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도 칭찬받으면 더 열심히 하는 생물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이제 너무 많이 들어 진부하게까지 느껴지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말만큼 직장생활의 진리를 담은 말도 또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그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국 인정 욕구가 있는 동물이다. 어렸을 때야 '참 잘했어요' 도장을 매일같이 받으니 괜찮다지만, 어른이 되고 직장인이 되면 칭찬받을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인정 욕구는 그대로인데 칭찬받을 일은 줄어드니 인생이 피곤해질 수밖에. 그래서 가뭄에 콩 나듯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그렇게 행복하고 기쁜 것인지도 모른다.
신입사원 시절, 기억나는 많은 장면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칭찬받았던 기억에 관한 것이다. 선배님이 프린터가 안 되어서 끙끙대고 있을 때였다. 신입이 시절에는 회의자료 정리 등 인쇄할 일이 워낙 많아서 프린터와 친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나는 그 프린터의 고질적인 문제와 그 해결방법을 알고 있었다. 가끔 이유도 없이 삑삑대며 인쇄를 거부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프린터 오른쪽 튀어나온 부분을 꾹 눌러주면 해결되는 것이다(이 부분이 헐렁해져서 생기는 문제였다). 평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던 선배님이었기에 나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냉큼 프린터로 달려가 '프린터가 말썽이죠! 이거 제가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넉살을 부리며 오른쪽을 꾹 눌러 문제를 해결해 드렸다. 그때 도움을 받은 선배님이 지나가는 말로 '대체 ㅇㅇ씨는 못 하는 게 뭐야?'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 칭찬이 그때의 나를 얼마나 벅차오르게 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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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뭐야 고작 저런 말에 무슨 벅차오르기까지 했다는 거야?' 싶을지도 모른다. 당시의 나는 신입사원이었고, 칭찬이 고픈 막내였다. 의욕은 넘쳤지만 사실 할 줄 아는 건 많이 없었다. 품의서 하나 쓸 때도 선배님 팀장님의 검토를 받아야 했고, 지출 하나도 혼자서는 못 하던 초보 직장인이었다. 선배들 눈으로 봤을 때는 얼마나 어설퍼 보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칭찬을 많이 받는 신입이었다. 선배들이 작성한 몇십 페이지짜리 보고서에서 오타 하나 발견해서 보고 드리면 'ㅇㅇ씨는 참 꼼꼼해, 덕분에 큰일 날 뻔했는데 미리 고칠 수 있었어(사실 그냥 평범한 오타였다)'라고 꼭 한 마디 피드백이 돌아왔고, 회의 준비할 때 미리 가서 세팅하고 있으면 'ㅇㅇ씨가 다 세팅해줘서 우린 뭐 할 게 없네(사실 어설퍼서 선배들이 도와줘야 했음)'라는 말을 들었다. 이런 경험의 연속에서, 사실 정말 별 거 아닌 '프린터 고치기'라는 행위를 했을 뿐인데 '못하는 게 뭐야?(=다 잘한다)'라는 피드백을 들으니 날아갈 것처럼 기쁘고 행복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칭찬을 많이 받으니 내가 실제로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의욕 뿜뿜하며 일을 했다는 것이다. 칭찬을 잔뜩 받은 고래처럼, 아주 스포츠댄스를 춰가며 일했다. 내 보고서가 부족해 보이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야근을 하며 퀄리티를 보충했다. 선배들의 칭찬에 보답할 정도로 정말 잘하는 후배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선배들은 더 칭찬을 해주고, 나는 더 열심히 하고. 칭찬 한 마디가 그런 선순환이 가능케 했다.
직장생활에서 칭찬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나중에 칭찬이 뭔지 모르는 선배(상사)를 만났을 때 더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무슨 보고서를 얼마나 잘 써가도 기어코 단점을 찾아내서 질타하고, 100개를 잘 써가도 1개의 오타가 있으면 '이런 기본적인 것도 제대로 못하냐'며 구박하는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내 업무태도는 자연스럽게 소극적으로 변했다. '뭘 해가도 욕먹으니까 그냥 시키는 일만 하자'에서 궁극적으로는 '어차피 저 사람한테는 뭘 가져가도 욕만 먹으니 그냥 대충 하자'는 매너리즘에 빠진 직장인의 자세로 나도 모르게 바뀌게 되더라.
설사 내 자료에 고칠 점이 많더라도, 잘한 점 한 가지라도 먼저 이야기해준 뒤에 고칠 점을 언급했으면 나는 아마 더 열심히 일했을 것이다. 그러나 뭘 해가도 부정적 피드백만 듣게 된다면, 아랫사람으로서는 똑같은 월급 받고 욕먹으려고 더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대충 하게 된다). 뭔가를 지적함으로써 윗사람의 권위를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다. 아랫사람이 납득할 수 없는 부정적 피드백은 오히려 충성심만 깎아내릴 뿐이다.
직장생활 n년차가 된 지금, 그러므로 나는 후배들을 대할 때 최대한 칭찬을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내가 보기엔 당연한 일을 했어도 '정말 고생했다, 너무 잘해줘서 도움이 되었다'라고 꼭 말해준다. 그게 후배의 직장생활 자존감을 지키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후배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돌아오니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부디 이 직장생활의 진리를 모든 윗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 이 글은 최근 제법 분량이 되는 보고서를 죽어라 썼는데 온갖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서 쓴 글이 맞다..^^
*현실에서 약간의 각색을 거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