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대오각성(大悟覺醒)

크게 깨달음을 얻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

by Rachell Consulting

지난주, 제 인생 첫 하프마라톤 대회가 있었습니다.

올해 초 충동적으로 대회를 신청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연습은 충분치 못한 채 대회 날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매일 아침 가볍게 조깅을 하며 하루를 열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달린 최장 거리는 10km, 하프 마라톤은 21.0975km, 두 배가 조금 넘는 거리입니다.

완주가 가능할지 또 얼마나 힘들지 전혀 가늠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대회가 다가올수록 긴장은 두려움으로 변했습니다.


혹시 중도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일부러 주변에 “이번에 하프마라톤을 뛴다”라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만들어버린 셈이었죠.


스타트 라인에 서다

대회 당일, 긴장 탓에 잠을 설치고 새벽 일찍 눈을 떴습니다. “그래, 기록은 중요하지 않다. 중간에 포기만 하지 말자.” 스스로 다짐하며 대회장으로 향했습니다.


출발을 기다리면서도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말 아침 그냥 집에서 늦잠이나 잘 걸 괜히 사서 고생한다는 후회도 밀려왔습니다.


그때 스타팅 라인에서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습니다.

3, 2, 1

출발!


구름 낀 하늘, 선선한 바람. 뛰기엔 좋은 날씨였습니다. 평소에는 차들이 다니던 도로를 두 발로 내달리며 경복궁을 스쳐 지나는 순간, 두려움은 사라지고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고비는 찾아오고

3km, 5km, 어느새 10km 지점에 다다랐습니다.

'이제 절반은 왔다. 이 정도면 완주할 수도 있겠는데?' 자신감이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15km 지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출발할 때부터 시큰거리던 오른쪽 발등 통증이 더 이상 참기 힘들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여기까지만 뛰고 포기할까? 지금까지 뛴 것만 해도 내 최장 거리인데…' 그런 생각이 스치기도 했습니다.

“일단 1km만 더 가보자.”

스스로에게 말하며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달리며 떠오른 직장생활

힘겹게 달리기를 이어가던 그 순간, 제 모습이 평소 출근길의 제 모습과 겹쳐졌습니다.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도 없이 느꼈던 회사 내 부조리와 월요일마다 찾아오던 무기력함 속에서 힘들어도 꾸역꾸역 견뎌온 날들.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해온 걸까?' 스스로도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은 죽기 전 마지막 순간 이렇게 말합니다.

“어쩌면 내가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살지 않은 건 아닐까.”

그는 나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삶을 살았지만, 죽음 직전에서 '그것은 진정 자신이 원한 삶이 아니었음'깨닫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이어가며 한 발씩 내디뎠습니다.

“그래, 1km만 더 가보자, 1km씩 쌓이다 보면 결국 완주할 수 있어."


어느덧 20km 지점을 지났습니다.

“이제 남은 건 고작 1km 남짓이다.”

남은 힘을 짜내자 마지막 속도가 붙기 시작했고, 마침내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습니다.


기록은 2시간 11분 06초.

저의 첫 PB(Personal Best, 개인 최고 기록)이었습니다.


삶을 다시 달리다

그렇게 생이 첫 마라톤 완주가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어려움을 마주할 때면, 일단 1km만 더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쌓이다 보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목표에 한걸음 더 가까이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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