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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Jan 12. 2024

6. 김정원의 시, 위로받은 시편들

김정원 시집을 읽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시집을 어떻게 읽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시집을 훑어보듯 한 번 읽고, 다시 한번 처음부터 정독을 하고, 그다음에 마음에 담겼던 시를 찾아내 꼼꼼히 읽어봅니다. 물론 훑어보듯 한 번만 읽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정원 시집을 전부 읽은 것이 아니어서 그의 시 세계가 어떻게 변화되고 무르익고 성숙되어 왔는지를 살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저는 그와 두 권의 합동시집에 참가한 사람으로서 페북에 올라오는 그의 글과 시를 눈여겨보고 꼼꼼히 읽는 편이었습니다. 이번에 그의 시집 <아득한 집>을 읽고 그가 이미 노자의 아나키즘 즉 자족自足, 자화自化, 자치自治의 세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테면 이런 시들 말입니다.    

 

조용한 내외가 사는

산중 절간 같은

우리집     

차분히 겨울비가 내리는

섣달 열하루 아침     

이 닦고 손 씻고

거실 벽에 베개 대고 앉아

책 읽으니 사뭇 좋다     

더구나 착한 아내가

따뜻한 유자차도 갖다 주니     

부러울 것도 바랄 것도 없이

말할 수 없는 어떤 감흥이

가슴 속을 축축이 적신다     

응달 전설을 녹이는

푸근한 겨울비처럼

       - ‘자족’    

 

(......)

글 한 줄 읽지 않았는데도

다섯 수레의 고전을 읽은 듯 뿌듯했습니다

내 몸에 들어왔던 그리운 사람을 추억했습니다

하늘과 땅을 더럽힐까 버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숫눈처럼 죄가 없었습니다

꾸밈없고 아픈 데 없는 삶이었습니다

잿빛 노을이 하루의 대문에 빗장을 거는 때

순백한 치자꽃 곁에서 말과 나를 잃어버린

나는 무위자연이었습니다

                - ‘치자꽃 곁에서’    

 

그래서 그의 <아득한 집>은 더 이상 욕심부리지도 않고 꿈꾸지 않아도 되는 아늑한 집이 되고 있습니다. 그는 대안학교를 퇴직한 뒤에 도시 생활을 접고 고향 마을에 안착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죽음도 이제 편안히 받아들입니다. 물론 시집의 사모곡들이 마음을 절절하게 하고 있습니다만.          


아버지는 늘 느릿느릿 걸었다

황소를 앞세우고 쟁기를 지고 다녔기 때문이다     

아버지한테서는 늘 소똥냄새가 났다

식구들의 밥인 두엄을 날라 논에 뿌렸기 때문이다     

눈 쌓인 땅에 아버지가 묻힐 때, 나는 울고 울었다

봄이 오면 아버지가 뚝새풀로 다시 돌아오리라     

그 풀씨가 검정 고무신 안팎에 달라붙어

아버지가 가는 곳마다 늘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 ‘뚝새풀’     


저도 그와 비슷하게 학교를 퇴직하고 농촌 마을로 들어왔지만, 그가 도달한 무위자연의 세계에 저는 닿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종종거리고 두리번거리고 도시 생활의 시간표에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완전한 전환을 이루고 살지 못한 거지요.      


한 시간에 한 대 다니는 버스를 방금 놓치고

자꾸 눈길은 지나가는 택시를 힐끔거리는데

오라는 사람도 없고 급한 일도 없는 내가

이렇게 뜬 풀처럼 마음이 부산해지는 것은

뿌리 없는 삶의 습관성 얄팍함 때문인가

무릎이 아프고 어깨 옆구리가 결리고 쑤시고

성한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시골 할머니들이

침 한 대 한 시간 물리치료를 받기 위하여

고깟 버스 한 대쯤이야 하고 깔깔거리며

안되면 하루라도 더 기다릴 것 같은 기세로

푸댓자루를 깔고 앉아 떠드는 것은

산다는 게 마냥 간발의 차로 놓치는 일이고

울고불고한다고 해도 오지 않는 것은 끝끝내

오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알아서일 터인데

버스 한 대를 놓치고 이리 어수선한 마음은

진작 놓을 걸 아직도 잡고 있었다는 뜻인가

다시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던 동구 밖

저녁노을 아래서 서성거리던 눈물 탓인가   

     -졸시 '방금 버스를 놓치고'       


아직 선생님의 얼굴을 직접 뵙지 못한 사이이지만, 내년 배롱나무 한창일 즈음 찾아가 그의 시 “명옥헌‘을 함께 읽고 싶습니다. 그의 최근 시집 <아심찬하게>에서는 어떤 시세계를 보여줄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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