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은 본래 그렇게 더러운 것만은 아니란다

내가 만난 아이들

by 고요의 향기

그날은 소변검사를 하는 날이었다.

해마다 아이들은 학교나 병원에서 소변검사를 하게 되어 있다. 소변검사를 왜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지만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바람 소리처럼 스쳐가는 소리에 불과하다. 다시 한 아이마다의 귀에 소변검사를 왜,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거나 묻는 아이의 물음에 하나하나 답해주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다시 전체를 향해 알려준다. 저학년 아이들에게 칠판 앞에서의 설명이 귀에 쏙 들어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누면서 소변 검사키트를 적시고 가져오는 일인데 학교에서 소변검사가 처음인 2학년 아이들에게는 그 과정이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누군가는 검사키트에 오줌을 묻히지 않고 조준을 잘못해서 이미 다른 곳으로 눠버려서 다음 오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또 누군가는 오줌이 손에 묻을까 봐 찝찝해서 화가 나기도 했다. 화장실이 몇 칸 되지 않은데 여러 아이들이 함께 처리해야 해서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아이들도 꽤 있었다. 물론 너무 많이 적셔서 물인지 오줌인지 알 수 없는 액체가 뚝뚝 흐르는 아이도 있었다.


그중에서 오줌이 찝찝해서 이 검사 자체에 신경이 쓰이고 화가 나는 아이들도 꽤 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속으로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보리는 얼굴도 울그락불그락하며 온몸으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보리야, 무슨 일이니?"

'이걸 찝찝하고 더러워서 어떻게 하냐고요?"


"보리야. 오줌이 본래 그렇게 더러운 것만은 아니란다. 오줌은 우리 몸속에 있는 물이 몸 밖으로 나온 것이야. 하늘에 있는 물은 구름 속에 있을 수 있고 그 구름에서 땅으로 내리는 물은 비이고, 또 흘러가는 물은 강물이고 바다일 수 있는 것처럼."


화가 나 있는 보리에게 이 말이 쉽게 들어갈 리는 없다.

'왜 꼭 그렇게 생각해야 하느냐'라고 항의를 하고 더러운 것을 더러워하는 것이 왜 잘못된 일이냐고 화를 냈다. 보리는 예상했던 것처럼 화장실에 다녀와서 자기 번호에 소변검사 키트를 붙이고 나서도 책상에 앉아 씩씩거렸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학기 초에 기초설문조사서에 '학교에서 아이가 배웠으면 하는 점'에 보리의 부모님이 적은 것이 떠올랐다. '우리 아이는 고집이 아주 셉니다. 자기 생각과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니 나쁜 버릇을 고쳐달라'는 요청이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끔 수업 중에서 친구가 자기와 다른 생각을 말할 때 과도하게 큰 소리로 짜증을 내는 경우가 있거나 간혹 쉽게 울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기를 조금 기다렸지만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듯해서 보리를 불러서 불편한 마음을 물어주고 다시 말해 주었다.

"보리야, 오줌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에 좋을까? 아니면 오줌은 본래 그렇게 더러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내 마음이 더 편안할까? 예전에는 우리가 눈 똥오줌을 거름으로 만들어 다시 밭으로 보내기도 했단다. 그래서 다시 우리가 먹는 음식으로 먹었지. 지금은 똥오줌이 어떻게 어디로 보내지는지 같이 알아볼까? "


우리 몸에 있던 똥과 오줌이 화학처리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결국 다시 농업용수로 재활용되거나 배출되어 바다로 흘러간다는 것을 보리는 알게 되었다. 농업용수로 재활용되거나 바다로 흘러간다고 해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도. 보리가 이 이야기를 다 이해한 것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을 거쳤다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집에 갈 즈음에는 보리의 얼굴이 다소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오줌이 더럽지 않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들어본 적이 없어서 짜증을 냈습니다. 이제부터는 새롭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자신이 한 일을 스스로 돌아보거나 반성을 하면서 마무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보리는 자기가 짜증 낸 일을 스스로 마무리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아이가 더럽다고 여겨지는 것이 어디 오줌뿐이겠는가. 더럽다고 생각되는 그것이 본래 더러운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자리에서 어떤 상황에서 더럽다고 여겨지는 그런 옷을 입고 있을 수도 있지만 본래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래야 스스로 자기가 피하고자 한 그 더러움에 갇혀 고통의 피해를 입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생각 너머로 마음을 열어둔다는 것이 그 자체로 스스로를, 그리고 주변을 살리기 때문이다.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면 내 마음속에 여전히 보리는 고집을 고쳐야 하는 막무가내인 친구였을 텐데 그 한 마디로 보리는 스스로 반성할 줄 아는 친구로 바꿔져 있었다. 아직 순하지만은 않은 봄도 적응하느라 꽃샘추위로 용틀임을 할 때, 그렇게 우리 고집 센 보리도 새 선생님과 새 친구들에 적응하느라 애를 썼던 날이었을 것이다. 보리는 그렇게 힘겨운 봄을 지나 보내고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느 새 고집을 찾아보기 어려운, 자기 생각을 진실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교사나 부모인 우리 역시, 고집 센 보리가 본래 그런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상황에 따라 일어난 어떤 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도리어 아이를 그렇게 바라보는 어른의 시각이 고착될 경우, 더 위험할 수 있다. 어른 역시 아이를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 너머로 마음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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