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혼자 유자녀, 육군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하다.
나는 창업을 해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군대에 가게 되었다. 당시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가는 게 무척 아쉽기도 했고, 현업으로 돌아갔을 때 감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이까지 있는 상태에서 군입대를 하려니 정말 막막했다. 훈련소에 들어가는 날 토끼 같은 아이와 아내를 두고 가니 눈물이 펑펑.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어찌할까 했던 걱정들은 결국 시간이 지나 과거가 되었다. 군생활을 돌이켜보니, 나는 군에 있는 동안 강약점을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고 인생 제2막을 열 수 있었다. 내가 군대에서 얻은 것들을 하나씩 나열해보고자 한다.
1.ADHD 발견에 도움
요즘 군대에서는 마음이 아픈 혹은 정신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많이 입대를 한다. 병자원의 감소로 인해 현역복무 적합자 커트라인을 낮춘 탓도 있겠지만 시대가 변해 마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이전 세대보다 늘어난듯하다. 이를 인지해서 부대에서도 다양한 심리상담, 마음 챙김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나도 별생각 없이 부대에서 위탁한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근데 왠 걸 프로그램이 너무 알찼다. 8주 동안에 상담을 통해 내 인생 전반을 돌아볼 수 있었다. MMPI2 진단검사를 통해 타고난 기질에 대한 이해도 할 수 있었다. 내 삶을 힘들게 하는 KEY-WORD가 무엇인지도 상담하면서 새로이 알게 됐다. 이때는 ADHD인지 몰랐는데 ADHD를 찾는 데에 물꼬를 터주었다. 왜냐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2.가정에 집중하기
군입대 이전에 창업할 당시에는 정말 많이 일했던 것 같다. 주 7일 일하다가 아이가 생겨서 겨우 주 5일 일하게 되었다. 주중에는 아내가 첫째를 전담해서 맡아서 키우고 아침 8시 30분부터 출근하여 저녁 7~8시에 퇴근하기를 반복했다. 일 욕심이 많아서 가정에 신경 쓰기보다는 일을 더 열심히 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가정에 집중하기는 어려워지고 더 일에만 몰두했었다. 아내와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육아에 관해서는 더욱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상근예비역으로 복무 중에는 9 to 6 정확하게 출퇴근을 할 수 있었고 아이가 있어 퇴근을 조금 일찍 시켜주기도 했다. 4~5시면 집에 와서 아이를 돌보고 아내를 케어할 수 있었다. 군대 업무는 크게 창의력을 요할 건 없어서 스트레스도 덜 했다. 업무에 기인한 압박감도 덜하고 시간도 더 여유로워져서 군입대 전보다 가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
3.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구분하기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에 놓이다 보니 내가 진짜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군대 있을 때 때는 여행과 이동에 제한이 생긴다. (출퇴근하는 상근예비역이라도 어딜 가든 보고해야 하고 주말에도 미리 휴가를 잡지 않으면 여행을 갈 수 없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고역이었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도 상당히 힘들었다. 사업할 때는 주도적으로 일을 했었는데 군대에 오니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위 사례를 비롯해 좋고 싫음에 대해 느낀 점들이 있다면 아래와 같다.
<정말 좋아하는 것>
1. 자유롭게 이동하고 여행하는 것
2.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것
3.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
4.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책임을 지는 것
<정말 싫어하는 것>
1. 의사에 상관없이 주어진 일을 하는 것
2. 수동적이고 반복적일 일을 하는 것
3. 남들이 시켜서 하는 것
4. 부가가치 창출이 작은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더 명확히 알게 되었다. 더 명확한 나의 생각을 알게 되어서 자기 객관화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4. 60권의 독서
부대에 있을 때 남는 시간을 활용해 다양한 책을 접하였다. 뇌과학, 마케팅, 경영, 에세이, 부동산 등 읽고 싶은 책은 모조리 읽었다. 그것도 조용히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군대라는 환경이 책 읽기에 이렇게 좋은 곳인지 몰랐다. 마침 군수첩에 독서노트를 적는 란도 있어 읽을 책들을 하나씩 정리해보기도 했다.
군인신분으로 온라인 독서모임에도 참여했었다. 최영웅 소령님이라는 분께서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을 매일 새벽에 하고 진행하고 계셨다. 인스타를 통해 알게 되어 나도 주중 새벽에 줌으로 새벽독서를 하였다. 최영웅 소령님께서는 독서모임을 하며 책도 쓰셨는데, 기회가 되어 광화문 교보문고 저자 출판회(히어로 이펙트)도 다녀올 수 있었다. 사회에서보다 군대에서 오히려 책과 더 가까워졌고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5.선택과 집중하는 법.
네가 선택과 집중 못하면 군대가 강제로 하게 해 줄 수도 있다. 군대는 나를 강제적으로 사업과 가족과 친구들에서 완전히 분리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인간관계도 정리하게 되었고 뭣이 더 중한지 옥석을 가릴 수 있게 되었다. 욕심이 많았던 나이고 지금도 욕심이 많지만, 군생활은 선택과 집중의 가치를 알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선택과 집중이 어렵다면, 극단적인 상황을 한번 만들어보기를 바란다. 모든 게 제한되는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더 중요한 것을 고를 수 있고 불필요한 요소들은 제할 수 있다.
이상으로 군대에서 얻은 것들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군생활에서 얻은 것들이다. 우리는 모두 군인이거나, 군인이었거나, 군인의 가족이다. 이 시간에도 우리나라를 지키는 대한민국 국군장병 여러분들 파이팅이다! 진짜 고생이 많다.
상근예비역 제도란?
나는 다소 특수하게 군생활을 경험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군입대를 했다. 대한민국에서는 유자녀 미필자인 경우 상근예비역 복무가 가능하다. 상근예비역은 똑같이 육군으로 분류되지만 집에서 부대로 출퇴근을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부터 아이가 있는 미필자를 배려해서 상근예비역으로 복무할 수 있게 법이 개정되었다. 차후 상근예비역 제도에 관해, 내가 복무했던 상근예비역에 관해 따로 글을 써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