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덕질 연대기 - 기타 카테고리 편
나의 수많은 덕질 대상들을 카테고리화해 정리했던 '나의 덕질 연대기'도 이제 마지막을 바라보고 있다. 그간 아이돌, 배우, 드라마 등등 다양한 분야의 덕질 역사(?)를 카테고리화해 정리해 보았으나,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들어가기 애매한 덕질 대상들도 있었다. 이 글에서는 그런 덕질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서 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열심히 덕질했지만 지금 기억에서 잠깐 빠져 있어서 여기에 미처 담지 못한 덕질 대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또 나중에 기회 되면 하는 것으로...ㅎㅎ
나는 씨름 관련 예능 프로그램과 씨름선수를 덕질한 경험이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뭘 덕질해? 싶은 분들도 있을 것이다. '씨름'은 우리나라 전통 스포츠이고 아주 오래전(이만기, 강호동 시절?)에는 국민적인 인기를 누린 스포츠였으나, 최근 몇 년 동안은 철저히 비인기 스포츠로 분류되었다. 요즘 유명한 씨름 선수가 누구지? 하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씨름 중에서도 낮은 체급(씨름 체급은 높은 체급부터 백두-한라-금강-태백 순이다)은 더더욱 인기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KBS 예능 PD가 엄청난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이름하야 '씨름의 희열'.
저체급(태백, 금강) 선수들에 초점을 맞춰서, 이들 중에 최강자를 가려보는 서바이벌 예능이었다. 다만 프로그램의 내용은 여느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달랐다. 질 낮은 기싸움이나 같잖은 도발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선수 한 명 한 명의 삶, 그리고 씨름에 대한 열정, 씨름 기술 그 자체의 매력에 집중한 편집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을 보면서 울고 웃은 나는 어느새 씨름이라는 스포츠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프로그램을 웨이브로 보고 또 보고, 비하인드 영상도 다 찾아서 맨날 돌려봤다. 씨름 기술도 하나둘씩 배우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나는 한 선수에게 빠져서 꽤나 열심히 응원하며 프로그램을 끝까지 시청했는데, 씨름 황제라 불리는 A선수였다. A선수는 그 선수만 주로 쓰는 독특하고 멋진 기술이 있었으며, 평소에는 능글능글 허허실실 캐릭터지만 경기에만 들어가면 현란한 기술로 상대를 모래판에 눕게 하곤 했다. 내가 응원했던 A선수는 결국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1대 태극장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호호). 코로나19 확산으로 큰 경기장에서 관객 없이 경기해야 했던 게 두고두고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씨름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 덕분에 씨름의 인기가 전보다는 좀 생긴 걸로 알고 있다. 선수들도 더 이상 비어있는 관중 앞에서 경기하지 않고, 나름 많은 관중들 앞에서 힘을 받아 경기하고 있는 걸로 들었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지금은 주요 경기(추석/설날/단오/천하장사) 할 때만 중계방송을 찾아보는 편이다. 물론 본선에 A선수가 있으면 A선수를 응원하며 본다ㅎ
내 10대와 20대는 해리포터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그랬을 것 같긴 하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함께 자라났고, 다 자라나고 나서는 해리포터 영화를 매년 기다리며 살았다. 특히 해리포터 책에 대한 어린 나의 열정은 거의 광기에 가까웠다(고 회상해 본다). 1권(마법사의 돌)부터 3권(아즈카반의 죄수)까지는 너무 여러 번 읽어서, 거의 모든 내용을 외웠었다. 마니아가 많았던 책답게 해리포터 시리즈 책에 나오는 내용으로 만든 퀴즈북도 있었는데, 1~3권 내용에 대해서는 매우 어려운 질문에도 척척 답을 할 만큼 전문가(?)였다. 4~5권이 나올 때쯤 중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이제 원서가 번역되어 나오는 기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덕후가 되어 있었다. 원서를 사서 영어사전을 끼고 번역해 가며 읽었다. 세상에,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열정이다. 영어 원서를 읽다니! 하지만 그 시기의 나(영어 지문을 매일 독해했던..)에게 영어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해리포터에 대한 내 뜨거운 사랑은 나이가 들고 시리즈가 완결되며 조금은 줄어들었다(관련해서 브런치에 다른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해리포터 전체 시리즈 책을 집에 고이 모셔두고 있으며, 해리포터 관련 굿즈가 나오면 두근두근하며 살까 말까 고민하는 덕후이다. 언젠가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간다면 버터맥주를 꼭 마셔보고 싶다. 가서 온갖 굿즈를 사고 재산 탕진해야지.
일본 예능과 노래에 한참 빠져있을 때쯤,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도 봤었다. 그중에서 제일 열심히 봤던 애니는 나루토와 최유기였다. 나루토는 워낙 주변에서 많이 보니까 따라 본 경향이 있었고, 최유기는... 그렇다, 최유기는 순전히 모 캐릭터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봤다. 항상 웃고 있지만 알고 보면 슬픔을 간직하고 있는(ㅎㅎ) 캐릭터의 일본 성우였던 B성우는 목소리에도 취향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남자로는 꽤 하이톤의 미성이 내 취향이었던 것이다! 어찌나 목소리가 좋던지, 그 어린 나이에도 힘들게 힘들게 캐릭터의 성우 이름을 찾아냈고 그 성우의 이름으로 이것저것 검색해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니 B성우는 일본 성우계에서도 레전드로 불리는 인기 성우였다(대중적인 나의 취향..). 그 이후에도 B성우가 나오는 애니메이션들 몇 개를 더 보면서 덕질했지만, 역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목소리는 최유기에서의 목소리였다. 사실 지금도 가끔 최유기 애니메이션 영상을 찾아서 듣곤 한다. 성우 덕질의 세계도 꽤 어마어마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나는 본격적인 덕질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꾸준히 좋아하고 검색해 보고 관련 영상을 찾아보는 정도였다.
아, B성우 관련해서 에피소드가 하나 있긴 했다. 오픈 때부터 열심히 하고 있는 게임, 쿠키런 킹덤에 대한 이야기다. 쿠키런 킹덤이 일본에서도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부터, B성우가 목소리를 맡는 캐릭터가 생기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너무 인기 성우라 이런 작은(?) 게임에는 참여 안 할 거야..라고 미리 기대를 버리고 있었는데, 대규모 업데이트가 될 때 꽤나 주요한 인물로 B성우가 참여했다! 그 소식을 듣고 어찌나 설레던지, 업데이트 날 퇴근하자마자 게임언어를 일본어로 바꾸고 미친 듯이 플레이해서 해당 쿠키를 획득했다. 모든 스토리를 일본어로 주파한 것은 당연한 일. 덕질(성우)과 취미(게임)가 만나는 순간은 늘 이렇게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