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 입국한지도 벌써 꼭 한달이 됐다. 나날이 행복으로 가득 채운 여정이라 시간가는줄 몰랐다. 5번째 도시, 발리에서의 세번째 밤이다.
지난 한 달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반둥에서 보냈다. 12박13일을 지냈다. 인도네시아에 오기 전까지는 그런 도시가 있는줄도 몰랐다. 발리 직항이 없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자카르타로 입국하면서 계획이 전면 수정됐다. 미팅이 격리해제 1주일 뒤로 잡힌 덕에 자카르타에서 보내게 된 시간이 만족스러웠다. 자카르타와 가까운 식물의도시 보고르에서의 2박3일도 훌륭했던 덕에 인도네시아의 다른 도시들이 궁금해졌다. 정글도시 뿐짝에서의 3박4일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2주 정도를 인도네시아에서 지내면서 반둥 이야기를 몇 번 들었다. 자카르타보다 훨씬 시원하고, 골프장 가격이 싸고, 미인이 많다는 얘기였다. 뿐짝에서 100km 가까운 거리를 그랩으로 이동했다. 4시간 가까운 무모한 여정이었지만 반둥은 그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첫 숙소를 3박으로 잡았지만 12박까지 늘어난 이유가 있다.
우선 날씨가 너무 좋다. 반둥은 바다와 멀다. 남쪽으로 가든 북쪽으로 가든 거리가 같다. 딱 대륙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탕꾸반쁘라후 화산보다 밑에 있는 해발 700m 정도의 고지대다. 연중 20~25도 기온을 유지한다고 한다. 아주 더운날에도 30도를 넘기지 않는다.
우기라서 걱정이 많았지만, 기우였다. 비가 자주 오긴 하지만 짧다. 비오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뚝 그친다. 언제 그랬냐는듯 화창해졌다가 또 비가 온다. 아이 우는 정도랄까.. 우산을 준비해왔지만 한달동안 한 번 펼쳐봤을 뿐이다. 비를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
반둥에 있는 동안 3번 골프를 쳤다. 라운딩 중에도 이슬비가 몇 번 오긴했지만 플레이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위를 식혀주는 단비 같았다. 모두 1인 라운딩이었다. 대기시간 없이 자유롭게 내 플레이를 즐길 수 있었다.
고지대에 있는만큼 전망 좋은 곳이 많다.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10층 정도만 올라가면 어디든 반둥 시내가 다 내려다보인다. 네덜란드 식민 통치 시절(1800년대 초반) 피서지와 휴양지로 각광받으며 수도로 계획됐던만큼 네덜란드 건축양식이 남은 건물들을 감상하는 맛도 있다.
한국에선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할 천혜의 자연환경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도 반둥의 매력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이 감도는 거대한 활화산, 탕꾸반쁘라후의 웅장함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계란을 10분만에 삶아버릴만큼 펄펄 끓는 까미도마스 분화구는 마치 지옥을 연상케 한다.
적도 부근인만큼 어딜가든 무성하고 웅장한 열대우림을 체험할 수 있다. 서울 집에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는 나의 귀여운 알로카시아를 머쓱케하는 초대형 자연산 알로카시아가 이곳에선 잡초만큼 흔하다.
끝으로 미인들. 인도네시아 타지 사람들은 반둥 사람들이 'Putih-Putih', 하얗다고 표현한다. 적도인데도 기온이 높지 않고 햇볕이 강하지 않아 피부색이 흰편이다. 영하 11도 한겨울 한국에서 온 나는 반팔을 입었지만, 긴팔 니트를 입고다니는 현지 친구도 있었다. 춥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반둥에는 인도네시아의 여러 종족 중 순다족이 많이 사는데, 미인이 많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2주일을 지내면서 우연히 알게된 친구들을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 한국사람이라고 해도 믿겨질 정도였다.
외모보다 성격이 더 매력이다. 낯선 외국인에게 한없이 배려해준다. 최대한 이해하려 하고 불편함을 줄여주려 하는 배려가 느껴졌다. 1일 가이드가 되어주기도 했고, 다같이 풀빌라에서 바베큐파티를 하기도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친구로 남을 것이다.
자카르타, 보고르, 뿐짝, 반둥은 각자의 개성, 매력이 확실했다. '이게 행복이구나'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다. 같은 나라이지만 확실히 달랐다. 인도네시아는 지역마다 확실히 다르다. 전세계에 너무 좋다고 소문난 발리는 어떨까. 발리생활의 시작, 설렘이 또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