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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낮의 기억

소란스러웠던 여름이 지나고 나니 얄밉게도 그 더위가 그리워졌다.

by 피스타치오 재이

#. 01

매미가 운다.

잠이 스르륵 사라지자마자 덥디더운 공기보다 찌르르-매미가 우는 소리가 귓가를 먼저 때렸다. 지독하게도 우네, 발악하는 듯, 배가 찢어질 듯 운다. 저렇게 격렬하게 울어도 되는 건가. 울지 않으면 속이 터질 것 같아서 그런 건가, 아니면 매미는 귀가 먹어서 자기가 얼마나 시끄럽고 날카롭게 우는지 자기는 모르는 걸까. 엄마와 아빠는 가까이 있는 나에게 말할 때도 멀리 있는 사람 대하듯 데시벨을 높였다. 그들의 귀에는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가늠이 안된다.

뜨거운 계절이 시작되었다. 매 해 겪는 열기임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 올해가 가장 더운 것 같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아지랑이 피어나는 열기가 확-하고 몸을 덮는다. 내 살임에도 맞닿는 것마저 피하고 싶다. 이렇게 뜨겁고 나면 끝이 나겠지. 모든 절정을 맞이하고는 이내 식는다. 매미도 저렇게 지독히 울고 장렬히 전사하겠지.


#. 02

바르셀로나 그 게스트 하우스

그리고 나무로 된 마루.

오갈 데 없는 나를 받아준 곳이었다.

그곳에는 세월이 흔적이 느껴지고 애써 닦은 정성의 흔적이 묻어나서 뭔가 고즈넉한 공기가 있었다. 거기에 식물이 뿜어내는 싱그러움이 더해져 마치 어릴 때 놀러 갔던 시골 친척집 같은 냄새가 스몄다.

누군가의 온기로 정성스레 정리해 놓은 집.

사람의 온기인가.

짐을 푸는데 집이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모텔이나 호텔과는 다른 공기. 그 딱딱한 느낌과는 달랐다. 어떤 집은 살아있고, 어떤 공간은 공허하게 사람을 맞이한다.

내가 있던 그곳은 아침이면 씻고 밥 먹고 준비해서 나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점심이면 밖에서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와는 다르게 고요하고 적막해서 더 크게 느껴지는 거실.

저녁이면 두런두런 둘러앉아 맥주 한 잔 기울이는 시간이 찾아오는 곳.

나는 그곳에 뭘 두고 왔길래 이렇게 정겨운 기억이 남았을까.

생각해보면 그곳에 있을 때 나는 부자연스러웠고, 나중에는 유랑 생활이 고단해 ‘이제는 한국에 가도 되겠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베란다에 있던 큼지막한 식물들과

갈색의 마룻바닥이 생각하자, 울컥 할머니 집처럼 그리워져버렸다.

별거 없이 커다랗기만 한 그 공간에서 낮잠 한 숨 자거나 노트북을 두드리고 싶다. 밖의 햇빛이 너무 쨍해서 조금은 어둡게 느껴졌던 그 거실에서.

나는 내 온기를 조금 떼서 그곳에 두고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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