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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베리숲 Sep 27. 2020

히토미 - 유즈 - 에필로그

히토미의 어머니 케이코 씨가 만든 인도 사진전 현수막

히토미: 난 대구가 아니라 태국에서 공부했는데...?


히토미를 알게 된 건 준코 씨의 한국어 교실 학생이던 히토미의 어머니를 먼저 만나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사진전에 놀러 온 한국어 교실 학생분들이 한국어로 “케이코 씨의 딸은 대구에서 공부했어요.”라고 알려주신 것. 그래서 ‘아~ 따님도 한국어를 공부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케이코 아주머니의 집에 갔을 때 직접 만난 때였다.


“안녕! 대구에서 공부했다고 들었어.”라고 물었는데 한국어를 모르는 눈치였다. 이상하다...?

그리고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엥? 대구가 어디야? 난 태국에서 살다 왔는데?!”였다.

아~! 그랬구나~! 아하하하하 사와디카~!


어떻게 된 일인고 하니, 일본어에는 받침 발음이 없어 한국어의 받침 발음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어로 '태국'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일본 아주머니들의 발음이 태국 -> 태구 가 되었고, 나에게는 태구 -> 대구로 들린 것. 일본에서는 태국을 '타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태구에서 공부했어요'라고 말하니 문맥상 '아~ 대구~?'라고 받아들인 것이었다.


아무튼 대구 소동은 일단락 짓고, "태국에는 왜 간 거야?"라고 묻자 히토미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에 유학 왔던 태국 친구들과 친해지며 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졸업 후 방콕에 가 태국어를 배우며 일을 했다고 했다.


태국 전통 무용을 배우는 히토미와 친구들의 공연을 보러 간 날. 일본에는 이렇게 자신들의 취미생활을 공유하는 지역 축제가 많아서 신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 그래서 태국을 좋아하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뒤, 이번엔 내가 태국 치앙마이에 1년 정도 머물게 되었다. 일본에 머물렀던 것처럼 예정에 없던 장기 체류였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태국에서 만드는 천으로 한국의 공예품인 괴불 노리개를 만들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연락을 주고받은 히토미는 이를 보고 '나도 일본에서 만들고 싶다' 고 했고, 한국-태국-일본의 문화가 섞인 괴불 노리개를 만들어 판매하게 되었다.


히토미의 태국 생활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내가 태국에 가고, 또 그녀와 함께 이런 것을 만든다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사람일은 참 알 수 없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에서 제작하는 천으로 만든 괴불 노리개. 히토미가 일본에서 만드는 노리개는 시가산 리넨으로 끈을 만든다. my little forest는 피베리숲의 이전 이름이다.


유즈가 한글을 배우고 싶다기에 공책에 써준 예문들. <인생 뭐 별거 있나> <그까이거 대충> 지금 보니...왜 이런걸 써줬었지?

유즈


아케미 아주머니의 집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이 이야기들을 이렇게 정리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렸다. 빨리 쓰고 싶었지만 '시간을 들이면 좀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욕심에, 생업 핑계에 차일피일 미뤄졌다.


수없이 글을 쓰고 지우는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히토미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있고, 하늘로 떠난 친구들도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초등학생이던 요시자와 아주머니네 귀여운 손녀 유즈는 어느덧 대학생이 되었다. 얼마 전 유즈와 통화를 하다가 한글 이야기를 했다.


"너 예전에 나한테 한글 배웠던 거 기억나니? 우리 집으로 한국어로 편지 써서 보낸 것도 있어~"

"응, 근데 그 후로 공부 안 해서 까먹었어 헤헤. 요즘 내 나이 또래 애들 중에도 한국어 아는 애들 많아. 트와이스, 블랙핑크, BTS 같은 한국 가수들이 인기 많거든."


아케미 아주머니와 마을분들이 한국에 오셨을 때 한살림 요리교실의 도움을 얻어 만든 일일 요리교실


아케미 아주머니의 공방에 처음 인도 사진전을 하러 갔을 때가 생각났다. 준코 씨가 일일 한국어 교실 선생님이 되어달라 부탁해서 '여기가 한국으로 치면 부산 같은 곳이라고 했지...?' 하는 생각에 부산 사투리를 가르쳤다. (부산 사람도 아니면서)


그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아니, 왜 이렇게 정이 많으신 거죠?'라고 묻고 싶을 만큼 너무나 잘해주셨다. 그때의 기억이 좋아 마을에 머물렀고, 잘 돌봐주신 덕에 기대보다 훨씬 더 많은, 좋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그때의 그 좋았던 감정들을 전달하고 싶어 책으로 쓰려했는데, '멋진 책'을 만들고 싶다' 고 욕심을 부리다가 상당히 늦어졌다.


이번엔 욕심을 버리고 되도록 솔직한 감상들로 이야기를 채웠다. 3개월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경험한 걸 가지고 '일본은 이렇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건 아니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과 경험한 것들, 그 속에서 느낀것들을 적어봤다.


아- 이 사람은 이랬구나-

난 아니었지만, 이럴 수도 있겠구나-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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