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

시골살이 첫날

by peacegraphy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느낌상 올 들어 가장 더운날, 서울보다 기온이 3~4도 정도는 항상 낮은 곳인데도 열대야를 피하긴 어려운 날이다.


시골은 하루가 길다.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마당으로 나섰다. 소일거리는 새벽부터 많다. 오히려 비교적 덜 더운 오전 5시~10시가 일하기에 '골든타임'이다.


마침 텃밭에 마늘을 수확한 자리가 비었다. 이랑 예닐곱줄이 새 작물을 기다렸다.

옥수수를 심기로 했다. 해묵어 단단하게 굳은 옥수수알을 물에 불렸다. 호미로 30~40㎝ 간격으로 구멍을 파고 서너알 씩 넣었다. 별일 아닌 것 같은데도 허리를 구부린 채 쪼그리고 이동하다보니 이마에 땀이 맺혔다. 올해는 옥수수 값이 비싸다고 한다.

그 다음엔 마당에서 먹자두를 땄다. 과즙이 줄줄 흐른다. 농익은 자두향이 콧속을 파고든다. 비가 많이 와 상한 알이 많다. 온전한 열매와 상한 열매 비율은 1대4 정도. 상한 건 닭의 몫이다.

일을 마치고 나니 오전 9시20분. 누나가 맡겨둔 6살 조카, 승현이가 유치원에 갈 시간이다. 깐순이와 함께 마을 입구까지 승현이를 데려다줬다. 노란 셔틀버스가 승현이를 태워갔다.

나와 누나가 졸업한 조령분교 병설유치원에 승현이도 다니고 있다. 시골이라 어린 아이들이 많지 않다.

아이가 돌아온 시간은 오후 4시40분. 일곱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고마운 유치원이다. 방과 후 수업까지 선생님은 두명, 원생은 여섯명이란다. 수업료는 무료.


승현이에게 물어보니 우산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고구마도 먹었다고. 엄마나 할머니와 떨어져 있어도 응석을 부리지 않는다. 유치원 가는 게 그렇게 좋다고 말한다.

서울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00만원 가까운 수업료에 그나마 경쟁률이 10대1이 넘는다고 한다. 선호도가 떨어지는 공립 유치원 경쟁률도 3~4대1이 훌쩍 넘는다고 하니. 한참 후 얘기라 해도 걱정이 된다.

친구들과 신나게 하루를 보낸 아이는 집에 오자마자 물놀이를 시작했다. 현관 옆에 욕조를 설치했다. 전용 수영장이다. 발가벗고 물에 몸을 적신 아이에겐 불볕더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하에서 끌어올린 차가운 물로 물장구치며 더위를 이겨냈다.

점심식사 후엔 '시에스타' 타임. 어차피 너무 더워서 일할 수 없다. 시골의 매력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영화 '리틀포레스트'를 틀었다. 배도 부른데, 역시나 잠이 솔솔 온다.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요즘 비가 많이 왔다. 뒷산에 고인 물도 많다. 말랐던 도랑에 물이 흐른다. 작은 계곡이 생겼다. 파이프로 도랑물을 연결해 마당 앞 까지 연결했다. 그 전용 수영장이 있는 곳이다. 산에서 이제 막 내려온 차가운 물은 공기를 식히는 효과도 있다.

저녁요리는 내가 맡았다. 쭈꾸미볶음과 김치찌개. 양파와 호박, 참기름까지 직접 재배한 재료들을 사용했다. 우리 닭이 낳은 계란으로 만든 후라이까지.

뭔가 많이 한 것 같은데 아직 오후 9시가 안됐다. 시골은 하루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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