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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Sep 23. 2022

인사이동이 장난이야? 네 장난입니다.

차라리 장난이었으면 좋겠어, 공공기관의 인사이동


  많은 공공기관이 연말에 정기 인사이동을 한다. 공공기관의 정기인사는 사기업의 인사와는 약간 다르다. '순환근무'라는 엄청난 원칙에 맞추어 몇 년 이상 근무한 사람들은 다른 팀으로 이유 없이(??) 이동하는 대량 인사의 모양새를 보이기 때문이다. 순환근무에 대해서는 이전에 다른 글(공공기관에서 커리어가 뭐죠? 먹는 건가요?)에서 다룬 적이 있다. 인사팀에서 근무하던 사원이 갑자기 다른 본부 사업팀으로 이동하는 식이다.


  그래서, 우리 기관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인사이동 시즌이 되면(보통 인사시행일 한 달 전부터를 시즌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승진 및 원하는 팀으로 가고 싶음을 어필하려고 인사팀 인사상담을 앞다투어 신청한다. 물론 전 직원을 대상으로 인사팀에서 원하는 팀을 골라 보라는 인사설문을 실시하지만, 그 결과를 인사팀이 심사숙고해줄 거라 기대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다. 모두 결국은 인사업무 담당자와 상담을 신청하고, 상담에서는 지금 내가 얼마나 거지같은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래서 나는 승진해야 한다/다른 팀으로 옮겨야 한다고 처절한 어필을 시도한다. 정말 눈물 없이는 들어줄 수 없는 이야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인사팀 담당자는 그런 상담을 수십, 수백 번 해야 하기 때문에 영혼없이 '그랬군요.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한다. 




  여기까지는 이제 공공기관을 n년 다닌 나로서 그러려니 한다. 그렇다. 공공기관에서 순환근무는 필연적인 것이고, 나는 몇 년 이상 한 팀에서 일하고 나면 전혀 관련 없는 다른 팀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다음부터 발생한다. 공공기관의 인사팀은 결국 모두가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줄 수 없다. 누군가는 사람이 적어서 일이 많은 팀으로 가야 하고, 누군가는 모두 기피하는 부서로 가서 업무를 이어해야 한다. 한 팀에서 사람이 나가면 그 팀에 나간 사람과 비슷한 직급/경력의 사람이 채워져야 하는데,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깔끔하게 나간 사람과 똑같은 경력의 사람이 다른 데서 나올 확률은 지극히 낮다. 그래서 결국, 인사팀의 인사담당자는 다른 사람들의 업무 커리어를 자신이 고민해 결정해야 한다. 소문이 날 수도 있으니 함부로 인사 대상자에게 'ㅇㅇ팀에 가는 건 어떠냐?'라고 미리 물어볼 수도 없다. 오로지 인사담당자가 각 직원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Photo by Timon Studler on Unsplash


  결국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인사담당자는 이번에 인사 대상으로 나온 A사원을 어느 팀으로 보낼지 고민한다. 인사담당자는 A사원에 대해 잘 모른다. 같이 일해본 적도 없다. 인사상담에서 A사원은 자신의 그간 경력을 어필하며 데이터 분석을 주로 하는 a팀으로 가고 싶어했지만(인사상담 때 CS 같은 업무는 절대 싫고 데이터 분석을 주로 하는 팀에 가고 싶다고 어필했다), a팀에는 이미 갈 사람이 정해져 있다(그 팀 팀장이 다른 본부에서 나온 b사원을 데려오고 싶다고 어필해서 그렇게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 A사원은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 친한 동기에게 듣기로 A사원이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잘 웃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다고 들었다. 그러면 고객들한테도 잘할 것 같으니 CS를 담당으로 하는 c팀으로 보내도록 하자.}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인사담당자는 신이 아니다. 모든 직원들의 그간 경력과 직무 적성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다 맞춰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담당자는 모두의 직무 적성을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모두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못하더라도 최악의 결과는 막을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공공기관의 인사담당자가 그러할까? 대부분의 인사담당자는 그런 선택을 하지 못 한다.(때로는 그런 선택을 일부러 하지 않는다) 그렇게 장난 같지만 장난 아닌 인사가 이루어진다. 


  만약 A사원이 그냥저냥 시키는 일이나 대충 하고 집에 가는 성격의 사원이면 갑자기 CS팀으로 가게 되어도 그럭저럭 참으며 다닐 수도 있다. 하지만 A사원은 데이터 분석 업무를 좀 더 심화해서 하고 싶었던 열심 사원이었다. 갑자기 자신의 커리어를 전혀 이어가지 못하는 부서로 옮겨진 데다, 심지어 가장 싫어했던 CS 업무를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결국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던 A사원은 그만 퇴사하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니 나는 A사원 같은 사례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인사과정은 최대한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공기관이 순환근무라는 이상한(솔직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체제를 유지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사람을 몇 년에 한 번씩 계속 전혀 다른 업무를 시키는 인사를 내야 한다면, 적어도 각 사람이 가장 하기 싫은 일은 피하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한 명 한 명과 인사상담을 세밀하게 하고(인사담당자가 하기 어렵다면 부서장이라도 동원해서), 최대한 모든 퍼즐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회사에서 이제 충성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나 같은 밀레니얼과 Z세대들은 공공기관에서의 근무에 더욱 회의를 느끼게 될 것이다.


  맞다. 이 글은 연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인사 시즌'이 슬슬 다가오니 답답해서 끄적여보는 것이다. 또 우리 회사는 인사 시즌 한 달 내내 일은 안 하고 누가 어느 팀에 갈지 소문 얘기만 하겠구나.. 싶어, 인사담당자한테 인사상담을 신청해 자신이 가고 싶은 팀을 어필하겠구나 싶어, 그게 너무 싫어서 써 보는 것이다. 부디 내가 다니는 회사가 아닌 다른 공공기관은 이렇게 순환근무를 체계를 운영하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 그리고 혹시나 공공기관에 다니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진지하게 내가 갑자기 몇 년에 한 번씩 생뚱맞은 업무를 맡게 되더라도 그냥저냥 다닐 수 있는 사람인지를 다시 한번 고려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일단 난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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