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아버지와 늦은
점심을 먹는다 장맛비 오는
전주의 오래된 식당인데
식탁은 좁아서 우린 한 식구 같다
혼자 온 사람, 함께 온 사람, 늙은이, 젊은이, 양복쟁이, 츄리닝……
한 그릇의 국밥에 머리를 숙인다
식당의 강아지도 머리를 숙인다
나는 아버지의 수저에 깍두기 한 알을 얹으며
비 내리는 창문에 CT 모니터 속의
아버지의 주름과 갑작스런 나의 실업과
어느새 흘러간 것들을 생각한다
어떤 순간은 기도 같아서
비 긋는 좁은 처마 아래
우린 한 식구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