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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cegraphy Feb 17. 2022

[탕꾸반뿌라후 화산]위험한 것은 아름답다

인도네시아 반둥 여행

자카르타, 보고르, 뿐짝에 이어 다음 목적지는 반둥이다. 인도네시아의 대전 정도로 보면 될듯한 도시다. 자카르타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고지대에 위치해 날씨가 좋은 지역이다. 적도인데도 고도가 높아 4계절이 시원하다고 한다. 


반둥에서의 둘째날 새벽 호텔에서 나오는 길에 저세상에 갈뻔했다. 빗물에 미끄러지며 제대로 넘어졌다. 팔꿈치로 그대로 착지해 부상을 안았다. 하루 지나자 팔꿈치가 더 아파졌다. 병원에 가야겠다. 반둥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으로 갔다. 어릴적 갔던 시골 병원 느낌이다. 역시 대기시간이 길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지는 않았다. 의사 문진 후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속에 피가 고였으니 뺄 수 있는 연고를 처방해주겠다고 한다. 1시간30분 정도 병원일정을 마쳤다. 외국에서 아프면 겁부터 난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면 최고의 해법을 알려준다. 믿고 따르면 큰 문제는 없다. 


화산을 동경한다. 그중에도 살아있는 활화산이 좋다. 경이로운,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한 자연의 신비를 느끼는 게 좋다. 7년 전 인도네시아 브로모 화산을 방문했던 경험을 잊지 못한다. 반둥에도 브로모만큼 큰 화산이 있다고 한다. 탕꾸반쁘라후(Tangkuban Perahu) 화산이다. 반둥에서 1시간 정도 거리다. 


8000원쯤 하는 그랩 차를 잡았다. 반둥 북쪽 렘방 시내를 거쳐 화산지대에 도착한다. 우기(Rainy Season)인데 왠일인지 날씨가 화창하다. 잘보이겠지, 기대감이 커진다. 반둥도 고지대지만 화산으로 향할수록 지대가 더 높아진다. 화산폭발로 생긴 지역에서 그 근원인 화산 방향으로 가는 길이니 갈수록 더 지대가 높아지는 게 당연하다. 도시화되지 않은 지역만 가진 천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올라가는 길, 분화구 한참 밑에서 차량출입을 통제한다. 입장료는 외국인 20000루피아, 인도네시아인 2000루피아, 10배 차이다. 차량 통행료도 1000원 정도 받는다. 이때부터 전세가 역전됐다. 운전기사가 우위를 가져간다. 반둥에 돌아갈 때는 어떻게 갈거냐고 묻는다. 이 위에서는 고젝이나 그랩도 안잡힐 게 확실하다... 50만루피아를 부르는 기사님. 나의 관광이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반둥 시내까지 데려다주는 조건이다.


계속 차를 타고 까와도마스(Kawah Domis) 입구를 지나 정상까지 올라간다. 정상에는 탕꾸반프라후에서 가장 큰 분화구인 Kawah Ratu(카와 라뚜)가 있다.  


시각보다 후각이 먼저 자극된다.  꼬릿꼬릿하면서 삶은 달걀냄새 같기도 한 향취가 코를 감싼다. 유황 냄새다.  곧이어 눈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초대형 축구 스타디움의 가장 뒷자리에서 경기장을 내려다보는 기분이 든다. 분화구는 축구장보다 훨씬 크다. 쉴새없이 스팀을 뿜어낸다. 유황가루가 곳곳에 쌓여 있다. 하늘색에 가까운 호수에서는 은은한 수증기가 올라온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분화구에서 나온 연기가 흩날린다. 날이 흐리거나, 연기가 많은 날에는 이곳에 올라왔어도 이 장관을 볼 수없다. 운이 좋았다. 시시각각으로 선명도가 달라진다. 분화구 외곽을 걸으며 '시각'을 바꿀 때마다 이 화산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분화구를 둘러싼 숲도 장관이다. 반지의제왕 영화에 나올법한 나무들이 뒤엉켜 있다. 문명의 손이 채 닿지 않은 곳, 보존되고 있는 곳이라 자연 날것의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인다. 수십분 간 멍하니 장관을 바라봤다.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자연의 무서움, 제대로 터진다면 인근 마을은 물론 반둥까지 집어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화산이다.

기사님과 다시 만나 까와도마스 입구로 이동했다. 지옥이라는 뜻이다. 입장료를 또 내고, 가이드가 붙는다. 1.2km 정도 숲길을 걸어야 한다. 숲 자체가 또 매력이 있다. 최소한의 길만 만들었을뿐 자연 그대로 울창한 숲이다. 까와도마스는 탕꾸반프라후 화산 중턱에 있는 자연유황온천이다. 자연적으로 웅덩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펄펄 끓는 온천이 있다. 바닥이 뜨거운 곳도 있어 조심조심 움직여야 한다. 일단 계란부터 사서 가장 뜨거운 온천에 담가둔다. 아저씨와 할머니들이 다가오더니 다리를 걷으라고 한다. 화산진흙을 다리에 바르고 마사지를 시작한다. 1.2km를 걸으면서 쌓인 피로를 달래준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20만루피아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올라갈때만 해도 날씨가 맑았지만, 자연은 편안함을 그리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 총쏘는 소리가 난다. 천둥이 치고 번개까지 친다. 족욕을 부랴부랴 마치고 쉼터로 이동했다.


비가 오는 모습도 아름답다. 지면의 뜨거운 열기를 맞닥뜨린 빗방울은 이내 수증기로 증발한다. 몽환적인 지옥의 분위기. domas의 뜻이 지옥이라고 한다. 지옥을 흔히 불구덩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틀린말도 아니다.

위험한 것은 아름답다. 초대형 쓰나미를 일으킨 통가 해저화산 폭발이 한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굳이 불의 고리가 흐르는 인도네시아를 목적지로 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편에 속하는 탕꾸반프라후를 기어이 방문했다.


화산을 찾은 이유는 희소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활화산이 하나도 없다. 다들 쉬고 있다. 한국 어디에서든 할 수 없는 경험이다. 탕꾸반쁘라후 만큼 규모가 큰 화산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다.


가이드가 "처음 방문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마지막 방문은 아니길 바란다"고 말한다. 미안하지만, 너무나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두 번 찾지는 않을 것 같다.


적지않은 시간과 돈을 썼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그만큼 가치가 있었다. 유황냄새를 많이 맡아서 두통이 남았고 옷에도 냄새가 남았다. 뭐 그래도 괜찮다.


후회는 없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강렬한 인상이 남았다. 아마도 평생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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