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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디아 Oct 24. 2021

엄마 답지 않은 엄마


육아가 체질이라며, 아이들과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는 지인들이 있다. 2명도 아닌 3명, 4명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인스타그램에 너무 예쁜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너희가있어행복해#내삶의이유#셋낳길잘했어#너희들 없었으면어쩔뻔


이 같은 해시태크를 걸고 올라오는 피드들을 보며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왜 안그래?"

"너는 네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니?"

"세상에 가족보다 더 소중한게 어딨어"


나도 엄마는 원래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엄마는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중학생 때 부스럭 부스럭 하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보니 늦은 밤 엄마가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키우던 고양이 마냥 조심스레 엄마의 뒤를 따라 나갔고 낯선 아저씨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 타 유유히 떠나가던 엄마의 뒷모습을 숨어서 지켜보았다. 그 때 나는 알 수 없는 배신감과 분노가 차올랐다. 그리고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그래도 되는거야, 엄마가 엄마 다워야지. 실망이야." 엄마는 문자에 답이 없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은 안난다. 그 때 그 장면만 영화의 한 장면 처럼 기억이 날 뿐.


집을 나간 아빠는 1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고 엄마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19살에 나를 임신해서 20살에 엄마가 되었던 엄마. 생각해보니 그 때 늦은 밤 집 밖을 나서던 그 때가 엄마가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때이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엄마였다면 나는 어땠을까. 나는 그때 엄마에게 어떤 엄마를 기대했던 것일까. 아빠는 집을 떠나고 없지만 그래도 끝까지 아빠를 기다리며 가정을 지키는 아내의 모습, 엄마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지금 그것이 얼마나 가혹한 일이었을지... 생각하는 것도 싫을 정도다. 그때의 나는 그저 나 중심적이었을 뿐이었다. 이혼한 엄마아빠를 둔 내가 되는 것이 싫었다.



우리 엄마는 다른 집 엄마와는 좀 달랐다. 도시락을 싸다니던 시절 다른 집 아이들은 따끈따끈한 밥에 국물까지 따로 담아 정성이 그득한 반찬들을 싸왔다. 내 기억으로는 나는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신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마른 밑반찬에 간혹 아침에 스스로 소세지나 햄을 구워서 반찬통에 담아 갔던 것 같다. 김치는 항상 시장에서 내가 사왔었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은 지각을 할 것 같아 도시락을 싸지 않고 매점에서 빵을 사와서 먹다가 체할 뻔 한 적이 있다. 엄마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점심시간을 들키지 않으려 급하게 먹었던 탓이었을까. 나는 그 후로 밥대신 빵을 먹는 것이 정말 싫다. 소풍 갈 때도 엄마가 김밥을 직접 싸주신 적이 없다. 늘 집 앞 분식집에서 김밥을 포장해서 갔었다. 다행히 김밥은 아직도 좋아한다.



엄마는 자주 나에게 심부름을 시켰는데, 항상 그 시간이 두려웠다. 뭘 하나 빠뜨리거나 잘 못사면 정말 혼이 많이 났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심부름을 다녀왔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또 청소를 할 때마다 "어지르는 사람,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냐"는 말을 던지면서 나에게 늘 걸레를 쥐어주었다. 엄마를 돕는 답시고 설거지를 하고 나서도 뒷정리를 제대로 안했다고 많이 혼이 났었다. 가끔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보다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보통 엄마라면 설거지를 하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청소도 기꺼이 맡아서 해주지 않나? 라는 생각도 했지 아마.



초,중,고 시험기간이 언제인지 성적표는 어떻게 나왔는지 전혀 관심이 없던 엄마는 나의 대학 진학도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학비가 없는데 대학교를 꼭 가야겠냐고. 중, 고등학교를 장학금으로 다니던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엄마는 이때까지 딸 입학금도 모아둔게 없어? 중학교, 고등학교도 장학금으로 다녔는데, 엄마가 도대체 나를 위해 해준게 뭐야?" 결국 지인에게 돈을 빌려 입학금을 내고 국가장학금대출을 받아 지인에게 입학금을 갚는 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엄마의 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발견한 날을 잊지 못한다. 지금이야 여성 흡연자가 많이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여성 흡연자가 흔하지 않았던 분위기였는데 버젓이 엄마의 가방에 담배라니.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참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우리 엄마는 엄마 답지 않아.'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린시절부터 동화에서 봐왔던, 책에서 읽었던, 주변 친구들에게서 봤던 엄마의 모습과는 참 많이 달랐다. 우리 엄마는 말그대로 엄마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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