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_집단_미팅 #마치콘 #街コン #일억_총활약_특임장관
마치콘(街コン)은, 거리(마을)를 뜻하는 마치(街)에 단체미팅을 뜻하는 고콘(合コン)을 합친 신조어입니다.
한마디로 단체미팅을 마을에서 한다는 거죠.
일본에서 남녀 간의 단체미팅은 세대와 나이를 불문하고 꾸준히 인기 있는 편입니다. 작게는 열댓 명에서 크게는 수백 명을 한자리에 모아서 대규모 미팅을 주선하는 업체들이 있죠.
우선 대형 호텔의 컨벤션룸을 빌립니다. 남성 참가자에겐 고액의 참가비를 받죠. 여성은 미리 컨벤션룸의 테이블에 앉아 있습니다. 남성들이 미리 받은 프로필을 보고 맘에 드는 여성의 테이블로 이동합니다. 몇 분씩 대화를 나눕니다. 이런 사이클을 반복하는 거죠.
그다음에 스탠딩 파티를 하면서 자연스레 서로 맘에 드는 커플끼리 다음 모임을 약속합니다.
마치콘은 이걸 거리로 옮겼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말 그대로 거리로 옮기는 건 아니고요. 동네 식당과 이자카야로 옮긴 거죠. 아케이드 상점가나 유흥가에, 미리 회비를 받은 수십수백 명을 뿌리는 겁니다.
팔찌나 이름표로 이 행사에 참여한 사람인 줄 알 수 있게 하는 거죠. 주최 측이 정한 표식을 보고 그날의 자신의 짝을 찾습니다. 거리(마치)를 돌아다니며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신다거나. 그래서 마치콘입니다.
도쿄 같은 대도시에서는 한꺼번에 수십수백 명 남녀를 모아요. 1인당 얼마의 참가비를 내는데, 대게 남성의 회비가 두 배 이상 비쌉니다. 주최 회사는 특정 지역의 식당과 이자카야를 몇 곳 미리 그곳에서 지정한 음식과 술을 시간제한이 있는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거죠. 이걸 일본어로 노미호다이(飲み放題), 다베호다이(食べ放題)라 합니다. 생활일본어로는 ‘노미호’, ‘다베호’라 줄여 말하죠.
마치콘에 참여하는 참가자는 이렇게 생각하죠.
‘어차피 다베호나 노미호를 하고 싶었어. 이왕이면 커플 매칭도 될 수 있으니 더 좋은 거잖아!’
마치콘은 시작부터 대흥행이었습니다. 마치콘을 주관하는 회사만 몇십 개 우후죽순 창업했죠.
2014년 시작한 마치콘은 2015년이 되면, 한해 전국 참가자 수가 2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활성화됩니다. 주최하는 단체와 기업만 수백 개가 넘은 거죠. 2015년에는 이미 18~34세 미혼남녀의 마치콘 참여 비율이 30%에 달한다는 설문조사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에는 2011 동일본 대지진이 한몫 거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실제 12년, 13년부터 출산율이 부쩍 높아졌으니까요)
마치콘에 참가하려면, 우선 마치콘 운영사에 회원가입을 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상정보를 기본적으로 기입하는 거죠. 이게 참여하는 여성들에게 작은 안도감을 줍니다.
‘상대도 적어도 내가 공개하는 개인정보만큼은 기입을 하겠지. 이것으로 조금 안심’
뭐 이런 마음이죠.
마치 개인정보를 노출해야 하는, 페이스북 같은 SNS 서비스에 가입하는 기분이잖아요. 물론 페이스북에도, 범죄에 가까운 DM이나 광고를 보내는 게 꽤 심각한 문제긴 하죠. 하지만, 페북에서 오래 공개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이라면. 가짜 계정을 찾아내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내게 친구 신청을 한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몰라도, 그의 지인을 통해 대충 짐작할 수 있으니까요.
마치콘 회원가입이 딱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 아무래도 의심을 덜 하게 되는 거죠.
마치콘과 유사한 역할을 하는 데이팅 앱도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입니다. 영국에서 특히 유행이라 하네요. 재미있는 건, 감염병으로 데이팅 앱이 유행하고서 클럽을 찾는 청년수가 대폭 줄었다고 하네요. 독일에서는 청년보다 오히려 중장년의 데이팅 앱 사용률이 더 높다고 하고요.
생각해보세요. 마치콘의 탄생과 성장. 이게 나름 꽤 흥미진진하거든요.
일본인은 친절하면서도 타인을 심각하게 경계하죠. 뭔가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자체를 엄청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맘에 드는 이성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도 되는 마당을 깔아 준다면, 이거 재밌잖아요. 게다가 가게마다 약간의 시간제한은 있지만, 노미호와 다베호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고요.
게다가 소심한 일본인을 위해, 참가는 동성(同性) 2인조로 제한하는 게 기본이니까요. 그러니까 내 친구와 함께 맘에 드는 이성을 찾는 퀘스트를 뛰는 즐거움을 누리는 겁니다. 커플 매칭은 실패해도 내 친구와 즐거운 추억 정도는 만들 수 있는 거잖아요.
민간분야에서 시작한 마치콘은 곧 공공부문인 지자체와 결합합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지자체의 가장 큰 고민이 뭘까요?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 인근 대도시로 인구이동으로 인한 지역 경제 침체.
마치콘은 이 점을 멋지게 파고들었죠.
마치콘 운영자들은 아케이드 상가가 가장 한산할 시간인 오후 2~5 시대 행사를 곧잘 맞췄습니다. 가게는 최소한의 경비만 받아도 매출은 올라갑니다. 그러니 대폭 할인을 마다할 이유가 없죠.
게다가 한 번에 수백 명이 좁은 상점가에 몰리면 어떻겠어요? 이것만으로도 장관이잖아요.
음식점에 이런 속설이 있죠. 재방문객을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게, 첫 방문이다. 한번 방문한 손님이 두 번 방문할 확률은 높아진다.
마치콘은 착착 진화합니다. 가게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가게 미팅, 쇼핑몰 자체를 통째로 활용하는 몰 미팅까지 다양해졌죠.
액티비티를 활발하게 하면 서로 호감도가 높아질 거라는 가정 아래, 이왕이면 농촌까지 도와주자는 명분을 달고 농촌 미팅 즉, 노콘(農コン)까지 나타났습니다.
이건 상대적으로 조금 나이가 있는 독신 남녀를 위한 건데요. 연고가 없는 농촌 지역으로 이주를 꿈꾸는 남녀를, 농촌에서 채소와 과실을 수확하게 하는 등의 액티비티를 함께 하게 해 줍니다. 나름 자연스럽고 세련된 농촌체험 미팅인 거죠. 게다가 결혼까지 성사되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조건으로 지자체가 결혼 축하금이나 각종 지원도 합니다.
마치콘. 이게 생각보다 인기가 좋았습니다. 이걸 보고 일억 총활약대신의 눈이 반짝였죠.
‘그러면 우리가 저 방식을 차용하면 되겠구나’
‘우리는 정부니까 행사를 더 화려하고 규모 있게 해 보자’
‘이왕이면 전국의 자치단체장들도 모으고 그럴듯한 결혼 정보회사도 앞세우고, 도쿄에 크고 아름다운 컨벤션도 빌리자. 참여 및 후원회사도 왕창 모아야지. 그러면 좋은 성과가 있겠지’
여기서 한 발 더 가기도 했죠. 내디뎌서는 안 될 한 발이었습니다.
‘이왕이면 우리가 미리 커플 매칭을 해주자. 마치콘에 참여하기 전에 미리 커플 매칭을 하고 다베호나 노미호를 하러 다니면, 커플 성사 비율이 높아질 거 아닌가’
여기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1. 이미 성공적인 민간행사에 굳이 정부가 숟가락을 얹으려 했다는 점
2. 자문조직에 불과한 국민회의의 미숙한 전략 실행을 위해서는, 실무 공무원 조직의 현 사업을 필연적으로 방해할 수밖에 없는 점.
우리로 치면 국무위원에 해당하는 중앙부처 장관 그리고 일본 최고지도자가 엄선한 지식인 그룹으로 이뤄진 일억 총활약 국민회의에서 이 정도 아이디어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일본을 대변하는 상징적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일억 총활약상이 주관하는 대규모 마치콘이 열렸냐고요?
아니. 안 열렸었어요. 기자들 사진 찍기 편하게 몇몇 어르신들이 인사 말씀만 길게 하셨죠.
그래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p.s / 일본에는 별의별 미팅 방법이 있죠.
최근에 쿠라야미콘(暗やみコン)이라는 방법도 성행합니다. 쿠라는 어둠을 뜻하는 암(暗). 야미는 밤을 뜻하는 말인데, 쿠라야미(暗やみ)는 한 미디로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란 뜻이죠.
그러니까 참가자들이 서로 눈을 가리고 서로 이야기만 한다는 미팅 법입니다.
왜냐고요? 참가자들이 외면보다는 내면에 더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죠. 뭐.
이런 게 유행한다니까 ‘쳇 젊은것들이 뭐 그리 숫기가 없어’ 옛! 헴! 하는 어르신들이 있을 텐데. 그게 청춘여남이 서로 만나기 그만큼 어려운 세상이 되어버린 겁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요.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