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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Sep 15. 2022

공공기관의 예산절감 = 이걸로도 되네?

이제야 왜 연말마다 보도블록을 뒤엎는지 알게 되었다


*실제 상황에서 약간 각색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공공기관에 다니다 보면, 연초에 세웠던 예산에 대해 연중 얼마나 썼는지, 앞으로 얼마를 쓸 거고 그러면 얼마가 남을 것인지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보통 분기별 또는 반기별로 작성하는 이 보고서는 요식행위 중의 요식행위이다. 모든 부서의 모든 예산 담당자가 극히 일부의 예산을 제외하고 모든 예산을 '전부 다 쓸 것입니다'라고 적어서 내기 때문이다. 


  왜일까? 왜 사람들은 솔직하게 얼마 썼고 얼마 정도는 남을 것 같습니다라고 적어서 내지 않을까? 답은 뻔하다. 솔직하게 예산을 절감해서 적어 내는 사람만 손해인 싸움이기 때문이다. 예산 확보는 공공기관의 각 팀에서 가장 주요한 일 중 하나다. 팀의 예산을 얼마 확보하냐에 따라 일 년 내내 굶주리며 살아야 할 수도 있고(돈이 없어서 책자를 더 못 찍으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또는 일 년 동안 풍족하게 신규사업도 시도해보며 살 수도 있다. 이렇게 중요한 예산은 어떻게 세워지냐 하면, 대부분 전년도 집행금액을 보고 만들어진다.


Photo by Alexander Mils on Unsplash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전년도 집행금액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전년도에 100만 원을 쓴 팀의 예산은 기본 100만 원에서 시작한다. 원칙적으로 하자면 100만 원을 잘 썼는지 검토하고 0부터 다시 예산계획을 짜는 것이 맞겠지만.. 공공기관은 원칙대로 돌아가지만은 않는다. 100만 원 중 50만 원을 인쇄비에 쓰고 50만 원은 행사비로 썼다면, 그에 기반해 차년도에 인쇄를 두 배 하겠다고 계획할 경우 인쇄비=50만 원 X2=100만 원, 행사비 50만 원 해서 150만 원을 예산으로 올릴 수 있다. 예산팀도 계획안과 예산안을 비교하며 평가하지 애초에 50만 원을 쓴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크게 평가하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인쇄비에 들어갈 작업 중 일부를 능력이 되어 직접 해서, 또는 발품을 팔아 더 싼 곳을 찾아서, 50만 원 예산 중 25만 원만 썼다고 해보자. 그러면 우리 팀의 집행액은 예상치 100만 원에서 25만 원 줄어들어 75만 원이 된다. 100만 원으로 계획한 일을 75만 원으로 해냈으니 이는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회사에 따라 예산을 절감했다고 칭찬 또는 소액의 상금을 주는 곳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년 예산은 어떻게 될까? '어, 너 인쇄를 25만 원에 해냈네? 그게 되네? 그럼 내년 예산 25만 원.' 결국 우리 팀의 내년 예산은 75만 원에서 시작하게 된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더 열심히 일해서(내 노동력을 더 투입해서), 또는 내가 더 열심히 아껴서(여기에도 추가 노동력이 투입된다) 예산을 절감하면, 내년의 나는 더 가난해진다. 올해 어떤 행사가 코로나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되어 행사비 예산이 대폭 절감되었다면, 내년엔 절감된 예산으로 갑자기 오프라인 행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지난 n년간 공공기관에 다니며 느낀 예산 절감에 대한 내 솔직한 소감은 이렇다. 그러니 결국 예산이 100만 원이면 100만 원을 다 어떻게든 쓰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이런, 업무1,2를 처리하는 데 예산을 절감해서 80만 원만 써버렸잖아! 그러면 업무3을 만들어서 나머지 20만 원을 써야 해!' 언뜻 보면 말도 안 되어 보이지만 공공기관의 예산 집행액(집행률)에 대한 분위기를 안다면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어렸을 때는 연말마다 거리를 지나다 보도블록을 갈아엎고 있는 지자체 작업인력들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멀쩡한 보도블록을 왜 다 갈아엎는 거야? 돈 아깝게. 저 예산을 아껴서 다른 데 쓰지.' 순진했던 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공공기관에서 몇 년 일하고 난 후의 나는 이제 연말마다 갈아엎어지고 있는 보도블록을 보면 한편으로 공감이 간다. 아.. 그들도 예산을 80만 원만 써서 100만 원 쓰려고 저걸 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업무방식이 옳다거나 적절하다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의(또는 공무원 사회의) 업무 방식이 완전히 개혁되기 전까지는 이런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글을 쓰고 싶었다. 부디 언젠가는 공공기관에 다니면서도 예산을 절감하는 데 진심으로 열심일 수 있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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