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이다, 희망적이다

by 노니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란 사람에게 자주 실망한다. 아무래도 기대가 컸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해.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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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돌이켜 보건대, 내 서른여섯의 일생은 증명받기 위한 노오력에 지나지 않는구나 생각해버렸다. 아, 생각해버렸다.


다행히도 그 사이사이를 무언가가 채워줬기에 적당히 풍성하다 느끼며 살 수 있었다.


앞의 문장에 '무언가'를 구체적인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으나 표현하기가 어려워 결국 '무언가'라고 썼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알고 있는데 표현하기가 어려운 게 아니라 그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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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열외가 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아주 괴로운데, 그 감정이 꽤 생생해서 매일이 새로웠다.

이렇게 어려운 중에도 먹고사는 문제에 직면한 적이 없다니, 나의 지나친 낙관인 걸까 아니면, 타인들의 지나친 염려일까. 물론 한 번씩 조급 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은 꽤나 황홀했다. 나 지금 죽게 괴롭다고 토로하는 건, 죽게 괴로워서 그런 게 맞지만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졌다는 관점에서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솔직해지는 것도 중독이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사건이, 상황이, 사람이 조금씩 조금씩 달라졌다.


모두를 미워했던 건 힘들었다. 미움은 강렬한 감정이라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되었으니. 미워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나았겠지만, 이미 지나버린 시간이니 할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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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을 보낸 뒤, 혼자 가던 길에서 빠져나와 다시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히며 걷게 되었다. 아무도 그러라 한 적 없는데, 조금이나마 달라졌던 나의 방향이 너무 익숙하게 원상복구 되는 게 느껴진다. 다시금 부지런히 발버둥 친다. 증명받으려는 내가. 증명을 사랑이라고 바꿔 말하면 애정 결핍이 되고, 증명을 인정이라고 바꿔 말하면 인정 욕구가 되고 그래서 나는 늘 내가 부끄러워진다. 애정 결핍에 시달리고 인정 욕구에 매여있어서. 그런건 미성숙한거라고 느껴지고, 미성숙하다는 건 어쩐지 부끄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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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희망적인 것은,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 편치 않다. 조금이나마 틀었던 방향이 더 마음에 드는가 보다. 방향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대단한 것들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내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수해야 하는 처절함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해왔다. 낙관은 사실 나의 강력한 성향이긴하다. 성향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여하튼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그렇게 적당히 사는 게 난데. 무거우면 슬그머니 피하고, 눈치껏 눈 앞의 상대의 말을 거들고, 모면하면 또다시 무관심해지는 게 바로 난데. 불편하다. 사실은 편하지만, 편한 내가 불편하다. 희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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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받으려는 삶은 정말이지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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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이 이전보다는 훨씬 더 선명하다. 희망적이다.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

(하, 또 애매한 표현으로 마무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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