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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화 Aug 01. 2020

괜찮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 물건을 정리하지 않고 아무 위치에다가 올려두어 돈, 물건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 횟수가 너무 많아서 어느 순간 그게 대수롭지 않았다. 물건은 자주 잃어버리고 덤벙거리는 나이지만 엄마의 잔소리와 비난은 아직 까지 잊히지 않는다. 나는 머리카락 조차 인정받지 못했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나는 머리카락에게 소리 지르고 싶은 적이 많았다.

'너는 왜 그렇게 많이 빠져가지고 나를 힘들게 하니?'


진격의 아이

  

내 어릴 적 모습을 회상하면 참 조심성이 없었다. 바야흐로 초등학교 6학년 운동회날, 나는 엄마가 학교 출입구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너무 반가워서 주변을 살피지 않고 엄마에게 돌진했다. 그런데 쇠파이프로 된 깃발이 무섭게 달려와 내 코를 내리쳤다. 너무 얼얼했고 쌍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아픈 것보다 흘러내리는 피에 놀래서 눈물이 났고, 엄마는 나를 보고 달려왔다.

다행히 엑스레이 검사 결과, 코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내 코는 그 날 이후 매부리코가 되었다.


그런 일은 부지기수였다. 한 번은 멋 부리는 시절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시내에 있는 캔모아는 친구들과 자주 가는 장소 중 하나였다.  거기서 놀고 있는데 아빠가 근처라며 용돈을 주겠다고 연락이 왔고 나는 반가운 마음에 뛰어 나가다가 자동차 바퀴에 발이 깔렸다.

운전자분은 놀래서 내리셨다.

"얘야 괜찮니?"

나는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너무 놀라 아픔을 잘 못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마자 운전자분은 연락처도 주지 않고 유유히 가셨다. 물론 지금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뺑소니로 볼 수 도 있다. 그 당시, 그 사실을 알고 부모님은 소리쳤다.

"제정신이야? 연락처라도 받았어야지 왜 바보 같이 괜찮다고 했어?"

나는 너무 서러웠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니었는데...

'많이 아프고 놀랬지?'

그 한 마디가 나에게는 절실히 필요했다.


나는 조심성이 많이 부족했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야단치고 비난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그럴수록 나는 작아졌고 위축되었다.  

'내가 많이 잘못했구나'

부모님을 만족시켜드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가 나를 자주 휘감았다.

특히 통제 욕구가 강한 엄마를 맞추기가 어릴 때는 참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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