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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안한 제이드 Apr 14. 2022

공공기관에서 인수인계는 유니콘과 같은 것

인수인계 없는 회사에서 오기로 인수인계서 작성했던 기억


"인수인계"란?


  '인수인계'는 말 그대로 '물려받고 넘겨주는 것(네이버 국어사전)'으로, 직장에서는 주로 인사가 났을 때 업무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업무 관련 사항을 정리하여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인수인계'라는 것은 단어는 있되 공공기관에서는 환상의 유니콘 같은 존재이다. 3~4년, 빠르면 6개월 만에도 인사이동이 있는 우리 회사에서는 업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반드시 인수인계가 잘 되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파일이나 제대로 던져주고 가면 다행인 상황인 것이다. 많은 수의 공공기관이 사규에 인수인계에 관한 사항을 기재해 두지만,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인수인계에 대한 추억


  나는 이 공공기관에 들어오고 첫 팀에서 굉장히 훌륭한 선배를 만났다. 나와 2년 같이 일하고 떠나던 선배님이 그때의 나에게 굉장히 생소했던, '인수인계서'로 시작하는 문서파일과 관련 업무파일(압축파일)을 주시고 떠났던 것이다. 인수인계서에는 팀 업무분장표부터 시작해서 본인이 맡았던 업무, 업무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 등이 간략히 적혀 있었다. 인수인계서와 관련 파일들이 있었기에 선배님이 떠난 후에도 남은 이들은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고, 업무 관련 문의가 생겼을 때에도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이 팀을 떠나게 되면, 반드시 훌륭한 '인수인계서'를 쓰고 떠나리라 마음먹었던 것 같다.


  그 뒤로 꽤 오랜 시간을 나는 첫 팀에서 나가지 않고(못하고) 보냈다. 그 사이에 많은 선배님들이(심지어 나보다 늦게 온 선배님들까지) 팀을 떠났다. 그중에는 줄글로 필요한 업무들을 써 놓고 떠난 선배도 있었고, 그간의 업무파일을 압축해서 메일로 보내고 간 선배도 있었고, 심한 경우 아무것도 주지 않고(ㅎㅎ) 떠난 선배도 있었다. 나는 그 수많은 선배님들과 작별하며.. 내가 떠날 때는 꼭, 처음 떠나보낸 선배님처럼 '인수인계서'를 쓰고 떠나기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입사 3년 차 이후 나는 생각보다 많은 부서이동을 했다. 어떤 때는 2년 만에, 어떤 때는 6개월도 안 되어서... 대중없는 우리 회사의 인사방침에 따라 관계없는 팀에 갑작스럽게 이동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수인계서를 쓰지 않은 적은 없다. 반드시 한글파일(공공기관이니까)에 개조식으로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유관 파일은 업무대로 분류하여 묶어서 후임자에게 전달한다. 이것이 이 공공기관에서 10년 가까이 일하면서 내가 지켰던 원칙 중 하나다.



인수인계에 들어가야 할 것들


  인수인계서의 첫 번째에 들어갈 내용은 업무 개요 및 연혁이다. 내 다음으로 내 자리에 앉을 사업은 이 업무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이것이 공공기관의 흥미진진한 점이다) 따라서, 앞으로 당신이 할 업무는 이러이러한 업무이고 그간에는 이렇게 진행되었음을 알려줘야 한다. 나는 주로 국회나 주무부처에 내는 연혁자료를 참고해서 업무를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작성했다.


  두 번째로 들어갈 내용은 당해연도 업무추진 현황이다. 후임자가 첫 번째 장에서 업무 전체에 대한 이해를 마쳤다면, 이제 그 업무 개요에 따라 당해연도에 어떤 업무가 어디까지 추진되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연중(6월)일 경우 상반기 추진현황, 연말(12월)일 경우 한 해 동안의 추진현황을 적는다. 개요보다 훨씬 자세히, 올해 특별히 이루어진 일까지 전부 포함해 시간대별로 정리한다. 이때에는 월별 표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


  세 번째로는 향후 업무추진 필요사항을 넣는다. 업무추진 필요사항은 두 가지로 나누는데,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우리 회사는 인사 나고 바로 다음날 자리이동할 정도로 틈이 없으므로 당장 처리할 일도 후임자에게 넘겨줘야 한다)과 차년도 업무 추진 시 추진할 일로 나누어 설명한다. 당장 추진해야 할 일은 중요 표시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아주 상세히(신입에게 알려주듯이) 적고 기한을 명시한다. 차년도에 추진할 일은 개략적으로 설명하되, 담당자 변동 등으로 인해 수정될 수 있음을 알린다.


  마지막으로 적는 것은 업무추진 시 주의사항 및 참고사항이다. 감사지적사항이 있었다거나 부서장이 지적했던 사항 등 자잘하지만 업무 수행할 때 반드시 참고하고 진행해야 하는 부분들을 적는다. 이런 부분까지 전달해야 후임자가 전임자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인수인계가 끝난 후...


  이렇게 나는 공공기관에서 유니콘과 같이 보기 힘들다는 인수인계를 팀을 떠날 때마다 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가? 그래도 전화가 온다. 'ㅇㅇ씨, 이거 인수인계서에 이렇게 쓰여 있긴 한데 내가 하니까 안 되네'는 양반이다. 인수인계서에 쓰여 있는 내용을 찾아보지도 않고 전화하는 사람이 대대대대다수다. 그래도 나는 팀 이동 시 반드시 인수인계서를 쓴다. '인수인계서'가 뭔지 알게 해 줬던 내 첫 번째 회사 선배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지만, 내 업무에 대한 '리스펙트!'의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후임자에게 전화가 왔을 때 구구절절 설명하기보다 '인수인계서 ㅇㅇ페이지에 나와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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