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남 #草食男子 #마치콘 #街コン #일억_총활약_특임장관
일본의 깨어있는 경제학자와 민간기업 그리고 일부 경제관료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입니다.
“일본의 경제지표를 보면, 일본은 이미 끝났다”
“이대로는 2류 국가 추락이 아니라 후진국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죠.
근거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일본은 지난 30년간 경제성장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니까요. 보통, 국가의 GDP는 매년 조금씩 성장하기 마련입니다. 2020년처럼 글로벌 팬데믹이 없는 한, 조금씩이라도 성장하는 게 정상이죠.
최상위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OECD 30여 개국을 봐도 1인당 GDP가 계속 떨어지는 나라는 일본이 유일합니다.
일본의 GDP는 지난 30여 년간 거의 제자리입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은 자꾸 떨어지고 있죠. 최저임금을 보면 명확합니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유럽의 2/3에 불과하고, 심지어 우리와 비교해도 일본이 더 적습니다.
2019년 기준으로도 한국의 최저임금은 1인당 국민총소득 기준으로 OECD 안에서 4위입니다. 그러니까 선진국 그룹 내에서도 상위권이란 얘기죠.
요새는 국민소득이란 말을 쓰지 않죠. 1인당 GDP가 정확한 개념입니다. 1인당 GDP란 결국 국가 전체의 GDP를 인구수로 나눈단 말이죠. 결국, 1인당 GDP는 생산성과 직결된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1인당 GDP가 떨어진다는 건, 그 나라 경제가 혁신성 없이 과거를 답습하고 있단 말이기도 하죠.
일본의 혁신 실패는 예가 너무 많아 일일이 꼽기도 힘들죠. 대표적인 게 전기, 전자, 반도체, 조선 산업이죠? 이건 따라 언급할 필요도 없죠.
대체 누가 일본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걸까요?
범인을 찾기 전에 일본 정부의 블랙코미디를 하나 보시죠.
일본은 곧잘 ‘특임장관’을 임명합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죠.
중국과의 시급한 관계 개선이 필요하면, 중국 담당 특임장관을 임명합니다. 실제 정부 부처를 만드는 게 아니라, 총리 직속의 장관급 인사를 하는 셈이죠.
우리의 아베상은 독특한 특임장관이 필요했습니다.
일억총활약상(一億総活躍大臣). 즉, 우리식으로 일억 총활약 특임장관입니다.
이게 뭘까요? 일단 겉보기는 그럴듯합니다.
한마디로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를 대비. 인구를 1억 명 이상으로 유지하겠다는 뜻이죠.
일본 인구가 앞으로도 일억 이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활동을 지원하는 특임장관이란 말이죠. 일본어 표현으로 ‘일억 총활약 사회’ 실현을 위해, 일종의 특임장관직을 신설한 겁니다.
아베가 하는 짓이 그렇죠.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것까지는 잘해요.
일억 총활약 사회란 “젊은이도 노인도 여성도 남성도 장애와 난치병 있는 분도, 한번 실패를 경험한 사람도 모두 활약할 수 있는 사회”가 목표라 합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대통령 직속의 일종의 특별위원회 같은 것이죠.
아베는 실행부서 대신 정책제안을 하는 위원회 성격의 [일억 총활약 국민회의]를 만들었습니다.
특임장관에 해당하는 일억 총활약상과 아베 총리를 비롯한 중앙부터의 장관 13명 그리고 각계의 지식인 15명으로 만들었죠.
하는 일이 뭐냐고요? 이름이 국민회의잖아요.
그러니까 회의를 하죠. 매달 꼬박꼬박.
일본 정부 홍보 온라인 공식 페이지를 검색했습니다.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잖아요.
먼저 일억 총활약 사회를 검색합니다. 그러면 정부 홍보 온라인 페이지가 나옵니다. 클릭을 가볍게 누르면 “원하는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URL을 다시 확인하시거나 페이지 상단의 검색을 이용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볼 수 있죠.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총리 직속의 특임장관직을 만들어 놓고 정작 하는 일은, 매달 회의록 생산이 전부라는 건데요.
현재, 일억 총활약상은 에토 세이치(衛藤晟一)라는 인물입니다.
일억 총 활약상 외에도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소비자 및 식품안전, 저출산 대책, 해양 정책’을 맡은 특명 담당 대신(특임장관)이죠.
예부터 도무지 뭔지 모를 정도로 직함이 길다는 건, 실제 그 일을 전혀 담당하고 있지 않다는 말과 같습니다. 네. 그렇죠. 에토 센세는 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특임장관이 되었냐고요?
네! 그렇습니다. 전임 일억총활약상이었던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만큼은 아니지만, 에토 센세는 아베 센세의 절친이시죠. 그것도 손꼽히는 베스트 프렌드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에토 센세의 전임이었던 가토 센세는 야스쿠니 참배를 공개적으로 알려진 것만 세 번째 하실 정도로, 아베 센세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분이었죠. 에토 센세도 선임자의 뒤를 이어 야스쿠니 참배를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놀랍게도 표면적으로 일억 총활약상의 성과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출산율이 높아졌죠. 2005년 사상 최저였던 출산율(1.25)이 2016년이 되면 1.46까지 올라가긴 했죠.
물론 일억 총활약상의 국민회의와 상관관계는 밝혀진 게 없습니다. 오히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자극하는 자연재해 또는 전쟁 후의 일시적 인구증가. 이것으로 판단하는 게 과학적이죠. 이것과는 별개지만. 참고로 우리나라는 0.8에 불과합니다. 이건 이것대로 정말 큰 일이에요.
출산율이 높아졌으니, 일억 총활약상은 우쭐합니다. 그리고 곧장 삽질을 시작하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 하나만 꼽아보죠.
먼저, 초식남이 무엇인지 아셔야 합니다.
초식남(草食男子;소쇼쿠단시). 이게 한때 우리 사회에서도 ‘인기어’였죠.
일본에서 말하는 초식남의 실체를 알면 한없이 슬퍼집니다.
우리 이미지의 초식남은 보들보들하고 부드럽고, 젠틀하고 호리호리한 남성을 떠올립니다. 일본의 초식남은 한마디로 연애 못 하는 남자. 연애경험도 없고 연애 욕구조차 사라진 무성(無性)의 존재입니다.
무려 한 대학교수가 ‘초식계 남자의 연애학(草食系男子の恋愛学)’이란 책을 냈고, 이게 베스트셀러가 되며 단숨에 일본과 한국을 동시에 관통하는 인기어가 된 거죠.
일본 사회보장 인구연구소에서 18~34세 미혼남녀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설문조사를 정기적으로 합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 연애를 못 하고 있다는 남자의 비율이 무려 70%. 여성은 59%라고 하네요. 우리 청년들도 3포, 5포로 고통받고 있는 걸 생각하면, 전 세계 청년들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네요.
대부분의 일본 청년, 그중에서도 남성이 연애 따위 꿈도 못 꾸고 있죠. 이런 남성들이 비자발적으로 초식남이 되는 겁니다.
이건 일본인의 특성도 한몫하죠.
원래 연애라는 게, 조금 뻔뻔해야 하잖아요. 용기를 내야 하기도 하고요. 내가 맘에 드는 이성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고백을 하는 건, 현실 세계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이잖아요.
일본에서 초식남이 사회현상으로 인식되자, 어떤 일본인은 지극히 일본스러운 방식으로 돌파법을 찾아냅니다.
바로, 마치콘이라는 해법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