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분들은 집에선 일 안 하는 줄 아시는 것 같아요
재택의 시대다. 'ㅇㅇ 기업은 한 달에 며칠 이상은 출근하라고 했더니 개발자들이 이직한다고 했다더라', 'ㅇㅇ기업은 전원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체제를 바꿨다고 한다'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며 다수의 직원이 재택근무를 해도 업무가 돌아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음을 직원도 회사도 학습했고, 그 결과 위드코로나 시대가 된 지금도 재택근무 형태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과연 공공기관도 그럴까? 글쎄, 다른 공공기관은 어찌 지내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다니는 기관에 한해서는, 아니올시다이다. 코로나가 한참 심할 때는 팀 내부에서 조를 짜서 주에 며칠씩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었지만, 위드코로나가 선언된 이후 재택근무는 그날로 사장되었다. 그 어느 팀에서도 지금은 재택근무를 하지 않는다. 재택을 했던 시절이 마치 꿈처럼 느껴질 뿐이다.
정부 지침에 따라 주에 몇 회씩 돌아가며 재택근무를 할 때에도, 팀장 이상의 분들은(간부급들은) 재택근무를 매우 싫어했다. 재택=휴가라고 생각하는 상급자도 많았다. 팀원들이 재택근무를 신청하는 결재를 올리면 노골적으로 '재택을 참 많이 가네?' 비아냥대는 팀장도 있었다. 팀원이 필요한 일이 생겼는데 재택근무라고 하면 대놓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해당 업무는 재택 상태에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냥 자기가 불렀을 때 바로 네! 하고 달려오지 않는 게 짜증이 났던 것). 그러니 '위드코로나'가 선언된 후, 재택이 오래전 전설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건 당연한 결과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재택근무가 정말 사무실 근무보다 업무효율이 떨어질까? 재택을 하는 직원들이 사무실에 나온 직원보다 딴짓을 많이 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사람마다 재택근무의 환경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집에 어린아이가 있으면 집에서 일하는 게 더 곤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이라는 공간이 회사보다 훨씬, 훨~~~씬 집중하기가 편하다. 내 경우로 생각해봤을 때, 사무실에서 집중력이 필요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은 거의 극한직업 체험에 가깝다. 사무실은 일단 시끄럽다. 주변 사람들의 타자 치는 소리, 딸깍딸깍 마우스 클릭하는 소리가 기본으로 깔린다.
여기까지는 생활소음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각 팀에서 회의하는 말소리, 팀장과 팀원이 논의하는 소리, 옆옆자리에서 업체와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더해진다. 종종 옆팀에서 전화벨이 여러 번 울리면 땡겨받기까지 해야 한다. 그 와중에 직장예절상 이어폰을 끼고 일할 수도 없다. 집중을 하는 게 신기한 상황이라 볼 수 있다. 반면 집에서 근무한다면? 나를 방해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집에서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오직 나와 일만 있는 세상에서 집중해서 일할 수 있다. 재택근무가 사무실 근무보다 업무효율이 떨어진다는 건 어디까지나 윗분들만의 생각이다.
재택을 하는 직원이 사무실에 나온 직원보다 딴짓을 많이 한다는 것도 판타지다.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이 물론 딴짓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무실 근무하는 직원이 딴짓을 안 하는가? 다른 직원과 커피타임 하러 가는 직원도 있고, 몰래 인터넷 쇼핑하는 직원도 있고, 담배 피우러 갔다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는 직원도 있고.. 결국 딴짓을 할 사람은 어떻게든 한다.
Photo by Nelly Antoniadou on Unsplash
결국 윗분들 눈에 재택근무하는 직원이 거슬리는 이유는, 자기 눈앞에 두고 관리할 수가 없어서밖에 없다. 근처에 두고 궁금한 게 있으면 자리로 불러서 물어도 보고, 일을 하고 있나 슬쩍 자리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해야 하는데, 집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도통 확인할 수가 없어 불안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 불안은, 간부들이 각 직원들이 무슨 업무를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각 직원에게 타당한 목표가 부여되어 있고,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주어진 일)이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리더라면 팀원들이 그 일을 잘했는지만 매일 확인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그 일을 다 해내지 못한 직원이 있으면 그 이유만 파악하면 된다. 그런데 각 직원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니, 눈앞에 두고 감시하고 싶은 욕망이 슬금슬금 피어오르는 것이다.
물론 이런 분노에 찬 이야기도 '위드코로나', '회사 지침'이라는 회사의 몇 마디 말 앞에 힘없이 스러지고 만다. 현실엔 자기 동거인 중에 확진자가 나와도 자가키트 음성이면 출근하는(솔직히 완전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한다) 풍경만 남아있을 뿐이다. 최소한 코로나에 걸리지 않기 위한 범위라도 재택을 시행해달라 회사에 외쳐봐도 돌아오는 답은 없다. 올해 회사에서 옮아 코로나에 걸렸던 나는 동계 추가 백신도 맞았지만, 이미 두 번째 코로나를 회사에서 옮을 각오를 하고 있다. 오늘도 사람 꽉 찬 지하철에 타 출근길에 오른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나도 일주일에 하루라도, 아니 한 달에 하루라도, 아니 코로나 증상이 있을 때라도 재택근무하는 회사에 다녀보고 싶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