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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Dec 16. 2022

공공기관의 직원평가 시스템에 화내면 안 된다

화내 봤자 바뀌는 게 없으니 나만 손해다


연말, 평가받기 위해 애쓰는 계절


  연말, 바야흐로 평가의 계절이다. 대부분의 공공기관이 연말이 되면 부서평가와 개인평가를 진행할 것이다. 여기에서 개인평가라 함은, 부서장이 하는 부서원들에 대한 평가이다. (반대도 이루어지는 좋은 회사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있긴 있겠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님) 부서원들은 부서장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 자기가 일 년 동안 어떤 계획을 세웠었고 그 계획에 따라 어떤 일들을 해냈는지 정리해서 제출하고, 원칙적으로 부서장은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각 팀원에 대한 평가를 진행한다. 이 평가 결과는 개인의 인사고과에도 영향을 미치고 소위 월급(성과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부서원에 대한 평가를 진행하기 위해 그 근거자료로 요구되는 것은 참 많다. 일단 부서원들은 연초에 자신의 업무에서 이만큼을 하겠다는 계획을 써낸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그 계획 대비 얼마나 달성했고 미진한 점은 무엇이었으며 초과 달성한 것은 또 무엇이 있었고 앞으로는 무엇을 더 열심히 해나갈 것인지를 작성해야 한다. 대부분의 부서장이 각 부서원이 무슨 일을 얼마나 잘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 모든 자료는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매우 꼼꼼하게 진행된다. 어쨌든 그해 처음이자 마지막인 업무 성과에 대한 어필 타임이기 때문이다. 이걸 쓰느라 야근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 그 정도로 모두 이 자료 작성에 대해 민감하다.


Photo by Mailchimp on Unsplash



하지만 평가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이루어지지


  문제는, 이렇게 열심히 작성된 평가를 위한 자료가 실제 평가에는 정말.. 손톱만큼도 활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거의 100%에 가깝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업무분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공공기관에서 업무분장은 멋있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글 참조^^) 그러니 개인별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개인별 업무 성과가 깔끔하게 나눠질 리 만무하다. A가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을 B가 하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고, A가 하긴 했는데 사실상 B의 지분이 더 많은 업무도 있고.. 뭐 여하튼 결과적으로는 '개인별' 업무 평가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물론 더 큰 문제는, 부서장이 각 부서원에 대한 평가를 '개인별 업무성과'에 대한 평가로 할 생각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부서장 분들은 각 직원에 대한 그간의 feeling을 담아서 평가를 진행한다. '음.. A차장은 회식에도 잘 참여하고 내가 좀 무리한 일을 시켜도 하는 척이라도 하지. 근데 B사원은 안 되는 일은 안 된다고 정 없게 딱 잘라버린단 말이야.'와 같은 의식의 흐름을 거치는 것이다. 실제로 a사업을 1년 동안 A차장이 어떻게 이끌어 왔는지, B사원이 b사업에서 전년 대비 훨씬 훌륭한 실적을 거두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느낌적인 느낌에 따른 평가가 이루어지고, 부서원들은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는 평가 결과만을 띡 전달받는다... 이것이 흔한 공공기관의 직원평가 시스템이다. 



그래도 성과 정리는 해 두는 것이 좋아


  아무리 훌륭한 공공기관이라도(어쩌면 아무리 훌륭한 회사도) 직원 모두가 만족하는 직원평가 시스템을 가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직원평가 시스템이 처음부터 가진 한계점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공공기관의 직원평가 시스템은.. 정말 정말 이상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상한 것에 문제 제기를 해봤자 먹히지 않는다. 그러니 화를 내 봤자 부서원 개인만 열받고 끝날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서장이 평가할 때 보지도 않을 그 평가자료(1년간의 성과보고서)는 성실하게 작성하는 것을 추천한다. 부서장을 위한 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를 위해서이다. 결국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시간은 지나가고,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고.. 흐르다 보면 나중에는 본인이 n년 전에 무엇을 했는지도 잊어버리는 순간이 온다. 그럴 때 나 스스로 개인의 연도별 성과를 돌아보기 위해서라도, 그때그때 내가 했던 일을 꼼꼼히 기록해두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실제로 나도 n년 전에 내가 '20xx년에는 뭘 했더라?' 싶어서 그 해에 썼던 성과보고서를 뒤적여본 경험이 있다. 


  나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실무 스킬을 알려주는 사이트인 '퍼블리'를 구독하고 있는데, 연말인 요즈음 퍼블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콘텐츠는 '2022년도 회고 템플릿'이다. 지난 2022년을 어떻게 보내왔는지 적절한 템플릿으로 회고해 두어야 커리어상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비록 커리어 같은 걸 쌓기 어려운 공공기관이지만, 그래도 매년 내가 했던 일을 '회고'하는 것은 어찌 되었든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퍼블리 회고 템플릿을 활용하진 않겠지만, 대신 올해도 직원평가를 위한 성과보고서를 열심히 작성할 예정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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