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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Jul 12. 2017

강화도 답사 후기

강화역사박물관, 고려궁지, 전등사

굿애프터입니다. 여러분.
다들 오후 시간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문화재 찾는 사람들>분들의 강화도 답사 후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강화역사박물관, 고려궁지, 전등사 세곳을 다녀오셨다고 하네요. 중요답사지 위주로 보고 느낀 점을 나누면서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역사지식을 부담스럽지 않게 살짝 부연하여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영상 3도의 날이 참 따스했던 하루에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항상 즐겁게 다녀오면서 행복하게 후기를 쓰며 하루를 마감했는데요.
이번에는 유난히 따뜻했던 하루였습니다. 몸뿐만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까지 전달받았기 때문이죠. 거기에 12인승 스타렉스 렌트로 예상보다 회비까지 절약했습니다. 앞으로 지방답사 때 자주 애용할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약 1시간 10분 거리에 위치한 서북단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제주도>거제도>진도>강화도)으로 한강, 임진강, 예성강등의 '여러 강을 끼고 있는 아랫고을'이라고 하여 강하라고 부르다가 '강 아래의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으로 강화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해풍이 잘 불고, 물과 토질이 좋아 순무가 자라기 적합해 순무김치로 유명한 고장이죠. 

첫번째 목적지는 강화역사박물관 입니다. 보물 제11호인 강화동종을 비롯하여 1층에는 고려왕릉에서 출토된 강도시기(1231년//고종18년에 몽골족이 쳐들어오자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약 30년간 대항헀던 시기)의 유물과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였던 조선시대의 강화도 와 1866년 프랑스군과의 전투였던 정족산성 전투 전시해놓았으며, 10년 뒤인 강화도 조약의 현장도 볼 수 있어요. 

2층에는 강화도의 선사, 청동기시대의 내용을 다뤘습니다.  
특히 보물 11호인 강화동종이 인상 깊었는데요.  동종은 시계가 없던 시절에 시간을 알리는 기능을 했던 종으로 강화성의 사대문을 열고 닫을 때 사용했어요. 늦은 저녁이면 인정을 쳐 강화읍 성문을 닫고 새벽이 밝으면 파루를 쳐 성문을 열도록 했죠.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가려다 조선군이 추격하는 바람에 갑곶리 주변에 버리고 철수했다고 합니다. 그 후 강화부 종각으로 옮겨와 사용하였으나 오래되어 몸통에 금이 가서 새로운 종으로 만들었어요. 
구리로 만들어진 이 종을 만든 분은 조선 숙종 때의 사인 스님이예요. 놀랍게도 사인스님이 만든 8개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선은 1층의 강화동종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가 선사시대를 본 후 다시 1층으로 내려가 고려~조선후기 시대를 보면 됩니다. 

이 후 고급스러운 중식당에서 짜장과 짬뽕, 탕수육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두번째 탐방지인 고려궁지로 이동했습니다. 
1231년 고려에 몽골이 침입할 당시 고종임금보다 무신인 최우가 힘을 가지고 있을 때였어요. 최씨 정권은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기기로 결정을 했고 강화에 개경 궁궐과 비슷하게 본궁인 연경궁을 비롯하여 14채의 작은 궁궐들을 지었습니다. 
지금은 승평문이 고려의 흔적으로 남아 있죠. 그 후 몽골에 항복하고 개경으로 돌아간 후 몽골과 화친하면서 궁궐을 허물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고려궁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운거예요. 이 후 조선시대 유수부가 이 곳에 들어서고 그 후에 사람들이 건물을 지으면서 그 터가 점점 작아졌을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승평문에 오르는 세 개의 계단이 있어요. 보통 왕은 가운뎃길로 다녔고 문신은 오른쪽, 무신은 왼쪽 길로 다녔죠. 계단을 올라 승평문을 들어서면 동헌(예전 고을의 수령들이 주요한 업무를 처리하던 집이나 그 대청을 이르던 말)인 명위헌이 보여요. 
현재 남아 있는 동헌과 이방청은 조선시대 강화유수부 건물이예요. 유수부는 조선시대 한양을 방어하는 군사 도시입니다. 조선 조정은 개성, 강화, 광주남한산성, 수원화성 등 4곳에 유수부를 두었어요. 동헌은 고을의 수령이 업무를 보고 재판을 하던 관청으로 오늘날의 구청이나 군청에 해당합니다. 수령이 생활하는 내아(지방 관아에 있는 안채)의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동헌이라 부릅니다.  

조선시대의 지방관은 격에 따라 목사, 유수, 군수, 현령, 현감으로 구분했어요. 보통 사극에서 수령 혹은 사또라고 부르는 것이 지방관을 부르는 말이죠. 동헌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부터 해방 뒤까지 군청으로 사용되기도 했어요.  
강화유수부는 동헌과 이방청만 남아 있지만 이외에 임금이 머무를 수 있는 행궁, 수령을 보좌하던 자문기관인 향청, 동헌 남쪽으로는 형벌과 감옥을 아울러 이르는 형옥도 볼 수 있어요. 

마지막 탐방지인 강화에서 가장 큰 절 전등사에 다녀왔는데요. 고려후기 충렬왕의 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옥등을 시주하면서 전등사로 고쳐 지금까지 불리워지고 있습니다. 이 절에는 200년부터 600년까지 되는 보호수들을 볼 수 있고요. 보물 제178호인 전등사 대웅전, 보물 제179호 약사전, 보물 제393호 범종등을 볼 수 있으며 나부상과 은행나무의 전설이야기도 섥혀있는 아름다운 곳이였어요. 나중에 가을에 오면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굉장한 절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답사도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 했네요. 다른 분들도 꼭 다녀와보시길 추천드립니다.

기다림만으로 사는 사람은 굶어서 죽는다.
- 이탈리아 속담

>> 문화재 답사 후기 도와주신 에디터님의 모임 <문화재를 찾는 사람들>
(링크 : https://goo.gl/blVTSO)
* 모바일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문화재 답사 함께하실 분들은 조인해주세요.

P.S : 가입하고 싶은 모임이나 원하시는 분야가 있으신 분은 댓글 또는 쪽지로 문의주세요. 확인 후 연결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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