊고 긴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그 골목에 사는 사람들과 골목 식당 그리고 일본의 음식과 술, 그러니까 일본문화에 관한 이야기죠.
그동안 1년에 일본에 10회 정도는 방문했었습니다. 그런데 연간 총 체류 일수는 20일 이하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은 총 200회 이상 다녀온 건 틀림없습니다. 몇 년 전 200회까지 세고 난 후, 정확한 횟수를 세는 것이 의미 없는 일 같아 그만뒀습니다. 그저 ‘역시 자주 가는구나’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만 남은 정도지요.
일본문화 이야기를 하려고만 [골목 도쿄]라는 책을 쓴 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죠. 일본에 관한 책을 쓴 이유는, 일본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모습이 더 잘 보였기 때문입니다.
외국은 종종 우리를 더 잘 보이게 하는 돋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그 돋보기가 미국이나 중국 또는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일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일본이었죠.
수줍게 고백하건대 저는 덕후입니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에서 온 말입니다. 일본어에서 오타쿠는, 확실히 멸칭입니다. '오타쿠'라는 말이 우리에게 건너와 '덕후'가 되었습니다. 발음을 이용한 말장난인 셈이죠.
저는 스스로를 ‘여행 덕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수시 단기 여행자입니다. 단기 여행자이긴 하지만 단기 여행을 수시로 즐기고 있긴 하니까요.
#직장인_아재덕후
정상적 직장생활이 또는 생업이 가능하냐는 질문도 자주 받습니다.
일단 저는 직장인입니다. 연간 10회 정도 일본 여행을 한다 해도, 휴일을 하루 포함하면 연간 총 사용 휴가일은 7일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 정도면 책상을 지키는 시간이 생산성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조직문화와 정면충돌하지 않아도 되는 정돕니다.
안타깝게도, 금수저가 아니냐는 오해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금수저와는 머나먼 외모를 지닌 탓이지요. 물론 금수저는커녕 은수저 코스프레조차 꿈도 꾸지 못합니다. 백수가 아니란 것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루하루 깊은 안도감을 느끼고 살고 있을 뿐입니다. 여전히 회사에 찰싹 달라붙어 하루하루 버티고 있습니다.
짧은 여행을 다닌다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시 단기 여행자 주제에, 게으르기 그지없는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 단기 여행자 주제에 계획 따위 없이 어슬렁거립니다. 느긋함을 넘어선 게으름으로 단기 일정 내내 평균 이하의 속도로 움직입니다.
그렇게 많이 갔으니 일본 여행에 더 이상의 설렘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덕후란 자들은 익숙함 속에서도 미세한 차이를 즐기는 놈들입니다. 뭐. 그러니까 덕후겠지요.
자주 찾아 친숙해진 여행지라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매력은 얼마든지 있는 법입니다. 겨우 몇 번 방문하고서, 그 여행지의 마스터라도 된 것처럼 으스대는 건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리적이지도 않으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덕후에 대한 정의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열광하는 삶” 그리고 “열광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재미”
스스로 열광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았다면, 타인의 평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사 그게 날 선 비난과 저주라고 하더라도요. 덕후의 삶을 살기 위해선 덕후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친일파_아님_주의
일본에 관한 책을 쓴 저자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악플은 무엇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바로 그거죠.
“너 친일파지! 일뽕이네, 일빠로구먼!”
수줍게 말씀드리건대 친일파는 아닙니다. 일뽕도 일빠도 아닙니다. 그저 일본을 잘 이해하고 싶은, 그리고 매년 조금씩 이해력이 늘어가는 덕후 레벨의 아재일 뿐이죠. 그리고 이왕이면 우리 사회에 일본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우리 이웃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지닌 사람이 많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결국 우리를 이해하는 데 정말 좋은 기초체력으로 작용할 테니까요.
일본을 심하게 많이 갔으니 잘 아는 게 당연합니다. 잘 알고 있으니 익숙하고, 또 매번 익숙함 속에서 미세한 차이를 발견합니다. 어제의 일본은 그랬었는데 왜 오늘의 일본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이런 것을 일상의 사소함 속에서 깨달아가는 재미 같은 것이죠.
사람들은 수시 단기 여행자가 일본을 많이 다니니, 일본을 좋아해도 지나치게 좋아한다. 일본을 잘 아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다른 카테고리입니다. 그리고 일본을 좋아하는 것과 추종하는 것은 더 다른 카테고리입니다.
#저는_그냥_덕후라니까요
친일파는 민족반역자 그룹입니다. 실제로 민족반역 범죄자입니다. 이런 무시무시한 카테고리를 일본 책을 쓴 저자에게 들이대는 것은 억울합니다. 친일파까지는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일뽕이나 일빠가 분명하다고 몰아가는 것도 억울합니다.
일뽕이나 일빠는 일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입니다. 한국과 한국인을 무시하고 일본이 제일이라 생각하는 부류입니다. 일본을 우리의 이웃 중 하나로 생각하는 대신, 일본을 우리에게 없는 강대한 힘을 지닌 존재로 착각하고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지지를 보내는 그룹입니다.
덕후는 다릅니다. 대상에 대해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으니, 즐기는 법도 제법 능숙합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판단과 철학 없이 추종하지 않습니다. 일뽕이나 일빠 식의 맹목적 추종에 그친다면 진정한 일본 덕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일본 덕후가 느끼는 요즘 일본은 어떤 모습일까요?
#벚꽃처럼_저무는_일본
요즘 일본이 참 재미있습니다. 뉴스와 보도 프로그램은 물론 교양 정보 프로그램 대부분이 한국 소식입니다. 그것도 매우 어둡고 음습하게 그려내고 있죠. 한국에서는 밝고 맑은 이야기였는데, 그게 일본으로 건너가면 어둡고 흐리고 우울한 이야기가 됩니다.
톤도 톤이지만 그 양이 압도적입니다. 이제 일본인은 한국이 없으면 방송이고 신문이고 주간지고 유튜브 콘텐츠고, 뭐든 만들어 내지 못할 것처럼 보입니다. 대체 언제부터 일본에 우리가 이토록 중요한 나라가 되어버린 걸까요?
그 답은 수십 년이 지나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점은 일본이 더는 20세기 중후반의 그 강성했던 경제, 문화 대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일본은 여전히 미국, 중국에 이어 전 세계 3위의 경제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GDP 단순 비교로도 우리의 3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죠. 문제는 일본이 뚜렷한 하강국면에 돌입했다는 겁니다.
일본의 찬란한 시기는 봄날 벚꽃처럼 저물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 일본이라는 옛 거인의 움직임을 눈여겨봐야 한다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20세기의 세계관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죠.
#부러우면_지는건데
21세기의 일본은, 아시아의 두 이웃 국가의 급부상을 넋 놓고 바라봐야 했습니다. 중국은 이미 일본을 제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G2 반열에 올랐을 정도니까요.
그리고 아시아 최고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한국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 시민사회의 레벨과 민주주의 수준 자체를 깎아내릴 수 있는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한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한국은 이미 누군가의 꿈을 이룬 나라일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그런 한국이, 최대의 경제 고도성장기였던 80년대만 하더라도 일본과 경제력 그리고 기술력을 비교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었습니다. 아니 사실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수준이었죠.
이제 많이 달라졌습니다. 경제력으로는 물론, 군사력으로도 한국은 더는 약소국이 아닙니다. 한국이 중국, 러시아, 일본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과거의 약소국도 개발도상국도 아닙니다. 한국은 이미 어엿한 중견 국가가 되었습니다. 중국도 러시아도 그리고 일본도 한국의 일거수일투족을 신경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도 이제는 일본과 크게 차이 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본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일본의 체감물가가 교통비를 제외하면 우리보다 저렴하게 느껴질 정돕니다. 이제 이 정도는 많은 분이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사실이죠.
#일본_우익이_한국을_싫어하는_이유
한국은 누가 뭐래도 아시아 최대의 민주주의 대국입니다. 일본처럼 패전 후, 이식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이미 100년 전 3.1 운동은 국체를, 왕조 조선 대신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으로 주창했습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시민이 만든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에서 나라의 위기마다 대규모 시민운동이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만든 나라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이런 경험이 없는 나라(일본이나 중국)는 한국이 매우 이질적이고 불편해 보일 수밖에요.
절대 어깨를 나란히 할 일 없던, 한 수 아래로 봤던 중국 그리고 한국의 급부상이라니. 그렇다고 일본이 중국을 때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한국이었습니다. 언제나 한국이었죠. 초강대국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중국 대신, 그래도 아직은 만만한 한국 때리기. 시대는 변했는데 생각은 변하기 싫다는 투정에 지나지 않은 거죠.
친일파는 일본 극우의 생각과 궤를 같이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 일본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주변국에 지나지 않은 거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21세기 친일파이며 광의의 일뽕 또는 일빠입니다. 결국, 변화를 이해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 언론은 일본 극우를 자주 보여줍니다. 그러니 일본에는 극우가 득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죠.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의 변화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새로운 변화에 박수를 보내고 재미있게 즐기는 평범한 일본인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_일본을_잘_알고_있을까
우리는 일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일본은 아베 우익 정부의 한국 때리기 이전까지는, 가장 많은 한국인이 여행을 간 나라입니다. 2018년에 750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찾았습니다. 역사상 이렇게 많은 한국인이 한 나라를 방문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게 많이 다니고 친숙한 것만 같은데 의외로 우리는 일본에 대해 잘 모릅니다. 우익 정치인의 상징 같은 아베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기시 노부스케라는A급 전쟁범죄자라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사실 딱 그 정도죠.
우리가 정확히 이름을 알고 있는 일본의 역사적 인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여기에 조금 더 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정도일 겁니다. 하기야 우리는 같은 민족인 북한의 현대사와 정치체제에 대해서도 거의 모르고 있으니까요.
2019년 여름, 아베 극우 정권의 경제 도발로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은 전년대비 극적으로 줄었습니다. 이제는 일본에 생업과 학업을 위해 가야 하는 사람들도 주위의 눈치를 살필 정도입니다.
20세기까지의 한국인이라면 그래도 좋았을지 모릅니다. 이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현대의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현대 동아시아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통신사를 보내 문화를 수출하던 조선이 왜 일본에 참혹한 일을 당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근대 이후 한국과 일본의 운명이 정확히 반비례했던 까닭에 대해, 여전히 깊은 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일본에 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아니 누군가 매우 제한적으로 선택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겠죠.
덕후 아재는 이게 불편합니다. 깨뜨릴 힘은 없어도, 덕후의 집중력으로 작은 균열이라도 내보고 싶습니다.
골목과 일상
이 공간을 통해, 누구도 좀처럼 말해 주지 않는 일본의 일상을 그리고 싶습니다. 우리처럼 집세와 매월 은행에 내야 하는 이자와 생활비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그런 보통 일본인의 일상을 말입니다.
그들 역시 소수의 부자와 권력자를 제외하면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이 하루하루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 바로 골목이죠.
왜 골목에 천착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뭐 대단한 철학이 있는 건 아닙니다.
골목이 재미있으니까요. 우리 골목에선 생활감을 찾기 어렵습니다. 우리에게 보통 골목은 아직 개발의 시혜가 미치지 않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니까요. 시대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핫한 골목길, 이를테면 최근의 익선동 카페 골목이나 통인동 골목, 과거의 세로수길 골목은 진짜 골목은 아닙니다. 기획부동산 업자들이, 좋게 말해 솜씨 좋은 재주로 엄청난 개발이익을 위해 잠시 존재했을 뿐인 공간이니까요.
한국의 골목 핫플레이스는 고정형이 되기 어렵습니다. 한 골목이 뜨고 나면, 어김없이 지가가 오르고 개발이익으로 누군가 챙기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골목을 활기차게 만들었던 가게 주인들과 마스터들이 짊어집니다. 천정부지로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운 그들은 또 다른 곳을 찾아 나서는 눈물겨운 골목 유랑이 벌써 몇십 년째 벌어지고 있는 셈이죠.
애당초 골목이 버젓하게 살아남은 공간 자체도 없습니다. 살아남았다고 해도 언젠가 대규모 재개발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골목 생태계가 온전히 돌아가게 놔두지 않습니다. 이건 꽤나 불만입니다.
상대적으로 일본의 골목은 우리보다 온전한 편입니다. 사실 일본 골목에 뭐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골목에 사는 그 동네 사람들과 사이좋게 나이 들어가는 가게와 가게 주인들과, 동네 주민인 손님들이 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니까요.
[골목 도쿄]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도시 도쿄, 그곳에 제 마음을 쏙 빼앗은 골목길을 끊임없이 걸었습니다. 다음 종이책으로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일본, 후쿠오카의 골목길을 추가할 생각이었습니다. 출판사와 계약도 한참전에 끝냈고 원고도 90%가량 썼죠.
그렇게 도쿄와 후쿠오카의 보통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골목길의 가게에서 특별할 것 없는 음식과 술 한잔 기울이다 보면, 일본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을까요. 참고로, 이치란 라멘이나 후쿠오카 함바그 얘기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만큼 또는 그것보다 더 맛있고 착한 가격으로 음식을 파는 가게가 가득한 골목 얘기가 전부일 겁니다.
당분간, 아니 어쩌면 꽤 오랜시간이 지나야 [골목 후쿠오카]가 출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일본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시작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