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안한 제이드 Feb 03. 2023

어느 공공기관엔 자료아카이빙 대마왕이 살고 있다는데..

그게 바로 저입니다. 햄스터처럼 자료 모으는 직원



  내 브런치에서는 이미 너무 여러 번 이야기해서 글을 다 읽으신 분들은 식상하시겠지만, 또 얘기할 수밖에 없겠다. 공공기관은 순환근무라는 걸 해서, 몇 년에 한 번씩 업무가 바뀐다. 사무실도 바뀌고 앉는 자리도 바뀌고 같이 일하는 멤버(?)도 바뀌고. 인사철마다 컴퓨터를 이고 지고 이동하는 사람들로 회사가 떠들썩한 게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업무가 바뀌면, 이전 업무를 하며 만들었던 파일들은 화끈하게 휴지통에 버려 버린다. 후임자가 나중에 감사 등의 일로 인해 애타게 과거의 파일을 찾으면 그들은 한 마디로 모든 걸 끝내 버린다. '중요한 건 다 품의서(전자)에 첨부되어 있어~' 그렇게 품의서에 첨부되지 못했지만 꽤나 중요했던 많은 파일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나는 다르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나는 약간은 병적으로(!) 자료를 모으는 것에 집착했다. 내가 만든 문서는 물론,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참조로 넣어 준 메일에 첨부된 파일들도 모두 다운로드해 내가 설계해 둔 하위폴더 안에 착착 곱게 저장해 두었다. 신입 때 나는 나를 포함해 세 명이 한 파트가 되어 일했는데, 그 세 명이 작성한 모든 보고서를 사업별 업무별 폴더로 분류하여 가지고 있다(지금도). 분류가 애매한 파일은 버릴까? 그렇지 않다. 어느 폴더에도 들어가지 못한 파일들을 넣어두는 폴더(보통 이름은 '참고자료')가 마련되어 있다. 그렇게 나는 햄스터처럼, 자료를 잘 모아두는 직원이 되었다. 


사진: UnsplashEd Robertson



  여기에서 잠시, 자료를 잘 아카이빙(?)하기 위한 나만의 요령을 공개해 본다. 먼저 공공기관 특성상 모든 업무는 연도별 팀별로 돌아가므로, 가장 큰 폴더 구분은 '연도-팀'으로 시작한다(ex : 2023년 총무팀). 그 하위에는 맡은 업무분장을 구분해서 폴더화한다. 그리고 그 폴더들은 중요한 순서대로 넘버링해서, 많이 쓰이고 중요한 파일이 많은 폴더가 위로 오도록 관리한다(ex : 1. 대형계약, 2. 단순구매). 각 폴더 안의 하위 폴더는 또 같은 방식으로 중요한 순서 or 업무에 순서가 있는 경우 그 순서대로 넘버링하여 구성한다. 이렇게 해두면 비록 폴더 안의 폴더가 너무 많아 파일을 찾을 때 여러 번 더블클릭해야 하긴 하지만, 그만큼 파일이 어디에 들어가 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어 편하다. 

  참고로 나는 보고서 파일명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제목을 지어 관리한다. '날짜_제목_버전'(ex : 230203_직원 복지서비스 운영 계획(안)_ver.13).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각 파일이 언제 작성되었고 최종 버전이 뭔지 이해하기가 쉽다. 


  자료 아카이빙 대마왕으로 사는 건 결국 내 완벽주의 성향 때문일 것이다. 여하간 결국 나는 내가 다니는 기관에서 '업무 관련 자료가 필요하면 ㅇㅇ씨한테 연락해 봐'의 ㅇㅇ씨가 되었다. 이렇게 살면 극명한 장단점이 있다. 먼저 장점은, 아주 간단하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특히 공공기관에서는) 다른 사람에 뭔가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이 아주 많다. 그러니 평소 다른 사람들을 도와 두면 그게 다 포인트가 되어 나중에 내가 뭔가를 부탁할 때 조금 편해지게 된다. 

  자료를 아카이빙해 두면, 누군가 아주 먼 옛날의 자료가 필요해 간절하게 찾아다닐 때 엄청난 구원자가 될 수 있다. 최근에도 그런 일이 두어 번 있었다. 'ㅇㅇ씨,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201n년 ㅇㅇ 관련 자료 가지고 있어요? 너무 예전이고 ㅇㅇ씨 업무도 아니라 안 갖고 있을 것 같긴 한데..'라는 전화에 나는 잽싸게 201n년 폴더로 들어가 검색창에 관련 키워드를 검색. '이런 자료라도 괜찮을까요?' 하며 보내면 상대는 내가 가지고 있음을 믿지 못해 하면서도 매우 고마워한다(자료를 찾아 헤매는 긴 여정을 끝내주었기 때문에). 그럼 나도 상대의 감사를 받고 때로는 땡큐 의미의 커피도 얻어먹으니 행복한 결말. 


  단점이야 뭐, 모두가 예상하듯 뻔한 그것이다.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를 무슨 도서관처럼 대할 수도 있다는 것. 당연히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할 업무 관련 자료도 전전전전임자인 나한테서 찾는다거나..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단점보단 장점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업무와는 별로 관계없어 보이는 파일들을 누군가에게 공유받으면 그걸 고이고이 '참고자료' 폴더에 저장해 둔다. 언젠가 누군가의 급한 호출에 뿌듯해하며 파일을 건네줄 나를 상상하며.




이전 13화 프린터 고치고 들은 칭찬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