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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졸업하게 된 막내에게

이제 사람 구실 좀 하게 되었구나. 졸업 축하한다.

by 피스타치오 재이

<막내에게>

졸업 축하해. 드디어 아빠는 너를 졸업시키고 아빠의 드래곤볼을 모으게 되었구나. 아빠의 오랜 소망이었던 우리 셋의 대학교 졸업 사진말이야. 너의 졸업과 동시에 아빠의 소망이 이루어진 날이구나.


너를 응원해. 뭐가 되었든 너는 뭐가 될 거야. 뭐라도 되겠지. 그냥 너도 믿으면 돼. 왜냐면 우리는 똑같은 배에서 낳아졌고, 같은 것을 가졌기 때문이야. 나는 얼마 전에 나에게 무언가 있다는 확신이 생겼어. 그것은 모두 다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어.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었어. 일반적으로 다 갖고 있지 않아서 내가 가진 것에 대한 확신이 없어 혼란스러웠던 거야. 정확히는 나도 몰라. 하지만 정확하지 않아도 돼. 그건 중요치 않아. 왜냐면 점점 더 정확한 모습으로 만들면 되거든. 그럴 자신 있으니까. 그리고 너에게는 정확하지 않다고 해서, 혹은 내가 원하는 결말대로 안된다고 해서 너를 원망하거나 독촉할 생각은 없거든. 이 믿음은 네가 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던 것이야.

그러니 네가 가졌으면 하는 것은 부담이라는 짐이 아니라 너의 미래 설계도였으면 좋겠어. 언젠가 찾아오게 될 미래에 대한 설계도를 갖고 있어야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을 원하는 쪽으로 설계해 나갈 수 있겠지. 그래서 나는 네가 지도 말고 설계도를 지녔으면 좋겠어. 지도를 따라갈 필요는 없으니까. 네가 만들어가면 돼.

That’s it. 그뿐이야.


나는 언니가 바보같이 나를 믿고 내 말에 속아 나에게 돈을 줄 때마다 언니가 미련하고 바보 같다 생각했거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예전에 아빠가 나에게 보여준 모습과 똑같은 것이었어. 동일한 형태의 무엇이었어. 지금은 내가 너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걸 알았어. 그러니 우리는 모두 똑같은 모습인 거야. 내 안에 있는 무엇을 그들이 본 것일 뿐이고,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을 나 역시 너에게 보았을 뿐이야. 그래서 결국은 동일한 결과를 낳게 된 것이지. 졸업 축하해. 나의 동생아. 현실이 내 맘 같지 않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 원인이 외부에 있었으면 좋겠다. 내 게으름과 늦장이 빚은 결과라면 비관적인 현실은 결국 내가 만든 것이 되잖아. 너랑 나에게는 부지런함이 결여되어 있으니 항상 그걸 조심해야 돼.


이건 선물이야.

<5년 후 나에게. QnA>

매일 무언가를 적는다는 게 바보 같을지도 모르지만 더 바보 같은 건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 기억조차 안나는 것 아닐까.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살고, 자려고 누우면 오늘 참 쓰레기 같은 하루를 보냈구나. 그 많던 시간을 모두 버렸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게 더 바보 같은 건 아닐까.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하는 것들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그들에 비해 게 너무 적다는 걸 알았어.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에 비해 하드용량이 현저히 낮은 거야(이거 적절한 표현이니?) 예전에 적은 걸 다시 봤는데 이게 내 생각인건지 내 가 어디서 보고 적은 건지 도저히 모르겠는 황당한 일도 있었어. 이게 말이 되는 얘기냐고. 결론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거였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안 드는 거야. 문제는 그 글이 꽤 마음에 들었다는 거야. 예전에 끄적였던 메모에서 나중에 굉장한 단서를 발견할 수도 있는 거고, 몇 년 후에는 전혀 다른 생각들로 전혀 다른 사고를 하고 있을 수도 있어. 그래서 나는 메모와 일기는 삶의 중요한 단서라고 생각해. 5년을 똑같은 주제로 적는다는 게 참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데, 과연 나를 위해 하루에 5분씩 5년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더라. 나 역시 나를 위해 그렇게 못한다고 지금 벌써 생각하고 있잖아. 그래서 내 것 사면서 너꺼도 같이 샀어. 솔직히 말하자면 네 거 사면서 내 거도 산거지만. 너의 졸업을 기념하며 한번 써보는 건 어떨까. 매일 안 써도 되고 적어도 그 안에서는 솔직하게 나를 적어도 되는 거니까.

언젠가 얻을 미래 설계도에 이 다이어리가 작은 단서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5년 후에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함 보자.

현실은 힘들지언정 정신은 더 멀고 밝은 곳을 향해 있자. 그리고 그곳으로 날아가면 돼. 그뿐이야. That’s it. 어려울 게 없으니이제 가면 되겠다. 그렇지? 상반기에 원하는 일 이루고, 함께 유럽 여행 가자. 어때? 좋은 포상이 될 거야. 그럼 안녕. 너의 작은 누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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