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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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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Oct 20. 2022

폭풍의 언덕

히스클리프가 두 아이를 통해 보고자 했던 것은 뭘까.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나는 언제나 <제인 에어>를 더 사랑했다.


학창 시절엔 문체의 차이로 인해 여러 번역본들을 찾아서 읽었고, 

원서를 읽고 싶어서 영어 공부를 했었으니깐.

누군가는 장녀들이 특히 좋아한다던데 그래서 였을지도 모르겠다.


<폭풍의 언덕>은 어릴 때 만화책으로 봐서 

이야기의 흐름을 알고는 있었지만 항상 의아했었다. 

왜 이 책이 더 좋은 평가를 받을까. 

어째서 세계 10대 소설일까. 


갖고만 있었던 의문에 답을 찾았지만 

질문들도 더 쌓였다.


사실 처음에는 히스클리프를 관작을 열고 시체를 확인한 사이코패스라고 생각하면서

가을은 격정 멜로라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액자식 구성이라 짜증이 났었다. 


저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지들 멋대로일까가 궁금한데

액자식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과 행동만이 생생할 뿐 생각을 알 수 없었으니깐. 


폭력이 난무하는 야만의 공간인 '워더링 하이츠'와 

교양이 있는 것 같으나 차별과 경멸이 있는 '드러시크로스 저택'

구별된 것 같으나, 결국 같았다.

소설에서도 둘의 구별이 사라졌으니깐. 


재밌는 지점들은 너무 많지만

첫째로, 가장 즐거운 것은 캐서린과 캐시의 굉장히 입체적인 성격이다. 


엄마와 딸이 너무도 똑같게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고, 꼿꼿하며, 편협하면서, 히스테릭하고,  잘못을 뉘우치며, 멍청하면서, 똑똑하고, 

미칠 듯이 사랑하며, 장난기가 많고, 자유를 갈망한다. 

최근에 나오는 현대 소설에서도 이 정도로 극적으로 변화하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들은 드문 듯하다. 


1847년 작품이니 175년 전에 이러한 여성상을 그려냈던 것은 정말이지 

에밀리 브론테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히스클리프와 헤어튼을 놀리고 무시한 후, 가르치며 사랑에 빠지는 모습에서 

특히, 무시하는 것을 본 넬리/딘 부인(화자)이

환경의 풍요로움을 지적하며 오만하다고 하는 부분에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을 서슴없이 하지 않는가. 


그 지적을 19세기 중반에 시골에 살던 여성이 했다는 것이 나를 즐겁게 하는 

동시에 남자에게만 재산이 상속되고 가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왜 그토록 캐서린이 자유를 갈망했는지를 알게 한다. 


두 번째는, 

세대를 이어서 내려오는 복수보다는 히스클리프 마음이다. 


인종차별의 시대에 흑인을 주인공으로 선정한 에밀리에게 또 한 번 즐거워했는데 

시골 귀퉁이 야만적인 위더링 하이츠에서는 흑인인 것 그 자체보다도, 

교육을 받지 못해서 언어와 행동이 거칠고 태생을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점이 색달랐달까. 

한 마디로 무식해서 조롱받고 무시받는 것을 재밌게 비틀었다고 생각했는데

히스클리프의 복수의 일환이었던 

헤어튼의 무식함과 거침은 헤어튼이 백인인 것과 무관하게 이전의 그와 같은 모습이었니깐. 


이를 복수라고 흔히 평가하지만,

그가 진짜 원했던 게 뭐였을까 궁금해진다. 


딘 부인과 캐서린의 대화 중 자신의 무식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것만 듣고 

가장 중요한 사랑고백은 못 듣고 

뛰쳐나갔다는 것부터 속이 터졌고. (비극이라는 점을 떠올렸다.)

문제는 딘 부인이다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넌 대체 원하는 게 뭐니를 고민하게 했다. 


캐서린은 그 무식함도 안고 가고자 했거늘

환경의 부당함이란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만

결국 자신의 열등감을 이기지 못해 떠난 것이었으니깐. 

돌아와서도 외도를 하긴 했는데 그것도 뭐 나름 건전했다고 보였는데.

캐서린이 죽고도 못 잊다가

자기들과 다르게 맺어지는 헤어튼과 캐시를 견디지 못하고 

캐서린의 망령과 함께 죽어간 그 사람의 속내가 궁금했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그를 악마로 표현했지만,

둘러싼 세계가 악마적이지 않았나?

심리학적으로 볼 때 아동기 학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표현했고,

환경의 중요성과 학습으로 인한 변화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과 헌신을 

보이는 순수한 방식이 굉장히 묘했다.

히스클리프도, 캐서린도.


두 아이를 고통에 빠트려서 보고 싶은 게 뭐였을까. 

헤어튼에게 히스클리프는 악마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 아이가 유일하게 모든 것을 제대로 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를 동정하면서도 악마라고 생각한 딘 부인의 시점이기에 의문점이 너무 많이 남는다.  


흠 정말 세계 10대 소설이 맞는 듯하다. 

생각할게 너무 많고 또 재밌어서. 




p.65 

  히스클리프는 은인에게 불손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귀염을 받아도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었지요. 그러면서도 자기가 주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은 뻔히 알고 있었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기만 하면 집안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요. 


p.98

  "자, 울지마!" 캐서린 아가씨는 경멸하듯이 말했습니다. "네가 죽은 것도 아니잖아. 더 이상 곤란하게 하지 마. 오빠가 와. 조용히 해! 그쳐, 이사벨라! 누가 널 어떻게 하기라도 했니?"


p.101

  "아니야, 하나님은 내가 맛볼 만족감을 맛보시지는 못할거야." 그는 대꾸했어요. "나는 제일 좋은 방법을 알고 싶을 뿐이야! 나를 가만히 놔둬. 생각해 내게. 복수를 생가하는 동안엔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p.103

  이 고장 사람들에게 깊은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처지 때문은 아니오. 이 지방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좀 더 깊숙한 자기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도시 사람들처럼 껍데기뿐인, 분주하고 하잘것없는 외적인 사물에 별로 마음 쓰지 않으면서 살고 있고. 이런 데서는 한평생 연애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도. 


p.109

  히스클리프에 대한 그의 학대란 성인도 악마로 만들기에 족한 것이었어요. 그리고 정말 그 무렵 그 아이는, 마치 악마라도 씐 듯했어요. 그 아이는, 힌들리 서방님이 구할 길 없이 타락해 가는 것을 보고 좋아했지요. 그리고 날로 점점 더 음흉스럽고 영악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답니다. 


p.113

  오랫동안 공부 면에서 캐서린 아가씨에게 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져버리고, 입 밖에는 내지 않았지만 사무치는 후회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리고 그가 불가피하게 그전 수준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아무리 그를 향상시키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그러자 용모까지 정신적인 타락과 보조를 같이하여 걸음걸이도 단정치 못해지고, 얼굴도 비열해졌지요. 타고난 무뚝뚝한 성품이 과장되어서 거의 바보처럼 지나치게 붙임성 없는 침울한 성격으로 변해 버렸어요. 그리고 많지도 않은 아는 사람들에게 존경보다는 차라리 미움을 품게 하는 데 이상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았어요.


p.133

  그러나 지금 히스클리프와 결혼한다면 격이 떨어지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 가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릴 수가 없어. 히스클리프가 잘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넬리, 그가 나보다도 더 나 자신이기 때문이야. 우리의 영혼이 무엇으로 되어 있든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은 같은 거고, 린튼의 영혼은 달빛과 번개, 서리와 불같이 전혀 다른 거야."


p.135

  하지만 내가 린튼과 결혼한다면 히스클리프가 오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도울 수가 있어. 

  "아가씨 남편의 돈으로 말이죠, 캐서린 아가씨?" 저는 물었어요. "그분은 아가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하지는 않을 거예요. 게다가 나로서는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린튼 도련님과 결혼하는 동기로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 가운데서도 그게 제일 나쁘다고 생각해요."


p.147

  애정에서가 아니라 자부심에서 서방님은 누이가 린튼 가문에서 시집가서 당신 집안을 명예롭게 해주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었어요. 그리고 누이가 자기에게 방해만 되지 않으면 우리들을 노예처럼 짓밟아도 모르는 척했지요.


p.152

  글쎄 우리 인간이란 결국은 자기 본위가 되고 마는가 보죠. 순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라 해도 거만한 사람보다는 더 정당하게 이기적이라는 차이뿐이지요. 그리하여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서로 상대가 자기의 이해를 자기 위주로 생각해 주지 않는다고 느끼게 되었을 때 그분들의 행복은 끝장이 났던 거랍니다. 


p.162

  "그런데 그 남매는 아주 닮았어. 너무 귀염 속에서만 자랐어. 이 세상이 자기네들만 살도록 만들어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나도 두 사람 모두의 비위를 맞추고 있지만 역시 한 번 골려주는 게 그들에게는 좋을 것 같아."


p.189

  "공격할 용기가 없으면 사과를 하든지 두들겨 맞든지 해요. 그러면 실력 이상으로 허세 부리는 버릇이 고쳐질 테니. 안 돼요! 당신에게 열쇠를 주느니 삼켜버리겠어요. 나는 어느 편에도 친절하게 했는데 참으로 유쾌한 보답을 받는군요!... 여보, 나는 당신과 당신의 재산을 지켜주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감히 나를 나쁘게 생각하다니, 히스클리프가 당신을 병이 나도록 때려줬으면 좋겠어!"


p.206-7

  오, 내 몸이 불덩이 같아! 밖으로 나갔으면, 다시 야만에 가까운, 억세고 자유로운 계집아이가 되어 어떠한 상처를 입더라도 미치거나 하지 않고 깔깔 웃을 수 있었으면! 왜 나는 이렇게 달라졌을까? 왜 조금만 뭐라고 해도 내 피는 끓어오를까? 저 언덕 무성한 히스 속에 한번 뛰어들면 틀림없이 정신이 날 텐데. 다시 창을 활짝 열어줘, 빨리 왜 가만히 있어?"

...

  "내게 살 기회를 주지 않겠단 말이지." 아씨는 심술궂게 말했어요. "그래도 아직 기운을 다 잃지는 않았어. 내가 열겠어."


p.246

  그러니 이 사람은 내가 아무리 잔인한 짓을 해도 예사로 생각했거든.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만 다치지 않는다면. 아마 선천적으로 잔인한 짓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저렇게 가엾고 노예 같은 비굴한 계집이 내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는 게 그지없이 어리석고 어이없는 일 같지 않아?


 p.263

  내가 당신의 마음을 찢어놓은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찢어놓은 거야. 건강한 만큼 나는 불리하지. 내가 살고 싶은 줄 알아? 당신이 죽은 뒤에 내 삶이 어떨 것 같아? 아, 당신 같으면 마음속 애인을 무덤 속에 묻고도 살고 싶겠어?


p.266

  '아씨는 까무러쳤거나 돌아가신 거야. 그렇다면 오히려 잘된 거지. 주의 사람들 모두에게 짐이 되고 불행을 가져오는 사람으로 살아 있기보다는 돌아기는 게 훨씬 낫지.' 저는 생각했어요. 


p.274

  어떤 형체로든지, 차라리 나를 미치게 해줘! 제발 당신을 볼 수 없는 이 지옥 같은 세상에 나를 버리지만 말아줘. 아! 견딜 수 없어! 내 생명인 당신 없이는 못 산단 말이야! 내 영혼인 당신 없이는 난 살 수 없단 말이야!"


p.294

  만일 내가 그에게 고통을 줄 수 있고 또 그렇다는 걸 그자가 알기만 한다면 그가 지금보다 고통을 덜 당하더라도 난 상관없어. 아, 난 그에게 갚을 것이 너무나 많단 말이야. 


p.298

  다시 워더링 하이츠의 지붕 밑에서 하룻밤이라도 보내는 것보다는 영원히 지옥에서 살라는 선고를 받는 편이 차라리 훨씬 낫겠어. 

...

  아가씨는 이렇게 마차를 타고 떠난 뒤로 다시는 이 고장을 찾지 않았어요.


p.301

  저는 그분과 힌들리 언쇼를 비교해 보았는데, 왜 그분들의 행동은 비슷한 환경인데도 그렇게 반대되는 것일까, 만족한 설명을 얻으려고 애써보았어요.... 그러나 저는 더 똑똑해 보이는 힌들리가 오히려 더 나쁘고 더 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보인 거라고 생각했지요.... 한 사람은 희망을 가졌고, 또 한 사람은 희망을 버렸어요.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선택했으니 마땅히 그것을 견디지 않으면 안 되지요. 


p.306

  "야, 이 녀석아, 이제 너는 내 거야! 나무를 휘게 할 정도의 강한 바람을 맞고도 이 나무가 다른 나무처럼 휘지 않고 자랄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자!"


p.360

  힌들리 아들 놈은 여러 가지 훌륭한 소질을 타고났지만 다 잃어버리고 말았거든. 쓸모가 없기는커녕 그보다도 더 나빠졌어. 나야 조금도 섭섭할 게 없어. 그가 얼마나 많이 후회할지는 내가 아니면 모를 거야.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가는 것은 헤어튼이란 놈이 나를 몹시 좋아한다는 사실이지. 


p.412

  그 도련님은 모르는 걸 배워가지고 아가씨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거죠. 그 도련님의 노력이 숫자를 모를 만큼 완전하지 못하다고 해서 그를 비웃는다는 건 아주 버릇없는 짓이에요. 아가씨가 만약 그 도련님과 같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얼아마 더 나았을 것 같아요? 그 도련님도 어렸을 적에는 아가씨와 마찬가지로 영리하고 재주가 있었어요. 게다가 그 야비한 히스클리프 씨가 몹시 학대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이제 와서 그 도련님이 멸시를 당하다니 저도 기분이 나빠요."


p.501-2

  그 젊은이는 무지를 조소당하고 이제는 무식을 면하려는 태도마저 비웃음을 사자 너무 지독한 일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했다. 나도 동감이었다. 그리고 그가 배우지 못하고 자라면서 무식의 어둠을 밝히려 처음으로 애쓰던 때의 몇 가지 이야기를 딘 부인에게서 들은 일이 생각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부인, 우리는 누구나 시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그런 우리를 깨우쳐주지 않고 비웃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넘어지고 비틀거리고 할 겁니다!"


p.504

  그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희망이 처음으로 그에게 공부를 해야겠다는 자극제가 되었다. 그런데 인정을 받기는 커녕 자신을 높이려는 노력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p.518

  도련님이 공부하려는 것을 집어치우게 만든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거지요.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중지시키고 말았으니까요.


p.526

  그러나 두 분의 마음은 같은 목표를 향했던 것이지요. 한 사람은 상대방을 사랑하고 인정해 주려고 마음먹고 있었고, 그 상대방 역시 사랑하고 인정받으려고 결심했으니까요. 그들은 노력한 결과, 그 목표에 이르게 되었답니다. 


p.535

  아씨는 언쇼 도련님이 히스클리프 씨에 대한 평판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성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더욱 강렬한 유대로 맺어진 관계, 즉 습관으로 다져진 쇠사슬 같은 관계라는 것, 그러니 그 관계를 끊으려는 것은 잔인한 일이라는 것 등등을 깨닫게 되었지요. 


p.540

  제기랄, 헤어튼의 모습은 내 불멸의 사랑, 내 권리를 지키겠다는 무모한 노력, 나의 타락, 나의 자존심, 나의 행복, 그리고 내 고뇌의 망령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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