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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 Mar 23. 2017

팬레터

1930년대 경성에서 활동했던 이상, 김유정의 문인모임 구인회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좋은 하루입니다.
다들 오늘 행복한 시간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지난 번에 이어 국내 순수창작뮤지컬 공연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제가 소개해드릴 공연은 뮤지컬 <팬레터>입니다. '팬레터'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 가볍고 밝은 이미지의 극이 아닌 무겁고 진지한 내용의 작품이랍니다. 오늘은 뮤지컬 <팬레터>에 대한 소개와 줄거리, 공연 관련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게요. 시작하겠습니다.

뮤지컬 <팬레터>는  2015년 우수 크리에이터 발굴 지원사업인 '글로벌 뮤지컬 라이브'의 최우수 선정작품입니다. 국내 순수 창작뮤지컬로 초연으로 진행된 공연임에도 상당히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1930년대 경성에서 이상, 김유정 등의 조선 문인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경성의 문인 모임 구인회와 천재소설가인 이상, 김유정이 작품의 모티브로서 각각 칠인회, 이윤, 김해진이라는 이름으로 작품속에 표현됩니다.

작품은 경성의 신문사와 작업실을 배경으로 당시 문인들의 문학을 향한 열정, 사랑과 우정을 섬세하게 그려 독특한 분위기를 탄생시켰습니다. 무엇보다 '뮤즈'를 향한 예술가들의 열정을 담은 극적인 클라이막스는 <팬레터>의 최대 강점으로 시대와 나라를 넘어 관객들에 격한 공감을 끌어올립니다.

내용 이해를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1930년대 경성. 경성에서 잘 나가는 사업가인 세훈은 카페에서 쉬던 중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히카루라는 죽은 여류작가의 소설이 출간된다든 소식입니다. 게다가 알려지지 않았던 그녀의 정체까지 밝혀진다고 합니다.

세훈은 유치장에 갇혀있는 문인들의 모임 '칠인회'의 멤버이자 소설가인 이윤을 찾아가 그 출간을 중지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윤은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고 말하며, 히카루의 애인이었던 소설가 김해진이 그녀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까지 품에서 꺼내 자랑합니다. 세훈은 자신이 그 편지를 꼭 봐야한다고 말하며 히카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과거 세훈은 소설가 지망생이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시절, 부유한 집안으로 인해 어렵지 않게 일본으로 유학을 가 평탄한 삶을 사는 그는 자신이 글을 쓰는 것을 감추기 위해 히카루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합니다.

히카루의 글에 대중은 환호하고 수많은 전문가, 평론가들이 히카루의 이름으로 된 작품에 격찬을 쏟아냅니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던 세훈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기분을 느끼고 히카루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던 중,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소설가 김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내어 인정받고자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김해진은 히카루의 편지를 받고 그의 작품 세계에 흠뻑 빠져버리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김해진에게 인정받은 것에 세훈은 기뻐하지만 김해진이 인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히카루이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세훈은 초조해집니다. 급기야 세훈은 계속 해진에게 보내던 편지까지 예고없이 끊어버리고 맙니다.

갑자기 끊긴 히카루의 편지에 해진은 크게 낙담하고 칠인회의 멤버 이윤은 해진을 위해 히카루의 정체를 추리하려합니다. 이에 세훈은 크게 화를 내고 해진은 세훈이 히카루가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한편 세훈은 히카루라는 필명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글을 써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습니다. 되려 히카루의 정체성은 세훈 본인보다 커져 서서히 그를 잠식해들어가고 있었고 이에 세훈은 서서히 병들어 갑니다.

히카루의 편지가 끊긴 후 김해진은 어떤 글도 써내지 못합니다. 그에게 있어 히카루는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한 뮤즈였고 그렇기에 그는 날이 다르게 침체되어 갑니다. 더구나 해진에게는 남모를 불치병이 있어 그의 수명은 앞으로 몇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입니다. 죽기전에 꼭 자신을 기억시킬 역작을 만들고 싶은 해진. 이를 보다 못한 세훈은 해진을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하게 되고, 그런 세훈의 마음과 달리 여전히 히카루의 정체를 찾으려 하는 이윤에게 해진은 히카루의 정체를 찾지 말라고 얘기하며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치닫습니다.

모티브는 구인회, 이상, 김유정이라고 합니다. 김해진이 김유정, 이윤이 이상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허나 공통점이라고 할만한 것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이상에게서는 일부 전문가들에게 좋지 못한 평론을 받은 점과 불량선인으로 체포된 점, 김유정이 죽은 후 얼마되지 않아 죽은 점 정도만 따왔고 김유정 역시 자신이 연정을 품은 장녹주를 스토커질하고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다고 모욕까지 한 부분, 불치병으로 요절한 정도를 비틀어서 가져왔습니다.

뮤지컬 <팬레터>는 2016년 10월 8일에 초연을 시작하여 2016년 11월 5일 동안 한달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공연이 진행되었지만 그 결과는 예상이었습니다. 순수창작극에 시대극, 초연이라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평균 좌석 점유율 80%를 상회하는 기록을 세우고, MD상품이 전부 동나는 등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공연 중 아쉬웠던 점은 작가 이상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이윤의 역할 및 비중이 부족했던 부분과 책상과 종이, 책, 펜 등으로 단순히 꾸며진 무대를 들겠습니다. 원고지 모양의 조명과 그림자를 활용한 무대 뒤편 등은 문인이 주가 되는 작품의 분위기를 연출하는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나치게 넓은 무대에 비해 횡해보이는 미장센, 구인회를 모티브로 만들어졌지만 실제 극을 이끌어가는 것은 순수창작된 가상의 인물인 세준과 히카루라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김종구, 이규형, 문성일, 김성철 등 대학로 무대의 손꼽히는 실력파 배우들이 캐스팅되었고 배우들은 기대 이상의 호연을 보여 극의 대사, 넘버의 가사를 완벽히 소화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검열과 제재를 받으면서도 문화와 예술의 사수를 위해 분투하는 문인들의 모습에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중국, 일본 공연 관계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은 만큼 해외 진출을 노리는 '글로컬 뮤지컬 라이브'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리라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봅니다.

거울 속 너는 글자를 먹고 자란 나의 반쪽
누구도 나를 사랑한 적 없어 나조차도 나를 싫어해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넌 나의 작고 달콤한 늪 당당하고 아름답고 사랑받는 꿈

거울 속의 반전된 이미지, 나는 너의 다른 이름
나를 악수하고 진찰할 수 없어도 섭섭해하지마
내가 다른 세계를 열어줄게
난 너의 작고 달콤한 늪 당당하고 암답고 사랑받는 꿈
넌 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도 나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그 사람 눈에 나는 없어 햇살 속 빛나던 그 모습
내가 사랑하던 따스함 이젠 찾을 수 없어

얼마남지 않았어, 그는 죽어가거든
달콤한 끝을 만들어 보자, 사랑해서 죽은 두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이 그걸 바랄까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이런 결말을 위해 글을 써온게 아니야
내가 쓰려던 건 이런 글이 아니야
고통뿐인 영광 필요없어
우린 하나야
나 없인 안돼
다시는 아무 것도 쓸 수 없다 해도
아 나의 마음아 이대로 눈뜨지 말아줘
안녕 나의 빛 나의 악몽
거욱 속의 목소리, 구해주던 손, 나의 반쪽.
- 세훈 / 뮤지컬 <팬레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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