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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숲 Oct 08. 2020

사키라는 친구


아케미 아주머니가 차려준 저녁상을 보고 좋아라 달려드는 이 친구의 이름은 사키. 내가 한국에 돌아간다고 하자 시가에서 버스로 5시간이나 걸리는 돗토리현에서 작별인사를 하러 와 준 친구였다. 사키가 시가로 와준 건 아케미 아주머니 집에 처음 갔을 때에 이어 두 번째였다. 심지어 다음날 일찍 돌아가야 해서 몇 시간 볼 수 없는데도 그녀는 얼굴을 보러 기꺼이 먼길을 와 주었다.  


보통이라면 이렇게 먼 거리를 단순히 인사를 하러 오지는 못할 것 같다. 농담으로 '세계일주를 한지 얼마 안돼서 이 정도는 멀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처음 인도에서 사키를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그녀는 바라나시의 화장터에 바로 던져도 될 것 같은 너덜너덜한 배낭 하나, 우쿨렐레를 하나를 들고 홀로 태국, 케냐, 아이슬란드 등의 워크캠프를 돌던 대학생이었다. 그렇게 1년간의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요가를 배우러 인도에 왔다는 그녀. 여리여리 해 보이는데 의외로 멘탈이 강했다.


그녀와 처음 만난 아그라에서, 사키는 바라나시로 떠나는 기차역을 잘못 알고 있다가 출발 직전에야 급하게 다른 역을 찾아가다가 불량배들을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의 이야기는 너무 길어 일단 패스) 또 바라나시에서는 함께 릭샤를 탔다가 돈을 더 달라고 협박하는 운전사를 만나 돈을 던지고 도망가야 하는 일도 있었다. (돈은 내가 던졌지만) 보통 이런 일들을 만나면 조금 침울해지기도 하는데 그녀는 늘 싱글싱글 해맑았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이 작고 여린 친구가 보기보다 훨씬 깊고 단단하구나 라는걸 알게 되었다.


"너 모내기 왜 이렇게 잘해?"라는 물음에 "에헴- 이래 봬도 원예과 학생이라고" 라던 그녀. 확실히 전공자는 달랐다.


사키와 이야기를 하며 인상 깊었던 대답을 몇 가지 추려봤다.


나: 1년이나 휴학을 하고 여행을 한 이유가 있어? 단순히 여행을 하고 싶어서는 아닐 것 같아서. (일본은 한국과 달리 휴학을 해도 학비를 그대로 내야 하고 취업에도 불리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휴학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 물어봤다)


사키: “나는 원예학을 공부하고 있어. JICA(일본 청년 해외협력단, 한국의 KOICA와 비슷한 기관)에 들어가 개발도상국 농민들의 농업을 도와주는 게 꿈이거든. 그런데 대학 3학년이 되어 연구실을 배정받기 전 어느 분야의 연구소에 들어가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싶더라고. 그래서 해외 농업지원과 관련된 경험을 쌓은 다음 분야를 정하자 생각하고 휴학계를 낸 뒤 열심히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세계일주 티켓을 끊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해 본거야.”


나: “그럼 여행한 곳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어디였어?”


사키: “음- 케냐였던 것 같아. 두 달 동안 케냐 산악지대의 커피 농가에서 살았는데, 욕조도 냉장고도 없는 곳에서 오후에는 커피콩을 고르고, 근처 커피 농가에 놀러 가기도 하면서 지냈어. 밤에는 하나뿐인 전구 아래 앉아 온 가족이 모두 모여 밥을 먹고, 한밤 중에 홈스테이 집 아주머니가 마약을 하는 아들을 쫓아가며 혼내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인간의 다양한 욕망과 감정에 부딪혀 아프기도 했지만, 자연에 치유받기도 하는, 꽤 풍요로운 생활이었던 것 같아.”


당시 그녀의 나이는 겨우 22살. 덜렁대기도 하는 모습에 어린 소녀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녀의 생각과 사용하는 단어의 깊이에 내심 놀랐다. 내가 본 사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녀의 케냐 생활을 상상해봤다. 그런 그녀라면 정이 깊어 기꺼이 멀리까지 보러 와준 것일 것이다.


고마워 사키, 우리 꼭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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