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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 Jan 30. 2024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

당신은 스스로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가?

#결심이_필요한_순간들 #러셀_로버츠




이 책 제목 그대로 결심이 필요한 순간이다. 

사실은 결심을 했고, 

용기 있게 밀고 나가야 되는 데 계속 뒤를 돌아보는 나를 다잡고자 읽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지. 알아. 근데 혹시, 내가 잘못한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했어야 했을까?'

답이 없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혹시나 다른 방향은 없었을지를 반추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의미를 찾으라는 글을 경계한다.


"의미 있는 일을 하라."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행위를 계속하라."는 말들이 최근의 유행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고통스러워도 계속해서 해내는 것은 당신이 그 일을 할 때 도파민이 생성된다는 것이며,

힘듦에도 불구하고 해내려는 의지가 있는 것이기에 고민 말고 하라는 것이니까.


다만, 인간이 의미를 찾는 종이지만,

그 의미를 위한 희생이 당연시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책에도 지적하듯이 인간은 고통을 사서 경험한다. 

자원봉사가 좋은 예시로 찬사를 받는 행동이다.

고통 속에서 인간은 의미를 찾는다. 


독립투사가 그러했고, 보호법 제정을 위해 힘쓰는 피해자의 가족들이 그러했고, 

처벌법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피해자들이 그러했으니까.


그런데, 그 찬사로 고통이 다 상쇄되는 건가?

그러면 그들의 고통과 피해는 사라지나.

그렇지 않다. 


찬사는 분명 고통을 견디는 것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찬사는 부수적이고, 행동의 의미는 개인이 찾는 것이다. 

한센인을 위해 평생을 바친 신부님들처럼 말이다. 


나를 괴롭히던 교수의 입에서 "의미 있으니깐 포기하지 말라"던 말이 나오는 순간 "의미"는 퇴색되었다. 

의미를 찾는 것은 자신이지 남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며, 고통이 당연시될 수도 없다.


어쩌면 의미는 현재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우리가 붙이는 합리화일지도 모른다. 

남을 돕는 직역이기 때문에, 무급과 잠 못 자며 일하는 게 당연시될 수 있나? 

대의를 위해서 개인은 희생되어야만 하나?

자격증을 따기 위한 시간을 수련하는 것이기에 무급이어도 괜찮은가?


K-방역을 칭송하던 코로나 시기를 기억하는 가?

의료진들은 "숭고한 희생"이라고 자신들의 행위에 딱지 붙이기(labeling)를 거부했다. 

"의미 있는 희생"이었기에 그들의 고통은 당연시되었고, 인원은 충원되지 않았으며, 그들은 갈려나가야만 했다. 


grit이 높은 사람으로서 나는 그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온몸이 부서져라 한계를 넘은 순간,

온몸이 부서져 있는 데 그것이 좋기만 한 일인가.

산산조각이 난 모습으로도 살아갈 수 있지만, 그 후의 공허감을 다루는 경우는 드물다.


그만큼 한계를 이겨나가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은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러하고, 인간의 한계는 자신이 정하는 것이니까. 


다만 조금 더 섬세한 표현을 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내가 더 나아지고 싶고, 남들과 비교하면서 갖는 열등감 때문에 고통을 겪는 것과

환경적으로 착취를 당하거나, 폭력에 노출되는 고통은 다르다.


이 둘이 복합적으로 작용되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참고 버텨나가는 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너무 개인에게 책임을 환원한다고 생각된다.

그 누구도 어떤 상황에도 고통은 강요될 수 없으며, 

오히려 공포에 질릴 때 도망가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인간의 스트레스 반응 중 하나이다.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이 나라를 떠나려는 많은 간호사들처럼.


그렇기에 이 책이 반가웠다. 



  투지와 끈기는 과대평가되어 있다.... 그래도 별 도움이 안 된다면 커리어를 완전히 바꾸어도 전혀 창피할 일이 아니다. 법조계가 싫어서 그 분야를 떠났다면 실수였다고 말하지 말라. 가진 정보가 그처럼 불충분했는데 어떻게 실수일 수 있는가? 인생이 생각과 다르게 펼쳐진다면, 나라는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 된다면, 변화하라. (p.221)


 뱀파이어가 되어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망토를 벗어던지고 햇빛을 즐기라. 손실을 최소화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라.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그 일을 계속하고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살아 있으라. 변화하라. 벨리칙처럼 하라. (p.222)


 로스쿨에 입학했는데 변호사가 되기 싫어졌다면, 당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최초의 사람은 아니다. 끈기와 투지가 미덕이라기에 그 길을 계속 고수한다면, 그 역시도 당신이 최초는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미 변호사 생활을 꽤 오래 했다고 해도 직업을 바꿔도 된다. (p.223)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절대로 네 꿈을 포기하지마! 버텨!"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꿈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꿈이 악몽으로 판명 난다면, 버리고 떠나야 한다.

 ... 이 경우는 오히려 규칙("계속 버텨" 혹은 "너무 힘들면 그만둬")이 있는 게 길을 잃게 만들 수 있다. 삶에서는 언제 버티고 언제 그만둘지를 아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p.234)




이 책을 덮기 전까지는 나의 결정이 지극히 '비합리적인 결과'라고 생각했다. 

이전 상사와 유사한 사람을 피하려는 너무도 '감정적인 결정'이라고 자책했다.

 

대학원을 나오고, 1년 반을 더 공부했으며, 필기에 통과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던 순간에 지원을 멈췄으니까.

고통받으면서도 오랜 시간 꿈꿔왔던 임상심리사가 되기 위한 수련에 들어가기 직전에 멈춘 것이다.


지금껏 해온 것이 아까웠고, 주위 사람들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나 역시 조금 덜 힘들었으면, 

적어도, 이 분야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한 명이라도 나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계속 반추하게 된다. 


물론 아름답게 쓰여진 논문의 서론과 연구 방법, 논의 등에 감탄하고, 수검자와 내담자를 진심으로 아끼고,

대학원생을 착취하지 않으며, 수련생에게 폭언하지 않고, 병원에 인맥으로 꽂아넣지 않으며, 

수련 환경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슈바들도 존재한다.


다만, 내가 만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책의 문장을 빌려오면,

  "우리는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p.116)


나는 그와 같이 되기 싫었다. 

이 필드 안에서 감정이 점차 사라지고, 

그들과 점차 비슷해져 가는 게 끔찍했다.

또, 산업 전반의 인력 착취와 인맥은 나의 열정을 재만 남게 했다. 


"우리는 종종 그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옳은 일을 할 때도 있다. 이런 희생을 할 때 기분은 좋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런 희생을 감수하는 이유는 특정한 종류의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p.182)


선택을 해야 했고, 결정을 했다.


그럼에도, 0 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나는

불안감과 함께

익숙했던 과거이자 내가 포기해야 했던 것들을 반복적으로 떠올린다. 

내가 연구할 수도 있었던 주제들과 확인할 수 있었던 결과들,

만날 수도 있었을 내담자와 수검자들 말이다.


그러면서 나만 참았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나는 견디지 못하는 사람인가 자책한다.


아마, 한동안은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마치 사별한 자를 보내는 것 같이 가슴이 허하고,

신체화가 일어나며 애도를 하는 것 같다고 느껴지니까.


결국 내가 어디에 있는 가는

개인의 가치관 문제이다. 


그렇기에 요새 자기 연민에 잠 못 이루고,

억울함에 가슴을 치더라도 

장기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 것일테다. 


이 책을 선택해서 읽은 것은

어쩌면 삶이 다시 나의 흐름으로 되돌아왔다는 지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순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나의 목표를 위해서 세상이 도와주는 느낌.

그렇게 믿고 싶은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일지도 모르지만,

근 4-5년 동안은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느낌이 맞기를 바라본다.

적어도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숨이 막히진 않으니깐 말이다. 


고민이 많으신 분들에게 정말 추천한다.


최선이란 없는 것인데

언제나 이 선택이 최선인지를 고민하면서 지내왔기에 더 강하게 추천한다.

아껴보고 싶으시다던 최재천 교수님의 추천사에도 공감되고 말이다. 


선택의 책임은 온전히 내게 있으니, 

두려운 것이 당연할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알고 있다. 

모두가 같은 상황이라고 여겨져도 실은 각자 상황이 다르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선택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순간에 내가 이 책에 끌려서 읽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맙게도 필요한 때에 내게 왔다. 


친구를 즐겁게 만난 후 

"오늘은 네가 말을 더 많이 했어, 내가 더 많이 했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왜 그 친구를 만나고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하는 대화이다. 

우리의 시간을 품평하는 것. 


시간을 들여서 친구를 보는 것은 일하는 것과 다르며, 

나의 시간을 기꺼이 너와 함께 하고 싶다는 의미이다. 


의문이 들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내 시간을 쓰고 싶기에 

잘 해낼지 걱정이 되지만, 해 볼 것이다.


삶은 너무 짧으니깐. 


ps. 그렇다고, 내게 고통을 준 사람들이 용서되진 않는다.

성인 군자도 아니고,

카르마(karma)가 있다면 적어도 같은 고통을 받기를.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라도 겪어 보길. 


용서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지만 ㅎ

나는 부처도 아니고 

이젠 스스로를 옥죄는 자기성찰을 할 필요도 없다.


나의 최대 강점은 언제나 학구열과 심미안으로 측정되었고, 

주로 용서와 자비는 가장 낮은 점수로 나오니까. 


(궁금하면 해보시길.. VIA 강점 척도: https://www.viacharacter.org/survey/Account/Register)






p.7-8

  '완벽함'의 반대는 '엉성함'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음'이다. 그렇다고 해서 '거의 완벽함'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 삶을 아름답게 해 준다. 실행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내가 가장 원하는 것으로 결정했음에도 바라지 않던 결과가 나왔다면, 그건 실수가 아니라 그저 선택일 뿐이다. 결과가 맘에 들지 않으면 빨리 포기하면 된다. 인생은 어차피 지도 없이 하는 여행이며 애당초 '옳은 결정'이란 없었으니까. 과학의 영역을 최대한 넓히되 때로 과학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게 겸손의 미덕이다. 우리 삶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하고 맛보고 음미해야 할 미스터리다."

  ...

  훌륭한 도박사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카드를 쥐고 어떤 카드를 버려야 하는지, 언제 접어야 하는지, 언제 털고 일어서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어느 판이든 딸 수도 있고, 또 어느 판이든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추구하는 것.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한다."

                                                                                        - 추천의 글(최재천)


p.18

  그러나 답이 없는 문제들은 측정을 거부한다. 당신에게는 효과가 있었던 방법이 나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다. 어제는 맞았던 방법이 내일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답이 없는 문제들은 다스려지지도, 길들지도 않으며 그때그때 저절로 생겨나고, 유기적이고, 복잡하다. 정해진 합리적 방법을 따라가면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답이 있는 문제들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p.47

  당신이 일단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으로 완전히 달라진 자신이다.


p.55

 여기까지가 겨우 남자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다. 여자라면 목록은 훨씬  더 길어진다. 임신했을 때 먹을 수 없는 것들, 마실 수 없는 것들, 임신으로 인한 건강상의 부작용, 출산 시 사망 위험도 있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 문화에서는 일과 가정 사이의 트레이드오프가 남자의 경우보다는 여자가, 엄마가 되기 전보다는 된 후가 훨씬 더 힘들다. 이런 걸 대체 누가 원할까?


p.58-60

  독신인 다윈은 결혼을 하면 커리어를 망치게 될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혼을 한 다윈은 결혼 생활 그 자체가 주는 만족감에 더 없는 행복을 느끼면서 오히려 더 생산적인 학자가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다윈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 수다를 훨씬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 

...

  만약에 부모가 되는 게 어떤 거냐고 다윈이 내게 물어볼 만큼 잘 아는 사이였다면, 나는 벽난로의 불이 다 식고, 하늘이 다시 밝아 오고, 가로등이 다 꺼지고, 해가 떠올라 런던의 안개를 말끔히 걷어 낼 때까지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숨겨져 있던 셰익스피어의 희곡이 한 편 발견됐다고 상상해 보라고 했을 것이다. 

...

  "가시겠어요?"

  "희극인가요, 비극인가요?" 다윈이 묻는다. 

  "아, 어쩌죠? 이 연극을 본 사람들은 도통 말이 없네요. 아니면 말해 줄 수 없나 봐요. 너무 강렬하대요. 공연 때마다 결말이 달라져서 리뷰를 읽어보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정말 볼만할 텐데.

...

 모든 사람이 이 연극을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두가 감당하고 싶어 하는 것도, 그럴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이 연극을 정말로 좋아하지만, 그건 제 경우이고 당신은 아닐 수도 있어요."

  도움이 좀 되었는가? 아마 아닐 것이다. 답이 없는 문제란 이런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내리려고 할 때 저런 이야기가 부담을 좀 덜어 줄 것 같은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p.67

  그는 우리가 실제로 비용-혜택 목록을 꼭 만들어 봐야 하지만, 그것이 비용이나 혜택을 합리적으로 평가해 보기 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내가 정말로 추구하는 것'이 뭔지 알아내기 위해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내 마음이 어느 쪽에 있는지 알아보라는 것이다. 


p.68 

  어브 재니스 비교표를 반쯤 작성하던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 젠장. 결과가 이렇게 나오면 안 되지! 장점 몇 개를 저쪽으로 옮길 방법을 찾아야 해!"


p.69

  제 생각에는 체크리스트를 한번 만들어 볼 만한 게, 그런 목록이 감정 반응을 자극해서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뭔지 알려 주니까요. 동전 던지기처럼 말이에요. 어느 한쪽으로 마음이 쏠려 있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동전이 나온 걸 보고 실망스럽다면 '아, 실은 내가 원하는 쪽이 있었구나'를 알게 되죠. 


p.73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면, 동전을 던지라.

  일단 동전이 돌기 시작하면, 내가 지금 어느 쪽의 결과를 바라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p.77

  인간의 관심사는 일상적으로 느끼는 그날그날의 쾌락과 고통을 넘어선다. 우리는 목적을 원한다. 의미를 원한다. 나 자신보다 큰 무언가에 속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열망한다. 중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이런 전반적 느낌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고 나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결정한다. '잘 산 인생'의 중심에는 이런 동경이 있다. 


p.90

  친구나 가족과의 유대가 중요하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하고 싶다. 그리고 목적과 의미를 갖기 위해서라면,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고통은 기꺼이 감내할 것이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중심에는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길을 갈 것이냐 하는 점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얘기도 인간이라면 바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p.94

  그렇지만 쾌락보다 고통을 더 많이 불러오는 일을 선택하는 게 어떻게 합리적일 수 있을까? 기쁨이나 즐거움보다 괴로움이나 가슴앓이가 더 클 수도 있는 길을 대체 누가 선뜻 선택할까? 대체 누가 가슴앓이와 불안을 자청할까?

인간이다. 

우리는 어려움을 무릅쓰기 좋아한다. 사람들이 시를 쓰고, 전쟁이 났는데도 군에 입대하고, 도저히 오를 수 없을 것 같은 곳을 산이 거기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르고, 마라톤을 뛰고, 보수도 받지 않고 자원봉사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고통은, 특히나 어떤 이상적인 것을 성취하기 위한 고통은 의미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비이성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p.108
  어디에 살 것이냐 하는 문제는 단순히 어디가 날씨가 더 좋으냐, 취업 기회가 많으냐, 인근에 여행할 많나 곳이 많으냐, 음식이 맛있느냐 등등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 사느냐는 내가 무얼 경험하게 되느냐뿐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관한 문제다. 

p.116
  우리는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기 위해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p.133

  내 친구는 자녀들이 어릴 때 가족들과 카누 여행을 했다. 어디쯤 멈춰서 밤을 보낼지 결정해야 할 때가 되었을 때 친구는 아이들에게 그 결정을 맡겼다고 한다. 친구는 아이들에게 최선이라는 게 '그럭저럭 괜찮음'의 적敵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다. 캠핑을 하기에 가장 좋은 섬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바위만 잔뜩 있는 해변에서 잠을 청하게 되거나 아예 한잠도 못 잘 위험이 있었다. 최고의 배우자를 기다리다가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구혼자와 결혼해야 할지도 모른다. 


p.137

  나는 여러분에게 타협하라고 권장하는 게 아니라, 타협'해야만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p.138

  '내가 지금 타협하는 게 아닌가?'라는 두려움은 우리를 꼼짝 못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을 핑계가 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타협이라는 단어는 꼭 맞는 단어는 아니다. 타협한다는 것은 조금 못한 선택지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뜻인데, 결혼이나 온갖 종류의 답이 없는 문제에서 고려 사항 중에 '조금 못한' 것들이 끼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들은 일부 측면은 다른 것들보다 좋아 보이지만, 다른 측면이 그보다 못한 경우다. 일부 사람들이 타협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이제는 결정을 내릴 때가 됐고 더 나은 선택지는 도저히 없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다. 이는 타협이 아니라 '결정'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p.142-144

  인생이란 가이드북 없이 로마 여행 계획을 짜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여러분의 유일한 관심사가 지구에 머무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오로지 즐겁게 보내는 것뿐이라고 해도, 과연 무엇이 기쁨과 쾌락과 만족을 가져올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단순히 즐겁게 지내는 것 말고 다른 것에도 관심을 둔다. 우리는 목적과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다. 인생을 잘 살고 싶다.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싶다. 

  미래에 우리가 뭘 좋아하게 될지는 예측할 수가 없다. 그날그날의 경험이라는 협소한 일상을 넘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할 더 심오한 즐거움들은 절대로 일일이 다 미리 상상할 수가 없다. 


p.143

  어떤 인생 문제들은 정답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실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이다. 인생이란 지도 없이 지구를 행군하는 여행이다. 


p.145

  세상의 그 어떤 가이드북도,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 해도 누구와 함께 여행하라고 알려 줄 수는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가장 친한 친구와 결혼하라.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말없이도 함께 있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마음씨가 착한 사람. 뭐가 중요한지(가치관과 원칙) 같은 관점을 지닌 사람. 죽이 잘 맞는 사람. 내가 존중하고 나를 존중하는 사람을 찾으라. 이만하면 그냥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환상적인 커플이다. 


p.149-150

  ... 다윈은 자신이 단순히 결혼 자체를 열망하는 게 아니며, 혼자일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열망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다윈은 아내가 될 에마를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 헤쳐 나갈 동반자로서 그의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줄 사람으로 보았다. 곁에 누군가가 함께할 수 있다면, 심지어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는 것보다도 더 의미 있는 삶이 되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p.151

  탱고를 추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영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끝내 잘 맞는 사람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결혼이 아닌 우정도 인간적으로 성장하는 한 가지 방법이다. 결혼하지 않은 내 친구들을 보면 대단한 우정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배우자나 자녀가 없으니 우정에 쏟을 시간이 많고 헌신적으로 좋은 친구, 좋은 삼촌, 좋은 이모가 된다. 

...

  친구와 가족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중요한 원천이라는 데는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친구나 가족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답이 없는 문제들 중에서도 특별한 종류다. 


p.153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는 '주위 사람들과 어떻게 교류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한다. 나는 어떤 종류의 친구나 부모, 동료가 되고 싶은가? 이는 청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처럼 극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친구, 부모, 동료로서 어떻게 행동하는가(내가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대접하는가?) 하는 부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정의한다. 


p.166

  세상을 바로 보고 싶은가. 

당신 안에서 되풀이되는 시나리오를 깨고 나와라. 

'자기기만이라는 미스터리한 베일'을 벗겨 내라. 


p.168

  하지만 당신의 지위나 자기 표현력을 활용해서 파트너가 빛나도록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다. 혹은 플로어에 나온 사람 모두가 더 질 높은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 보겠다고 마음먹을 수도 있다. 당신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데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근처에서 춤을 추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뜻밖의 즐거운 시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

  일상적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지에 대해 우리는 선택권이 있다. 첫 번째 선택은 자신을 개별적이고 영웅적이며 외로운 존재로 보는 것이다. 두 번째 선택은 다른 무언가에 속하고 연결된 존재로 보면서, 그 소속감을 경험의 중심에 놓는 것이다. 사전에, 도중에, 이후에 각각 내 경험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점은 일상적 경험이 나의 일부가 되는 방식을 바꿔 놓는다. 


p.170

  사전에 일정표를 가지고 대화에 돌입하지 말라. 계획된 대본을 가져가기보다는, 대화를 해 나가면서 하고 싶은 말을 발견해 가는 편이 낫다. 

  당신이 얼마나 재치 있는 대화를 나눴는지를 음미하기보다는, 다른 한 인간과 교류를 나누었다는 경험 자체를 음미하라. 그 대화를 통해 뭔가를 이루겠다는 기대 없이, 특정 방향으로 조종하겠다는 계획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번 지켜보라. 다음 차례에 당신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생각할 게 아니라 상대에게 온전히 주의를 집중해 보라.


p.175

  스스로를 앙상블의 일부로 보게 되면 분노할 일들이 줄어들 것이다. 이전에는 불공평하게 보였던 일들이 실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p.182

  우리는 종종 그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옳은 일을 할 때도 있다. 이런 희생을 할 때 기분은 좋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런 희생을 감수하는 이유는 특정한 종류의 사람이 되기를 열망하기 때문이다. 정직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이다. 


p.188

  그 이유는, 조지 버나드 쇼가 참석했던 모임의 여인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원칙이나 핵심 가치는 누가 돈을 준다고 해서 팔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진짜 인간은 돈을 정말로 많이 준다면 원칙을 희생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지적이 내게도 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을 때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는 이해할 만하다. 


p.189

 어느 의사 결정이 '본질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보여 준다면, 대가는 고려하지 말라. 자아감을 지키는 쪽을 선택하라. 다이아몬드를 돌려주라. 아무리 큰 다이아몬드라고 해도 돌려주라. 트래이드오프하지 말라. 


p.191

  규칙은 간단하다. 당신의 원칙을 첫 번째로 놓으라. 

  당신의 결정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한다. 당신의 본질과 관련되는 문제라면 트레이드오프는 하지 말라. 진실하게 살라. 옳은 일을 하라. 당신 자신을 존중하라. 적어도 출발점은 이래야 한다.... 몇 가지 원칙이 충돌할 때도 있다. 정직도 밀어낼 만큼 중요한 원칙(자녀에 대한 사랑)이 있을 수도 있다. 


p.192

  원칙을 첫 번째로 놓는다는 것은 당신이 지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시간이 지나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을 것 같은가에 관한 문제다. 이는 어쩐지 시간이 아까운 느낌이 들지만 친구의 병문안을 간다는 뜻이다. 얼른 마무리 짓고 싶은 볼일이 있지만, 무언가를 털어놓고 싶어 하는 친구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뜻이다. 줄 서서 기다리는 게 죽기보다 싫지만, 투표를 하러 간다는 뜻이다. 


p.195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추구하는 것.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한다. 


p.200

  되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 그는 가면을 썼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위선(원칙을 배신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비어봄은 위선도 미덕이라고 말한다. 조지 헬은 착한 척을 하고 착한 행동을 끝까지 해냄으로써 스스로를 변화시켰다. 그는 가면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결점을 없애는 방식으로 위선을 치료했다. 


p.201

  연습을 해도 완벽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대로만 한다면 분명히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이 되고 싶은 그 사람이 되도록 연습하라. 기호는 바꿀 수 있다. 전에는 매력적으로 보이던 것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전에는 끌리지 않던 것도 계속해서 시도하다 보면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선함이란 습득되는 기호다. 그리고 습관은 말 그대로 습관이다. 너그럽고, 정직하고, 덜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즐기게 되면, 프랭크 나이트의 말처럼 습관이 계쏙 더 강화된다. 


p.203

  우리는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열망하라.

되고 싶은 사람이 되도록 연습하라. 


p.205

  우리 안에는 착한 개와 못된 개가 있고, 둘은 늘 싸움을 하고 있다. 착한 개에게 밥을 주라. 자주 주라. 그러면 나쁜 개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시작할 것이다. 


p.213

 벨리칙은 자신이 선발한 선수들 중 극히 일부만이 본인의 시스템 안에서 무럭무럭 성장할 것임을 알고 있다. 또한 나중에 가서 좋은 결과를 낼 선수가 누구인지 미리 알아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안다. 그래서 그는 드래프트 당일 더 좋은 의사 결정을 내리는 데 온 힘을 집중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분모를 키운다. 즉 선발 총인원을 늘리는 것이다. 벨리칙은 본인의 무지를 기꺼이 인정한다. 그는 자신에게 로마 여행 가이드북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하나씩 알아 갈 것이다.


p.216

 우리는 정보가 없어서 결정을 미루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결정을 미루는 이유는 결정을 내리기 두려워서다. 만족할 만한 정보를 얻기까지 결정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결국 인생이 다 지나가 버렸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p.218

 가능하면 더 많은 경험을 해보려고 노력하라. 이것저것 시도해 보라. 당신한테 안 맞는 것은 그만두라. 당신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기회를 소중히 붙잡으라. 빠져나오는 데 큰 비용이 드는 일만 아니라면, 이게 어떤 걸까 미리 알아내려고 골몰하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모험을 해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라. 헤매더라도 이것저것 해 보는 편이, 하나하나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


p.220-221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그래서 이직했는데 실수였더라고." "결혼하자고 했는데 실수였어." "로스쿨에 들어갔는데 실수였어." 하지만 이 중에 진짜 실수는 없다. 실수란 안초비를 싫어하면서 안초비가 들어간 피자를 계속해서 주문하는 것이다. 실수란 파렴치한 인간인 것을 알면서도 그를 신뢰하는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내가 바랐던 것과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해서 그게 실수는 아니다. 그건 그냥 나의 바람과는 다른 결과가 나온 하나의 선택이다. 이런 것을 실수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를 가지고 자책해서는 안 된다. 당신 자신을 용서하라. 답이 없는 문제의 결과가 좋지 못했다고 해도 그게 내 실수는 아니다. 이런 것들은 오히려 모험이라고 불러야 한다. 모험에는 우여곡절이 따르고 기복이 있다.... 결과가 나쁘면 빨리 중단하라! 결과가 좋으면 파도를 즐기라. 어차피 별로 정확하지도 않을 텐데 어느 모험이 최선일지 미리 알아내려고 낑낑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 편이 낫다.


p.221

 투지와 끈기는 과대평가되어 있다.

 무언가가 어렵다거나 다소 불쾌하다는 이유로 즉각 그만두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맞다. 취향 중에는 습득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아무리 시각이 지나도 절대 유쾌해지지 않는다. 로스쿨이 싫고 변호사가 되기 싫다면 법조계의 다른 직업에 도전해 보라. 그래도 별 도움이 안 된다면 커리어를 완전히 바꾸어도 전혀 창피할 일이 아니다. 법조계가 싫어서 그 분야를 떠났다면 실수였다고 말하지 말라. 가진 정보가 그처럼 불충분했는데 어떻게 실수일 수 있는가? 인생이 생각과 다르게 펼쳐진다면, 나라는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 된다면, 변화하라.


p.222

 뱀파이어가 되어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망토를 벗어던지고 햇빛을 즐기라. 손실을 최소화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라.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그 일을 계속하고 있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살아 있으라. 변화하라. 벨리칙처럼 하라.


p.223

 로스쿨에 입학했는데 변호사가 되기 싫어졌다면, 당신이 그런 감정을 느끼는 최초의 사람은 아니다. 끈기와 투지가 미덕이라기에 그 길을 계속 고수한다면, 그 역시도 당신이 최초는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이미 변호사 생활을 꽤 오래 했다고 해도 직업을 바꿔도 된다.

 답이 없는 문제로 그처럼 괴로워하는 것은 후회라는 망령의 탓이 크다. 누군가와 결혼하지 않기로 했는데 나중에 그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다. 정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누군가와 결혼했는데 결과가 좋지 못할 수도 있다.... 더 많은 정보가 있어도 도움이 안 될 거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면서 말이다. 이는 그냥 결정을 내리기 싫어서 꾸물대는 것에 불과하다.


p.228

 운이 좋아서(어쩌면 운이 나쁜 것일 수도 있다) 계획한 대로 커리어를 쌓거나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안다. 아니면 적어도 스스로는 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열심히 공부해서 이름 있는 의대에 입학한다. 레지던트 과정을 착실히 마치고 남은 삶을 의사로서 살아간다. 이런 식으로 하나에만 초점을 맞춘 계획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그렇게 금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대단한 보상이 따르는 커리어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계획한 대로 커리어를 쌓거나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우리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로마에 오긴 왔는데, 정확히 뭘 하는 게 최선인지 전혀 모르겠다. 내가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 내 삶에 의미를 주는 것들은 내 선택을 통해 하나씩 드러난다. 그리고 그렇게 드러나는 과정은 내가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살아가며 무언가를 배우고, 그에 따라 내 행동을 조정해가는 일련의 과정과 동시에 진행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루하루 실제로 겪어보면서 알게 된다.


p.233

 내가 전형적인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의사가 되고 싶다면 보통은 여기서부터 거기에 도달하는 계획과 방법이 필요하다. 계획이 있는 것도 괜찮다. 어쩌면 '괜찮은' 것 훨씬 그 이상이다. 정작 어려운 부분은 상황이 어긋나거나 내가 세운 계획이 나에게 맞지 않음을 알게 됐을 때 그 계획을 언제 포기할지 아는 것이다.


p.234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절대로 네 꿈을 포기하지마! 버텨!"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꿈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꿈이 악몽으로 판명 난다면, 버리고 떠나야 한다.

 언제 꿈을 접고 유지할지 아는 것도 하나의 기술이다. 포커였다면 이 기술을 정량화할 수 있겠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당신의 장점과 한계)를 알고, 매번 최선을 다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는 오히려 규칙("계속 버텨" 혹은 "너무 힘들면 그만둬")이 있는 게 길을 잃게 만들 수 있다. 삶에서는 언제 버티고 언제 그만둘지를 아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p.241-242

 잘 산다는 것은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섞는 것이다. 이게 당연한데도 어쩐 일인지 우리는 여행 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세워 놓은 관광객은 합리적이라 생각하고, '아무것도 안 할' 시간을 끼워 넣은 관광객이나 한가로이 거닐며 도시를 한껏 느끼고 있는 사람은 '목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목적이 없는 편이, 어디를 목적으로 삼아야 할지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될 텐데 말이다.

 때로는 그냥 앉아서 기다리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켜보는 편이 낫다. 때로는 그저 기다리는 게 최선을 다하는 것일 수 있다. 빈둥거리며 기다리라는 게 아니다. 주의 깊게 기다려야 한다. 주의를 기울이는 게 중요하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것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속도를 늦추면 앞으로 다가올 것이 도착했을 때 알아보기가 더 쉬울 것이다.


p.246

 삶을 내비게이션이나 루빅큐브처럼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목표를 이루려면 여기에서 출발해 거기에 도달할 계획이 필요하다고, 이용 가능한 최선의 정보와 데이터에 기초한 계획과 알고리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답이 있는 문제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답이 없는 문제에는 다른 식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최선의 경로만 따지고 있을 게 아니라 애초에 어디로 갈 것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인생을 마치 최대한 앞을 내다보며 행복이나 웰빙을 극대화해야 하는 의사 결정 지점의 연속물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라. 앞서 말한 것처럼 인생을 하나의 긴 여정으로 생각하라.


p.249

 삶에는 과학이나 과학적 방법론이 미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종종 비이성적이거나 반과학적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과학의 영역에는 과학을 사용하고, 과학이 해당하지 않는 곳에는 과학을 사용하지 않는 게 훌륭한 과학의 핵심이다. 과학이 어디까지 해당되고 어디가 과학의 한계인지 아는 것은 미덕이다. 건강한 겸손의 신호다.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있다.


p.250

'여행 주의보'


확실성을 찾고 싶은 충동을 조심하라.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

분명한 것.


손안에 든 새라는 유혹.

한두 번쯤은 달걀을 몽땅 한 바구니에 넣으라.

도박을 해 보라.

사랑에 관해서라면. 데이트 신청을 하라.

불확실성을 환영하라.

모험을 걸어 보라.


안전한 가로등 밑을 떠나라.

편안한 모닥불 곁을 떠나라.

밤을 즐기라.

뱀파이어는 되지 말고.


동행을 찾으라.

친구를 만들라. 화해하라.

주인공? 출연진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하라.

빨리 가지 말고, 멀리 가라.


팔을 뻗으라. 손을 내밀라.

가끔은 제일 높은 가지에 달린 복숭아를 향해 손을 뻗으라.


뛰지 말라. 걸으라.

가끔은 기다리며 지켜보라.

스모키 스카치위스키를 마셔 보라. 별로인가? 한 번 더 마셔 보라. 

두 번 더 마셔 보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대가를 따지지 말라.


움츠리지 말라.

꽃피우라,

성장하라.

키우라

당신 안의 불길을. 

열망하라. 

높은 곳을 겨냥하라. 더 높으면 더 좋다.


p.252

 안전한 여행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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