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덕 만들러 간 시마네에서의 마지막 밤. 화덕이 완성된 기념으로 미야자키 아저씨가 저녁을 쏘기로 했다. 장소는 아저씨의 단골 식당. 생맥주를 한 잔 시원~하게 마신 뒤 해물경단이 들어간 전골과 생선회를 먹으며 가게를 둘러봤다. 왠지 드라마 <심야식당>이 생각나는 곳이었다.
주인장 아저씨는 심야식당의 마스타- 에 비해 풍채는 좀 있었으나 넉살이 좋았고, 손님들은 대부분 동네 단골인 듯했다. 야마자키 아저씨가 ‘저 멀리 시가에서 화덕 만들기를 도와주러 온 친구들이요’이라 소개하니 가게 안 사람들이 모두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렇게 의외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이 식당 같은 데서 이야기를 잘 트는 것, 이것도 일본에 있으면서 본 신기한 풍경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왠지 쑥스러움이 많고 폐를 끼친다고 생각해 모르는 사람하고 이야기를 잘 안 할 것 같았는데, 내가 너무 선입견을 갖고 있었나?
손녀와 함께 카운터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던 이 동네 할머니는 “난 바-비-라고 불러줘” 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일본어로 할머니를 오바짱, 또는 오바상이라고 하는데, 이 할머니와 손녀는 그걸 응용해 ‘바-비-'라는 단어를 만든 것이었다. 웃는 모습만큼 센스도 귀여운 할머니셨다.
할머니와 손녀가 떠난 뒤 그 자리에 앉은 부부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이야기에 ‘이거 예전에 한국 갔을 때 사 온 거야!’ 라며 자신의 핸드폰에 붙인 장구모양의 스트랩을 보여줬다. 자신이 가본 나라의 사람을 자신의 동네에서 본 게 재밌는 듯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급기야 부인은 가방에서 작은 액세서리를 주면서 “다음에 시마네에 또 오면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라며 초대를 해줬다. 이름도 모르는 외국인을 바로 집으로 초대하는 이 호탕함! 덕분에 시마네에서의 기억이 더욱 좋게 남았다.
2박 3일의 화덕 만들기를 마치고 시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케미 아주머니와 친구들이 ‘모처럼 나왔는데 좀 더 구경하고 가자’며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이와미 은광과 이즈모 타이샤를 들렀다 가기로 했다. 이와미 광산은 워낙 큰 곳이라 당일치기로 등산은 무리였다. 대신 근처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을은 광산이 쇠퇴하며 함께 저물어간 역사를 가진 곳이었다. 이 마을에서 일본의 옛날 모습을 보기도 하고, 매년 10월 일본의 모든 신들이 모인다는(일본은 다신교의 나라다) 이즈모 타이샤(出雲大社)에서 다음 해의 연애운을 빌어보기도 했다. (효력은 없었지만) 이즈모 타이샤는 어릴 적 오컬트 만화에서 본 적이 있는 곳이라 '와~ 그 만화 속 공간에 와 있다니!' 하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외국 사람들이 겨울연가 촬영 장소에서 사진 찍는 게 이런 기분인걸까.
소바 연구회 모임답게 점심은 소바를 먹었다. 이즈모 소바가 일본 3대 소바 중 하나라기에 기대하고 먹었으나, 정말 솔직히! 맛은 신짱과 노부짱 아저씨가 만들어준 게 훨씬 더 맛있었다. 아주머니 아저씨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에이, 우리가 만든 게 더 맛있네 ~”
맞아요 맞아요. 역시, 사람 입맛은 크게 다르지 않군요.
친구들과의 졸업여행 같았던 시마네에서 돌아오던 길. 당시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아케미 아주머니도 이를 '동짱의 몸빼아줌마(아케미 아주머니의 별명) 집 졸업여행 사진’이라고 댓글을 달아주셨다. 역시, 사람 생각하는 건 비슷비슷하군요.
이제 책을 엮고 졸업앨범을 만들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