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같이, 성과는 누구에게?
1n년 간의 공공기관 생활을 하면서(또는 회사생활을 하면서) 정말 싫어진 단어들이 몇 개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싫어할 '야근', '잔업' 같은 단어들도 있겠지만.. 그중 제일을 꼽으라는 말을 듣는다면, 나는 '협업'이라 답하겠다.
'협업'. 단어만 보면 참 좋은 뜻이다. '화합할 협'에 '업 업'자를 쓰며, '많은 노동자들이 협력하여 계획적으로 노동하는 일'이란다. '협동'과 같이 뭔가 같이 잘해나가는 이미지로, 단어만 봐서는 도통 싫어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 '협업'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회사에서는 요상하게 다른 의미로 쓰인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저희 신사업개발팀에서는 내년까지 저희 팀에서 관리하고 있는 ㅇㅇㅇ시스템을 IT팀과의 협업을 통해 고도화할 예정입니다." 또는 "저희 인사팀에서는 경영지원팀과의 협업을 통해 사무실 전체의 파티션을 교체하여 직원 만족도를 제고하였습니다."
사진: Unsplash의Cytonn Photography
위의 두 발언은 사장 등 윗사람에게 보고할 때 이루어진다. 예시에서 신사업개발팀이나 인사팀은 자신의 팀이 이룩한 성과를 윗사람에게 뽐내거나 앞으로 할 일을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각각 ㅇㅇㅇ시스템의 고도화, 파티션 교체를 통한 직원 만족도 제고라는 성과나 향후의 뽀대 나는 계획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발언들 안에서 IT팀이나 경영지원팀은 왜 등장하는 것일까? 나는 사실상 위의 두 업무를 하는 팀은 IT팀과 경영지원팀일 것이라 생각한다.
가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어떤 일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팀과 실행추진하는 팀이 분리될 때 말이다. 이 경우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즉 기획하는 팀은 진취적이고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내밀 수 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추진해야 하는 팀은 일을 진행할 때의 문제점 등을 고려해 다소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 두 팀(기획하는 팀-실행하는 팀)이 '협업'이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로 묶이게 될 때, 문제가 발생한다. 기획하는 팀은 업무를 기획하고 이끌어가는 팀이니, 관련된 보고나 발표를 주로 맡아하게 된다. 그러니 뭔가 재미있는 기획안을 보고할 때나 좋은 성과가 났을 때 자랑하는 것은 기획하는 팀의 몫이 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지난한 일의 추진과정은 실행하는 팀이 도맡아 하게 된다. 일을 추진하다 잘못되었을 때 뒷감당도 실행하는 팀이 덮어쓰기 일쑤이다.
결국 성과는 '기획하는 팀이', 실무 및 리스크 관리는 '실행하는 팀'이 가져가는 기괴한 모델이 완성된다. 내가 지금까지 봐 왔던 '협업'이라는 일은 대부분 그러했다. 결국 주관팀이 성과를 가져가는데, 다른 팀들이 허덕이며 도와주는 느낌.
그래서 나는 차라리, '협업'보다는 '협조'라든지 '지원'과 같은 표현을 좋아한다. 아예 처음부터 이 업무는 어떤 팀의 업무이고(예시에 따르면 신사업개발팀과 인사팀의 업무이고), 다른 팀들은 본인들 팀의 업무를 함으로써 그 팀을 '어떤 업무로 도와주는' 것임을 명시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그 '도와주는' 일도 엄연히 업무의 하나로 인정받을 수 있으니 예시의 IT팀과 경영지원팀도 별도로 업무 보고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이 한다'는 의미의 '협업'이라는 말을 쓰는 순간, 마법처럼 주관팀을 제외한 다른 팀들은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 그럴 바엔 차라리 협업을 안 하고 욕먹고 말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닐 테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고, 그러다 보니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걸 나날이 깨닫는다. 예시의 경영지원팀이나 IT팀이 '협업'을 하든 '협조'를 하든 '지원'을 하든, 하는 일은 똑같을 것이다. 다만 그 일을 어떻게 포장하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저희가 이 일을 해냈습니다만, IT팀도 같이 했어요'인 것과 '저희가 이 일을 해냈습니다만, 이러이러한 부분은 IT팀이 협조해서 진행했습니다'는 분명 다르다. 명확한 업무 구분과 성과 구분이 일하는 사람 한 명 한 명을 보다 의욕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