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et Oon @클락키 in 싱가포르
Violet Oon
멋집이면서 맛집이길 바라는 건, 금발에 미녀면서 성격도 착하길 바라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이곳은 그런 집이니까.
술집과 식당이 빼곡히 들어선 클락키의 입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딱 보기에도 예전 싱가포르의 과도기적(서양과 동양의 건축이 혼재된 특유의 동남아 전통 양옥 같은) 무드가 그대로 남아있는, 혹은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인테리어가 고풍스럽다. 개인적으로 이런 곳을 갈 때마다 혼란스러움이 몰려오는데, 이것은 마치 고종이 정관헌에서커피를 홀짝이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릴 때의 마음과 같다. 혼란스러우면서 동시에 호기심이 생긴달까. 한 세기와 다음 세기의 접점에서 두 개의 문화가 미묘하게 붙어있는 이질감. 20세기 만을 겪어온 나로서는 상상해볼 수밖에 없는 지난 시절을 마주친 느낌. 가끔 동남아에서 그 시절 부호들이 가장 먼저 신식 문물을 받아들이고 개조했을법한 부티나는 양옥 같은 느낌이다.
이러쿵저러쿵 했지만 결론은 멋스럽다. 어느 나라 어디서든 볼 수 없는 현대적인 전통 로컬 느낌이랄까. 멋집은 확실해. 멋진 바인데 맛있는 음식도 파는 곳 같아.
이곳의 이름 옆에는 ‘satay & grill’이라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있다.
맥주 좋아하는 이라면 불맛 나는 달콤한 사태를 어찌 모른 척할 수 있으랴. 비즈니스 출장이면서 욕심은 많아서 굳이 뭘 먹고 온다면 첫째가 칠리크랩이요, 둘째가 사태로 이미 내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더랬다. 비즈니스 출장이면서 온갖 맛집을 식사마다 3 지망까지 준비하는 가이드 패치 장착한 브랜드 담당자가 말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저녁을 이곳으로 예약했더랬다. 내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리오. “주문은 이것저것 시켜서 다 같이 나눠먹을까 봐요. 알아서 시켜주세요. 다만 저는 맥주 한잔 부탁드려요.”라고 말하자 암요 암요, 라는 끄덕거림이 오갔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너무도 당연하게 보기 좋게 그을린 구릿빛 그녀 같은 타이거 맥주가 내 자리에 아름드리 놓여있었다.
타이거 맥주의 맛을 논하자면 아무 맛도 없어서 개운하고 깔끔하다. 여기에 톡 쏘는 탄산의 강도는 세다. 물처럼 벌컥벌컥, 몇 잔을 마셔도 개운함이 여전하다. 과연 더운 나라 맥주답다. 많이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보통 쌀쌀한 나라는 밀맥주나 묵직한 도수 높은 맥주가 많고, 덥고 습할수록 탄산음료 같은 라거 종류가 눈에 띄게 많다. 향이 강하고 묵직한 맥주는 먹다가 마음이 무거워져(는 무슨, 향에 질려) 쉬이 많이 마시지 못한다. 나에게 앉은뱅이 술은 이런 류의 라거 종류다.
타이거 맥주의 맛은 어느 가게에 가도 동일한 생맥주 맛이지만 굳이 이 가게를 논하는 것은, 이렇게 고급지고 두툼하면서 본연의 육질이 살아있는 치킨 사태는 난생처음 먹어봤음에 굳이 말해야겠다. 여기 좀 짱임. 내가 지금껏 먹었던 사태 혹은 닭꼬치들은 비둘기가 아니었을까 의심할 정도로, 닭은 혈기왕성한 것을 지금 막 잡은 것처럼 탱글탱글했다. 흡사 두께는 두툼한 돼지고기였다. 신기하게도 돼지고기 사태는 포를 뜨듯 얇게 나와서 놀랐다. 닭과 새우, 돼지고기(실은 소고기를 시켰는데 돼지가 나옴)를 시켰으나 우승자는 단연 결승전할 필요도 없이 닭이었어. 개인적으로 갔으면 한판 더 시켜먹었을 거야. 아니, 싱가포르에 다시 갈 일이 있으면 이걸 먹으러 단걸음에 클라키를 택시 타고 갈 거야. 이는 싱가포르의 차원을 넘어서, 지금껏 먹어본 사태, 아니 꼬치구이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었다. 함께 나온 소스가 무의미할 정도로 이미 고기에는 달콤한 소스가 차분히 온몸에 적셔져 있었으나, 뭔가 찍어먹길 좋아하는 한민족 여인답게 소스와 함께 자셨다. 모두의 엄지를 치켜 세우게 한 부분은 넉넉하기 그지없는 소스의 양이었다. 눈치 보지 않고 한스쿱 크게 떠도 여전히 바닥을 보이지 않는 공깃밥 사이즈의 소스에 다들 흐뭇해했더랬다. 사태의 양 또한 옹졸하지 않았다. 혼자 먹었더라면 먹다가 포장을.. 연약한 척 한번 해봤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식사를 하고 시키기에는 양이 많고, 맥주와 함께 먹으려고 사태를 골랐다면 한 끼 식사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
사태에 대한 사랑고백에 빠져버렸다. 나원참. 맛있고 멋있고 찾기 쉬운 그곳의 한 가지 흠이라면, 가격이다. 맛있으면서 인테리어 빼어나고 가격도 나이스 하길 바라는 건, 금발에 미녀이면서 성격도 착한 데다가 그녀가 나를 좋아하길 바라는 거랄까. 싱가포르 비어로드이자 테이스티 로드, 미션 석세스~
Add_ 3B River Valley Rd #01-18, Clarke Quay Singapore 179021
Monday to Sunday_ 6 pm-12am (저녁 시간 중심의 가게니, 시간 꼭 챙기고 가시길)
Burget(싱가포르 환율 830원대)_ satay 14~20S / Tiger Beer 13S (같은 가격에 SingaporePale Ale도 있으니 이것도 챙기시길)
여러 권의 로컬 음식 책을 발간한 ‘바이올렛 옹’이라는 셰프의 가게로, 현대적이면서 고풍스러움을 간직한 퓨전 스타일의 가게. 이곳은 그릴 바 중심의 가게고, 다른 곳 2군데 더 있는데 그곳은 레스토랑 스타일이라 사태 요리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으니 참고할 것.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맥주. 1932년 처음 출시된 싱가포르 최초의 맥주로 “타이거(맥주)를 위한 시간”이라는 유명한 광고 문구와 함께 사람들에게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알코올 도수 5%로 맛은 가볍지만 청량감이 있다(<-더운 나라 출신 맥주들의 특징이죠). 타이거 맥주는 매우차게 마시는 것이 좋다. 기다란 원통형의 전용 잔에 따라 마신다(<-위의 사진 참조). 출처_한눈에 보는 세계맥주 73가지 맥주 수첩(이기중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