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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Aug 11. 2022

<우두커니>의 사이에서

최근 ‘우두커니’라는 두 개의 시를 읽고 두 <우두커니>의 사이에서 나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누이와 세월, 구상과 추상, 손에 잡히는 것과 잡히지 않을 것 사이의 차이는 있지만, 사는 일이란 그 ‘우두커니’의 짧은 시간 속에서 있고, ‘시’라고 하는 것은 ‘우두커니’의 시간 속에서 잡힌 찰나가 아닐까?  비극의 반지하방 앞에서 사진 찍으려고 앉아 있는 우두커니는 말고.


나도 <우두커니> 이런 걸 끄적인 적이 있었네. 그래서 눈에 이 시들이 눈에 띄었나 보다.


"그만 살아야겠다 모지게 마음먹고

살기 위해서 매일매일 입었던

옷장의 해진 양복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풀뿌리처럼 자라는 새끼들

생각하고 살아야지

양복을 꺼내며 우두커니 서서

침만 꼴깍 삼킨 적이 있었다"


누이가 문밖에 서 있다

희미한 어둠이 누이 몸을 칭칭 감고 있다

하늘나라에서도

누이는 새처럼 가벼워지지 못한 것일까

날개가 없다


오늘은

누이의 첫 기일

낡은 소파 위에

태아처럼 웅크리고 죽은 누이의 마지막을 떠올리다가

울컥,

슬픔이 나를 통과했네


문밖에

우두커니 서서

문안의 나를 바라보는 누이야


악착같이 달려들던 우울, 자꾸 넘어지기만 했던 외길, 외로움의

수렁 따위는 이제 더는 누이 것이 아닌 것을,


누이가 눈사람처럼 녹고 있다

머리부터

천천히 ……


내일은

어린 조카 손을 잡고

외딴 숲 누이의 무덤에 꽃을 주러 가야겠네

누이는

누구보다 젊고 예뻐서.

                 <임경묵, 우두커니> (시집 검은 앵무새를 찾습니다)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라질 기억을 며칠에 걸쳐 안고 골몰했던 것과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애써 지우려는 안간힘 사이


몸에서 밀려나 한 움큼의 이물질을 닦으며

삶도 무더기로 엉켜 있었던 것이다


26개의 염색체가 몸 안에서 살아나

먼지를 쓸어내 삶이

무심으로 지나친 선명한 얼룩이 되어 남아 있었다

구멍 난 속옷에 햇살이 드나드는 아침

낡은 것이 따뜻했던 기억으로 되살아나

먼지를 품은 빛이라 뒤늦게 알았을 때

몸이 먼저 반응하며 절정을 이룬다는 걸 알았을 때


뜨락에 저물어가는 봄꽃처럼

저만치에,

우두커니 어둠에 가려 살아나는 흔적이 있었다

                               <최규환, 우두커니> (시집 동백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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