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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Sep 20. 2020

1. 시댁과의 갈등

미쳤네!

시댁에 가면 익산 엄마와 익산 아빠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평화야 잘 지냈지? 사돈어른들은 잘 지내시고?"

여기까지는 너무 좋다. 그런데 그 이후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다.

"밥을 잘 먹고 다녀? 평화야 음식 솜씨는 많이 늘었니?"

익산 엄마의 생신으로 모인 그 날, 또 어김없이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보셨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똑같아요. 요리 책 봐도 어렵네요."

나는 전업주부가 아닌데 왜 매번 내 요리 실력을 확인받아야 하는지 씁쓸했다. 불편한 이야기가 속히 멈춰지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주문한 고기는 오질 않았고 본격적으로 익산 아빠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곧 어버이날인데 기대해도 되지? 그리고 내년에 아빠 환갑잔치 준비는 어떻게 돼가고 있어?"

즐거운 자리인 만큼 익산 아빠의 심기가 상하지 않도록 억지웃음을 지으며 비위를 맞췄다. 어느덧 고기는 왔고 식사가 마무리될 무렵 문제의 사건이 일어났다.

"저번 명절에는 어쩔 수 없이 넘어갔다만 다음 명절에는 강아지 절대 집안에 못 들인다. 밖에다가 둬라."

익산 엄마도 옆에서 거들며 이야기하셨다.

"그래. 강아지는 집 밖에 있어야지."

나는 당황스러워 말문이 막혔다.

물론 개를 마당에 묶어서 키우는 방식에 익숙한 시부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시골분들이라 반려견 문화에 대해 잘 모르시고 진돗개를 마당에서 묶어서 키우고 계시기 때문에 더더욱 용납이 안 되셨을 것이다.

오빠는 설득을 시도했다.

"라떼를 입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지만 시부모님은 단호하셨고 언성이 높아져갔다.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굳은 표정으로 한 마디 했다.

"라떼를 밖에서 재울 수 없어요. 그럼 저희도 밖에서 자야 해요."

나를 건드는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라떼를 건드는 건 견딜 수 없었다.

그러자 시아버님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미쳤네. 미쳤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고 분노를 삭이기 위해 화장실을 갔다.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 속에는 슬픈 감정보다 분노의 감정이 더 크게 담겨 있었다. 다시 돌아오자 익산 엄마는 좋은 날 분위기를 망쳐서 미안하다며 사과하셨다. 익산 아빠도 실언을 해서 미안하다며 우물쭈물 이야기하셨다.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상황을 보아하니 오빠가 한 소리를 한 듯했다. 짐을 챙긴 뒤 오빠는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 뒤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다음 날 익산 아빠에게 전화가 왔고 울리는 휴대폰을 쳐다보며 고민했다. 내심 사과를 기대하며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내가 말하자 익산 아빠는 대답했다.

"나다. 어제 내려오느라 욕봤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렇게 어물쩍 넘어가시려는 건가?'

나는 허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상처 받은 내가 너무 안쓰러웠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연기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내 마음의 문은 닫혔고 그 이후 시댁으로 연락하지 않았다.


그 상태로 두 달이 흘렀고 평일 저녁 갑자기 오빠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을 보니 엄마라고 적혀있었다. 갑자기 내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빠는 TV를 끈 뒤 전화를 받았고 나는 숨죽여 기다렸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오빠에게 물었다.

"뭐라고 하셔?"

오빠는 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이번 주말에 올라오겠다고 하시는데 평화랑 상의하고 나서 이야기드린다고 했어. 어떻게 하고 싶어?"

오빠에게 내 생각을 전달했다.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아. 더 상처 받을까 봐 너무 무서워."

오빠는 내 마음을 이해해주었고 다독여주었다.

"내가 알아서 얘기할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오빠는 익산 엄마에게 전화를 건 뒤 이야기했다.

"이번 주에는 나랑만 봐요."

그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익산 엄마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뭐라고? 평화 바꿔봐. 어디서 감히. 시댁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얼른 바꿔!"

오빠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못 바꿔요. 소리 지르는데 어떻게 바꿔요. 이번 주에는 저만 만나요."

익산 엄마는 언성이 더 높아졌고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 왜 이렇게 변했니? 우리 아들 맞니? 결혼하고 나서 달라졌어. 너무 달라졌어. 이번 주에 기차 타고 올라갈 거야. 안 나오면 집에 찾아간다고 해."

익산 엄마의 통보 후에 통화가 끝겼다.

오빠는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이야기했다.

"걱정 마. 집에 오시는 일은 없을 거야."

나는 말했다.

"그래도 오시면 어쩌지?"

오빠는 단호하게 얘기했다.

"절대 집에 오시는 일 없을 거야. 만약 오셔도 경비실에 얘기해서 현관문 안 열리게 할 거야. 안심해도 좋아."


내 마음속 공포와 불안이 따뜻하고 단단한 오빠의 말로 잠재워졌다.


경기권에서 갑자기 코로나 감염자 수가 급증했고 오빠는 상황을 설명하며 다음에 오시기를 권유드렸다.

시간이 지나자 익산 엄마의 분노는 많이 수그러들었고 익산 아빠 몰래 오빠와 연락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도 소통하고 싶어 하셨지만 재촉하지 않고 기다림을 선택해주셨다.


오빠는 나와 어머님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정말 열심히 했다. 오빠를 통해 어머님의 마음을 계속 전달받았지만 내 마음은 하루아침에 열리지 않았다. 가식적인 마음으로 다가갈 수도 있었겠지만 금세 들통날 연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나도 용기가 생겼고 익산 엄마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허심탄회하게 서로 속이야기를 하며 익산 엄마와 나는 관계가 한 발짝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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