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떤 하루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거야.

by 피스타치오 재이

현장 취재는 나가지 않지만 다급하게 요청하는 경우에는 응하기도 한다. 이번 취재가 그랬다. 일반인을 취재하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많이 해보지 않은 사람을 취재하는 경우에는 무엇보다 긴장을 풀어주고 친밀한 분위기를 만들어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그만 늦어버렸다.

덕분에 그가 아닌 내가 긴장해버렸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이 더운 날씨에 휴게소까지 오시느라 기자님이 수고 많으시죠. 천천히 조심해서 오세요.”

점잖고 예의 있는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다. 목소리가 주는 호감이란 생각보다 꽤 크다. 거기에 젠틀하기까지 해서 이미 홍보 담당자와 나는 그 목소리에 깜빡 넘어가 인터뷰를 하지도 않고 기사를 쓸 뻔했다.

“인터뷰는 30-40분 내외로 진행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 촬영할게요. 사진 촬영부터 하면 긴장이 덜 풀려 어색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능수능란한 척하며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인터뷰는 한 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유도하지 않아도 좋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나는 그것을 집중해서 듣고 있음을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이럴 때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얘기 듣는 걸 퍽 좋아한다. 인터뷰할 때면 그 점이 무척이나 유리하다고 느껴진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다양한 환경에 있는 다양한 위치의 사람들을 만난다.

다들 열심히 살고 있다.

오늘 만난 이들도 자신의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좋은 기회가 왔음을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그 기운을 나눠주며 살고 있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에 최선을 다하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끝내고 인사를 나누는데

핸드폰에 꽂을 수 있는 <작은 선풍기>를 조심스레 나에게 건넨다.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는데도 물러서지 않는다.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은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감사를 전했다. 섬세한 인터뷰이는 혹여나 작동이 안 될까 내 핸드폰에 꽂아주고는 점검까지 마쳤다.

“제가 뭐라도 챙겨서 왔어야 했는데,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고, 선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사무실이 너무너무 덥다고 하소연하는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나 방금 인터뷰이에게 선풍기 선물로 받았는데 그거 너 줄까?> 하고 묻자

<아뇨 괜찮아요. 선배,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아요 ㅋㅋ 맨날 뭘 줄라고 해.>

나도 한번 좋은 사람인 척해보고 싶었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